물류 역사에 아쉬운 결정의 순간들, 바꿀 수는 있다면…

2016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시그널은 현재의 프로파일러와 과거의 형사가 낡은 무전기로 교감을 나누면서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장기미제사건을 과거의 형사와 연결된 무전기를 통해 서로 협력해 해결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현재의 영향을 받은 과거 사건이 해결되면 현재의 모습 또한 다른 모습을 변하게 되는 구조이다. 국내 물류산업도 많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결정의 순간들이 있었다. 당시의 선택이 현재를 만들었지만 당시 선택이 달랐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들도 있었다. 과거의 선택이 달라졌다고 해도 현재의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확정할 순 없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또한 어쩔 수 없다. 물류산업 역사에 있어 아쉬웠던 결정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정리했다.

1. 한진해운 파산 결정
2017년 2월 17일. 국내외 물류시장에 큰 획을 그었던 한진해운이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날이다. 1977년 설립된 한진해운은 이로서 40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한진해운은 당시 몇 년간의 해운 물류시장의 악화와 유동성 부족을 견디지 못했고 2016년 9월 회생절차에 돌입했지만 같은 해 12월 삼일회계법인이 청산가치(1조 7,980억 원)가 존속가치(산정불가)보다 높다는 최종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결국 파산으로 막을 내렸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돌입과 파산은 해운업계에 상당한 충격이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국내 해운업을 바탕으로 한 물류산업 전체에 영향이 미쳤다. 때문에 당시 해운항만물류 관련 협회와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30여개 단체가 함께 한진해운 살리기 부산시민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회생을 위한 정부 지원과 채권단의 사태해결 촉구에 나서기도 했다. 한진해운은 연간 70억 달러의 외화 수입을 통해 국제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해왔고 세계 7위 해운선사로도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하며 법정관리 이후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피해가 증폭되고 있고 국내 해운 산업의 대외 신인도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한진해운 청산시 매년 17조 원의 손실과 일자리 1만 3,000여개가 사라질 것으로 추산되고 화주들이 포워더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관련 업계의 연쇄 도산도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 봤다. 즉 한진해운의 파산은 해운업계 위기로, 이는 다시 한국 경제 위기로 연결된다며 한진해운 살리기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선사로 전 세계 200여 개 항만을 기항하며 70여 개 노선을 운영 중이었다.

한진해운 파산 후 후폭풍은 거셌다. 무역협회에서 2017년 수출실적 100만 달러 이상인 화주기업 33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한진해운 파산에 따른 수출 물류환경 변화’에 따르면 국내 화주 업체 10곳 중 5곳 이상이 해상운임 인상과 선복 부족으로 인한 수출업무 차질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조사에서 주목되는 점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현대상선이 주춤한 사이 국적선사의 이용률은 감소하고, 외국적선사 이용률이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보이는 응답이 나왔다는 점이다. 한진해운이 국내 해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흔들린 해운 재건에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투자됐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후 해운 재건을 위해서 정부는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 했다. 이후 2년 동안 총 49개 해운기업에 4조 2,830억을 지원하고 2020년이 되어서야 해운업계의 매출액은 29조 원에서 37억 원으로 증가했으며 선복량 역시 46만 TEU에서 65만 TEU로, 지배선대는 7,994만 톤에서 8,535만 톤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글로벌 선사의 지위는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 해운조사업체 알파라이너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1위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해운선사인 HMM은 현재 글로벌 순위에서 8위에 머무르고 있다. 한진해운이 파산 당시 7위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글로벌 선사의 지위는 회복되지 못한 셈이다.

