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분산·회복탄력성·친환경 전환 등 지속가능한 공급망 구축해야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닌,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현재진행인 재난으로 자리 잡았다. 폭염과 집중호우로 배송기사가 쓰러지고, 태풍과 해수면 상승으로 항만이 마비되며, 가뭄으로 운하가 멈추는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제까지의 기후 재난을 견뎌내고 복구하는 수동적 대응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물류산업에 미치는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물류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더 이상 기후위기가 피해야 할 리스크가 아니라,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 물류 선진국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공급망 다변화와 탄소중립을 향한 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천문학적 투자를 진행해 왔으며, 국내 물류기업들도 속속 이 같은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적시공급의 한계 드러나…‘회복탄력성이 새 전략’
기후위기는 물류 공급망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냈다. 2021년 미국 항만 대란, 2022년 유럽의 가뭄으로 인한 라인강 운송 중단, 2023년 파나마운하의 극심한 가뭄 등 기후 관련 물류 대란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적시공급(JustIn-Time)’ 중심의 효율성 일변도 전략이 한계를 드러냈다.

이제 물류업계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주목하고 있다.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위기를 견디는 것을 넘어, 위기 발생 시 얼마나 빠르게 감지하고 대응하며 본래 상태 또는 개선된 상태로 복귀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회복탄력성 강화를 위한 첫 번째 전략은 공급선 다변화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여러 대체 공급처를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략적 재고 운영이다. 과거 재고 최소화 전략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의 예비 재고를 유지함으로써 일시적 공급 중단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물류 네트워크의 재구조화다. 단기적으로는 운송 경로 및 재고 관리 최적화를 통해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신규 거점·공급업체·필요 역량을 포함한 전체 공급망에 대한 종합적인 재설계가 필수적이다.

기후 위기 대비 ‘새로운 보험’ 필요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의 규모가 커지고 빈도가 높아지면서 막대한 금전적 손실이 뒤따르고 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한 금융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다. 물류센터가 폭우에 침수되면 막대한 재고 손실과 영업 중단 피해가 발생한다. 하지만 기존 보험은 피해액을 산정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 보험금을 지급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그동안 기업은 유동성 위기에 몰려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이 같은 공백을 메우는 것이 ‘파라메트릭 보험(Parametric Insurance)’이다. 이는 손해액을 따지는 대신, 사전에 합의된 ‘객관적 조건(Trigger)’이 충족되면 즉시 보험금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A 물류센터의 강수량이 24시간 내 200mm를 초과한다’거나 ‘풍속이 시속 130km를 넘는다’는 조건이 공인된 기상 데이터로 확인되는 즉시 계약된 보험금이 수일 내 자동 지급된다.

보험금을 받은 기업은 이를 활용해 대체 운송수단을 섭외하고, 침수 장비를 교체하며 사업을 조속히 정상화할 수 있다. 이처럼 보험은 단순한 ‘사후 보상’을 넘어, 기후 위기 속에서 사업 연속성을 유지시켜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AI·디지털 트윈으로 예측·관리 강화
기후 변화로 인한 극심한 변동성은 기존의 경험 기반 운영 방식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러한 전례 없는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위해 물류산업은 인공지능(AI)이라는 신경망과 디지털 트윈이라는 가상 실험실을 도입하며, 수동적 대응에서 능동적 예측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AI와 빅데이터는 실시간 모니터링과 예측 시스템의 핵심이다. 특히 AI 기반 기상 예측은 특정 지역의 돌발 폭우나 폭설 가능성을 빠르게 감지하고, 물류기업은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활용해 배송 경로를 즉각 수정하거나 위험 지역의 작업을 선제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현실의 항만·물류센터·운송 경로 등 복잡한 공급망 전체를 가상 공간에 복제해 다양한 기상 이변을 시뮬레이션하고, 가장 취약한 지점을 사전에 파악해 재난 발생 시 즉각 플랜B를 가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AI와 디지털 트윈은 예측 불가능한 기후 위기를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전환시키는 가장 강력한 기술적 무기가 될 전망이다.

탄소중립, 기후 위기의 근본 해법
이상기후의 근본 원인인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도 물류업계는 적극 동참하고 있다. 특히 국제사회가 2050년 탄소중립을 공동 목표로 삼으면서, 물류산업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6%를 차지하는 주요 배출원으로서 강력한 규제 대상이 됐다. 유럽연합(EU)은 2024년부터 해운업을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포함시켰으며, 2050년까지 운송 부문 배출량을 9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제해사기구(IMO) 역시 2050년까지 해운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50% 이상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글로벌 규제 강화는 국내 물류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미치고 있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글로벌 공급망에서 탄소 감축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업체 선정 시 ESG 평가를 필수 요건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RE100에 가입한 약 400개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 전체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물류 부문 탄소배출의 약 52%가 화물차 등 운송수단에서 발생하는 만큼, 친환경 차량으로의 전환은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이다. 국내 주요 물류기업들은 전기차와 수소차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야”
과거 물류의 경쟁력이 ‘비용 절감’과 ‘속도’였다면, 이제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속에서도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회복탄력성과 글로벌 시장이 요구하는 탄소 경쟁력이 새로운 표준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거대한 전환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와 산업계의 유기적인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친환경 인프라 확충, 기술 개발을 위한 R&D 지원,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지원, 기후 위기 대응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필요하다. 특히 중소 물류기업들은 친환경 전환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력이 부족해 대기업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정책이 시급하다.

또한 빠른 배송이 당연시된 상황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배송 지연을 용인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도 정부와 업계가 함께 나서야 한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기후 위기는 물류기업에게 분명한 위기이지만, 동시에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 ‘기후 회복탄력성’ 확보가 곧 기업의 경쟁력이자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민관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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