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인프라 흔드는 이상기후,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으로 떠올라

전례 없는 폭염과 집중호우, 그리고 ‘슈퍼 태풍’이 대한민국 물류산업을 위협하는 ‘뉴노멀’이 되었다. 현장의 노동자부터 항만·공항 등 국가 경제의 핵심 인프라까지, 기후변화의 파급력이 산업 전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특히 국가 핵심 인프라는 수십 년간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됐지만, 이상기후는 그 전제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상기후는 더 이상 물류산업의 수많은 리스크 중 하나가 아니다. 폭염과 폭우, 가뭄과 태풍은 이제 물류 시스템이 상시적으로 감내해야 할 ‘운영 환경’이 되었다. 앞으로는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공급망 전략이 오히려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전망이며, 이상기후 피해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단계를 넘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해법 모색이 중요해지고 있다.

물류 인프라, 과거 데이터 벗어나 재설계 불가피
해수면 상승과 강력해진 태풍은 대한민국 수출입의 관문인 항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방파제와 안벽의 높이, 배수시설의 용량 등 기존의 모든 설계 기준을 재산정해야 할 시점이다.

해양수산부는 2023년  ‘항만 및 배후권역 기후변화 대응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100년 빈도의 재해에도 안전할 수 있도록 기후변화 대응력을 높이는 동시에 국가 어항까지 포함해 계획의 범위를 확장했다. 실제로 정부와 부산항만공사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항만 인프라의 안전 등급을 재조정하고, 재해 취약지구를 특별 관리하는 등 ‘기후 적응형 항만’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한편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등 물류 선진국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기후변화를 반영한 항만 및 물류 인프라 재설계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왔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은 해수면 상승과 폭풍해일에 대비한 방재시설을 강화하고,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기후 시나리오별 항만 운영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차세대 투아스(TUAS) 항만을 지능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친환경적인 항만으로 구축하면서, 준설물을 활용한 매립지 조성 등 기후변화 적응 전략을 통합하고 있다.

화물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길목인 도로와 철도 역시 극한 기후 앞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은 아스팔트를 녹이고 철로를 휘게 만든다. 이로 인해 아스팔트에 균열이 생기고, 교량과 터널의 내구성이 약화되며 열차 탈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국지성 폭우는 순식간에 도로를 침수시키거나 산사태를 유발해 차량과 기차 운행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물류센터, 홍수·폭염·강풍 대비책 시급
물류산업의 핵심 거점인 물류센터와 터미널 역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들은 주로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 쉽고 교통 접근성이 좋은 저지대에 위치하지만,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이러한 입지 조건이 오히려 ‘침수 취약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류센터 침수는 단순한 시설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재고 손실, 공급망 차질, 영업 중단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배송 지연으로 인한 고객 불만까지 이어진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물류센터가 하루만 침수돼도 정상화까지 일주일 이상 소요되며, 그동안의 손실은 수억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물류기업들은 창고 입지 전략부터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기존 물류센터는 홍수 방지를 위한 방수벽 설치, 배수 시스템 강화, 고가 선반 도입 등 침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내재화하고 있다.

분산형 공급망 구축도 이상기후 리스크 관리의 핵심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대형 물류센터 중심의 집중형 물류망은 한 지역의 자연재해가 전체 공급망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취약점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물류기업들은 중·소형 물류센터를 전국에 분산 배치하고, 지역 간 상호 백업 체계를 구축해 어느 한 거점이 피해를 입더라도 다른 거점이 즉각 대체할 수 있는 회복력 있는 네트워크 조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강풍과 우박 등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지면서 대형 물류센터의 지붕이 파손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관련 업계는 건축 구조 기준을 강화하고, 극한 기후를 견딜 수 있는 내구성 높은 자재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또한 폭염이나 혹한 시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자동화’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AGV(무인운반로봇), AMR(자율주행로봇)을 적극 도입해 사람이 극한 환경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물류업계 최초로 전국 주요 서브허브에 ‘차폐식 대형 냉방구역’ 시스템을 도입했다. 특히 신선식품을 다루는 콜드체인 센터에는 고성능 단열재와 ‘스마트 공조 시스템’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과 작업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분류 작업과 프레시백 세척 등 밀집 작업이 이루어지는 주요 구역에는 ‘냉기 유출 방지’ 커튼과 천장형 시스템 에어컨을 결합해 외부 기온이 30도를 넘어도 작업장 온도를 20도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전국 주요 서브허브에 설치된 차폐식 대형 냉방구역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전국 주요 서브허브에 설치된 차폐식 대형 냉방구역

기후 위기, 콜드체인 성장과 과제를 동시에 던져
기후 위기는 역설적으로 콜드체인 기술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의약품, 백신, 신선식품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이들 제품이 유통 과정에서 변질될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에 따라 물류 전 과정에서의 콜드체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냉장·냉동 트럭으로 온도를 유지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폭염으로 인한 냉방 수요 급증은 전력 시스템 과부하를 유발할 수 있다. 냉동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서리 제거 과정에서 냉각기 가동을 중지하거나 전기히터를 사용할 경우 온도가 상승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또한 이상기후로 인해 운송 과정에서 온도 이탈이 발생하면 제품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관련 투자와 인프라 보완이 필수적이다.

기후 회복탄력성이 곧 물류 경쟁력
물류업계 관계자들은 이제 기후변화에 대응한 물류 인프라 재설계는 단순한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필수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물류 인프라는 과거 50년간의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됐지만, 앞으로의 50년은 완전히 다른 기후 환경이 펼쳐질 것”이라며 “선제적으로 인프라를 재설계하지 않으면 피해 복구 비용이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거에는 비용 절감과 속도가 물류 경쟁력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예측 불가능한 이상기후 속에서도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기후 리스크에 취약한 기업은 고객 신뢰를 잃고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후 위기는 준비된 기업에게 더 강하고, 더 스마트하며, 더 유연해질 수 있는 기회”라며 “물류 인프라의 기후 회복탄력성 확보가 곧 기업의 경쟁력이자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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