한진해운의 파산은 경영상의 문제와 당시의 시장 상황으로 인해 결정된 사항이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해운 재건에 투입한 비용과 시간은 물론 수출입업계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정부와 채권단의 결정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히 2020년 이후 코로나로 발생된 선복량 부족과 해운 운임의 급상승은 국내 수출입 기업에게 부정적인 영향 미쳤고 이로 인한 어려움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한진해운이 있다고 해서 운임 상승이 없지는 않겠지만 국내 중소수출기업들에게 선복량을 제공하는데 있어서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물론 코로나 이후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수출입 기업을 지원 하고 있지만 한진해운이 있었다면 부족한 선복량과 증가한 해운운임에 대한 대응에 좀 더 여유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2. 경인 아라뱃길 개발
경인운하는 경인 아라뱃길의 초기 이름이었다. 1998년 당시 건교부는 경인운하민자유치 사업 시행자를 발표했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 운하로서 홍수시에는 굴포천유역의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다목적 사업으로 시작됐다. 주요 시설로는 수로 18km(폭 100m, 수심 6m), 터미널 2개소(140만평), 갑문 5기를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당시 민간 컨소시엄이 1조 4천 47억 원, 정부가 4천 382억 원을 각각 투자하는 것으로 완료되면 연간 4,800만 톤의 화물과 5만∼6만 명을 수송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후 사업은 민간컨소시엄 참여업체가 불참의사를 통보하면서 흔들리게 됐다. 이후 굴포천과 서해를 이어주는 방수로 공사는 2002년 완료 됐지만 경제성 문제로 경인 운하는 중단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핵심사업으로 자리 잡았고 수많은 반대에도 사업이 추진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경제성 문제는 여전히 유효했다. 당시 경제성 문제의 중심에는 물류가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여객을 제외한 배로 운송할 수 있는 물동량이 2030년 기준으로 컨테이너 97만 TEU, 철강 75만 톤, 자동차 7만 6천대, 해사 913만㎥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물류업계에서는 정부에서 이야기 하는 물동량은 생산재가 대부분인데 최종 목적지인 김포에는 생산재가 아니라 소비재가 들어와야 한다며 실제로 나타나지 않을 물동량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또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도 굳이 수로를 타고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당시 시장의 분위기였다. 또 초기와 달리 운하의 너비가 80m로 줄어들면서 안전에 대한 문제도 불거져 나왔다. 다만 김포의 물류단지 조성에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운하와 상관없이 수도권 물류단지로 매력적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12년 공식 개통된 경인 아라뱃길의 실적은 물류업계의 예상대로 저조했다. 2017년 국토 교통위원회 안호영 의원이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5월 25일 개통 이후 경인아라뱃길의 물동량과 여객유치 실적은 당초 2008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예측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동량 실적을 보면, 개통 5년차 기준으로 KDI 예측치 8,537천 톤 대비 실적은 762천 톤으로 겨우 8.9%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컨테이너가 6.9%, 일반화물이 14.7%이다. 1년 기준으로 경인아라뱃길 구간의 화물선 운행횟수는 128회로 하루 평균 0.35회 운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후 처리 물동량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경인 아라뱃길 경인항터미널은 현재 개점휴업상태이다. 전체 사업에서 물류산업에 긍정적인 부분은 김포물류단지뿐이다. 도심인근의 물류단지를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김포물류단지는 아라뱃길의 물동량과 상관없이 도심 인근의 물류단지로 역할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인 아라뱃길은 2조 7,00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다. 부풀려진 물동량과 당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었으면 개발되지 않았을 운하 사업이다. 물론 경인 아라뱃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현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김포물류단지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야만 했던 이유는 아직까지도 물음표로 남아 있다. 관광, 여객, 물류 등 어떤 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인 아라뱃길은 현재까지도 개발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운하를 통한 물류를 꿈꾸었을지 아니면 물류를 이유로 대규모 개발이익을 꿈꾸었을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표면에 내세운 이유만으로는 개발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인 아라뱃길이 아니라 김포 물류단지를 비롯해 도심 인근의 물류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이 예산이 쓰여졌다면 지금 더욱 경쟁력 있는 물류산업이 되지 않을까?

3. 창고업등록제 시행
물류창고업은 지난 1970년 8월 물류창고업법이 제정되어 허가제로 운영되어 오다가 1991년 창고업이 화물유통촉진법으로 이관 되면서 창고업법이 폐지되었고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변경됐다. 9년이 지난 2000년에는 창고업의 정의와 자금 지원 규정을 제외하고 창고 관련 규정이 모두 삭제되면서 신고제로 전환, 자유업으로 변경됐다. 이후 2012년 다시 창고업 등록제가 시행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 창고업의 등록 기준은 면적을 기준으로 했다. 물류창고의 전체 바닥면적의 합계가 1,000㎡이상인 보관시설과 전체 면적의 합계가 4,500㎡ 이상인 보관 장소는 등록하도록 되어 있으며 직접 화물을 가지고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화주는 제외 됐었다. 이러한 기준은 아직도 유효하다. 당시 업계에서는 뚜렷한 당근이 없는 상황이지만 물류창고의 정의와 물류창고업에 대한 정의를 법률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던 물류창고업계의 어려움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특히 창고업 등록제는 그동안 자유업종으로 현황파악 조차 힘든 상황으로 정책수립에 필요한 기본적인 통계자료조차 부족했던 상황에서 기본적인 통계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정부 또한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조세감면과 전기료 인하, 재정지원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물류창고업의 체계적인 발전과 육성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쉽게도 등록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뀐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히 현황파악이 가능해짐으로서 정책수립에 필요한 기본적인 통계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창고업으로 등록된 기업들의 정보는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통계 정보가 물류창고업에 대한 정책수립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붙는다. 업계에서 이러한 의문을 품는 이유는 등록 기준에 있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물류창고업이 물류창고라는 시설물을 소유한 기업이나 개인이 아니라 운영하는 기업이 등록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정의된 물류창고업은 ‘화주(貨主)의 수요에 따라 유상으로 물류창고에 화물을 보관하거나 이와 관련된 하역·분류·포장·상표부착 등을 하는 사업’으로 되어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물류창고를 자가든지 임차이든지 운영하는 기업에서 창고업 등록을 하게 되어 있는 셈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물류창고업 등록이 아니라 물류창고 등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즉 운영의 주체가 아니라 물류창고를 보유하고 있는 주체가 전체 시설물을 등록해야 필요한 통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의미다. 현재 물류창고업 등록은 창고를 운영하는 기업이 대상이라서 실제 물류창고의 공급량을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 데이터가 없다보니 현재 물류창고의 현황은 물론 공급과 수요 또한 알 수 없다. 즉 여전히 정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통계자료는 없는 상황이다. 또 임차한 기업이 물류창고를 이전하게 될 경우 등록을 취소하고 이전하는 지역에 가서 다시 등록을 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기업들의 현실적인 업무에서는 중복업무가 발생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 물류창고에 대한 규제들이 나오고 있는데 적용의 기준점이 물류창고업 등록이 된다. 하지만 물류창고업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건축물이 아니라 물류창고를 임차해 물류를 운영하는 기업이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규제의 대상이 엇나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물류창고업 등록제와 그로인해 만들어진 데이터와 통계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기 물류창고업이 아닌 물류창고를 대상으로 등록제가 시행됐다면 좀 더 정확한 데이터와 기업들의 업무 중복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물류단지 실수요 검증제 도입
물류단지 실수요 검증제는 지난 2015년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도입됐다. 물류단지 개발은 1998년부터 지역별 총량제로 운영됐는데 이를 폐지되고 실수요만 인정받으면 원하는 지역에 물류단지를 건설할 수 있는 제도로 바뀐 것이다. 당시 정부는 총량제에 대해 지역별 물류단지 수요를 정확히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어 민간투자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위해 지역별 공급제한을 폐지하고 사업별 실수요 검증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물류단지 총량제는 향후 5년간 수요량과 공급량을 각각 전망한 수치를 계산하여 각 시도별 공급량을 산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비하면 실제 물류시설이 필요로 한 지역에 수요자들에게 적합하도록 개발을 유도하는 실수요 검증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도의 변화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상당히 환영받았던 제도였다. 하지만 실제 실수요 검증에 들어가면서 많은 불만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초기 검증반의 배점기준, 평가항목의 불균형, 심의위원의 자질부족, 검증반의 역할론까지 총체적인 문제가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또 총량제를 폐기하고 실수요 검증을 도입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던 부분도 문제로 제기 됐다. 당시 국토부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례적으로 실수요 검증을 2014년에 먼저 실시하고 관련 법을 2015년에 신설했기 때문이다. 즉 법도 마련되지 않은 제도를 먼저 실행하면서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실수요 검증의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이 모두 마련된 것은 2016년이다. 초기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제도의 신뢰성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러한 문제는 2017년까지 이어졌다. 실수요 미인정 사유가 나오면 보완해서 재접수를 하는데 다른 미인정 사유가 계속 나오고 있어 희망고문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실수요 검증제는 제도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 다만 초기 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불신을 양산했다는 점이 아쉬움이다. 물류시설개발종합계획에 고시된 후 물류시설법 개정을 통해 시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나타났다. 총량제의 문제를 해소하고 물류시설이 필요한 지역에 물류단지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취지만큼 매끄러운 처리과정이 있었다면 실수요 검증제는 좀 더 혁신적인 물류정책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정책들처럼 충분한 준비를 통해 기준을 명확히 하고 관련 법을 먼저 개정 후 제도 시행에 들어갔다면 더 좋은 제도로 남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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