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미국·아태지역의 피지컬인터넷 실행 동향

십여 년 전, 당시 몬트리올의 CIRRALT(Interuniversity Research Centre on Enterprise Networks, Logistics and Transportation) 교수였던 브누아 몽트뢰유(Benoit Montreuil, 현 조지아공과대학) 교수와 동료 연구진들이 처음 제시했을 당시 매우 이상적이며 이론에 불과한 모델로 여겨졌었던 피지컬 인터넷은, 많은 연구와 기술적 진보를 통해 점차 현실 구현 가능한 모델로 다가오고 있다. 피지컬 인터넷은 물류 분야의 혁신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미래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인 것이 사실이다. 2025년 연간 시리즈로 11회에 걸쳐 싣게 되는 본 특별기획 기사를 통해 피지컬 인터넷의 핵심 개념부터 실제 적용 사례, 관련 기술들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피지컬 인터넷 추진 현황과 전망을 알아보고자 한다. 본 특집기획 기사는 로지스올의 한국물류연구원 기고이다. <편집자 주>

지속가능성 및 디지털 전환이 물류 및 공급망 산업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과거 미국과 유럽을 넘어 일본에서 진전되어 왔던 피지컬인터넷(Physical Internet, 이하 PI)개념이 이제 중국, 호주,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기타 국가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6월 홍콩에서 진행된 피지컬 인터넷 글로벌 포럼인 IPIC 2025에서 발표된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유럽 외 지역에서의 PI 연구 및 실증 흐름과 산업계 적용 현황을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1. 미국: 연구 중심에서 산업 적용 가능성 모색으로 
미국에서는 Physical Internet Center(PIC, 조지아공과대학) 등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PI 개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PIC는 유닛 로드로 통칭되는 모듈화된 표준 물류 단위(컨테이너 또는 패킷 개념), 공유 물류 네트워크, 그리고 스마트 인터페이스 개발을 주요 연구 테마로 다뤄왔다. 최근 미국 내 움직임은 연구 단계를 넘어 산업계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장 조사에 따르면 미국 PI 시장 규모는 이미 수십 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며, 향후 2030년까지 연평균 약 7.9%의 높은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사실, 미국 산업계에서는 아직 PI를 전면 적용한 대형 기업 사례가 공개된 바는 제한적이지만, Amazon, FedEx와 같은 물류/유통업체, C. H. Robinson과 같은 운송기업, 코카콜라 등 제조업체 사이에서 모듈화, 공유 물류 자원, 데이터 기반 네트워크와 같은 PI 관련 개념 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아텍의 PIC와 기업들 간 공동 연구 및 실증 형태로 진행되는 과제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미국 시장 내 PI 실현을 위한 핵심 키워드는 ‘모듈 패킷화된 화물’, ‘공유 허브 네트워크’, 그리고 ‘운송 자원의 풀링(pooling)’으로 정의된다. 금번 IPIC 2025에서는 조지아텍의 브누와 몽트류 교수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 및 아시아 지역에서의 피지컬 인터넷 확산 노력을 공유했다. 조지아텍은 PI 개념에 대한 인증 및 교육 프로그램을 미국을 넘어 조만간 한국(LAPI), 일본(JPIC)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도입할 예정이며, 이는 피지컬 인터넷을 이끌어갈 ‘피지컬 인터넷 설계자(Architect)’ 또는 ‘활성화자(Enabler)’를 양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밝혔다. 또한, 조지아텍은 최근 중국의 SF Express와 협력하여 중국 PI의 시작에 중요한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공개하기도 했다.(그림1)

2. 중국: ‘세계 최초 공유 스페이스’ 출범과 익스프레스 혁신 
중국은 PI 구현을 향한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계획과 실행 경과를 공개했다. 특히 2025년 5월 25일, 상하이 홍차오(虹 ) 국제중심업무지구에 세계 최초로 정부 주도형 ‘Physical Internet Shared Space(PI 공유 스페이스)’를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이 공간은 개방형 표준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공유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전용 허브로 설계된 일종의 오픈형 피지컬 인터넷 공동 연구센터이다. 중국도 전통적 물류 시스템의 비효율성, 급증하는 물류비용, 도심 병목 현상,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 저감 필요성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피지컬 인터넷의 의미를 ‘모듈화된 화물 단위’, ‘공유 물류 자원’, ‘데이터 기반 네트워크화’를 통해 사회 전체의 물류비용을 혁신적으로 낮추고 공급망의 회복력(Resilience)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적 해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밝혔다. 중국의 피지컬 인터넷 추진 주체로 China Federation of Logistics & Purchasing(중국물류구매연합회)의 정책적 주도 하에 Physical Internet Alliance China(PIAC)를 설립하여 피지컬 인터넷 추진 및 확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시작하고 있다. 현재, 국영 물류기업인 COSCO Shipping Supply Chain, 스마트 물류 솔루션 기업인 WaterMirror Technology 등 물류기업과 관련 기술 기업들이 피지컬 인터넷 공유 스페이스 구축에 선제적으로 참여하였다.(그림2)

이러한 배경으로 중국 정부는, 2024년 말 ‘물류비용 효율화 국가 전략 실행 계획’을 발표하며 피지컬 인터넷의 개념에 대한 최고 수준의 정책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설립된 피지컬 인터넷 공유 스페이스는 물리적인 협력 공간의 개념을 넘어, 기업과 연구기관, 정부가 함께 참여하여 표준 컨테이너, 모듈화 화물 단위, 정보 플랫폼, 네트워크 상호 연결 구조 등을 실험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플랫폼의 역할을 지향한다. 금번 IPIC 2025에서 중국은, 자국의 특송(Express) 산업을 중심으로 피지컬 인터넷 관점에서의 물류 혁신 성과를 공유하면서 향후 중국이 글로벌 피지컬 인터넷을 리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공유했다. 중국의 특송 산업은, 지난 30년간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 현재 연간 1,750억 개의 소포를 처리하며 세계 최대 시장으로 자리매김했고, 이처럼 막대한 물동량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효율성과 표준화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소개된 혁신 사례를 통해 고도화 수준으로는 평이해 보일 수 있으나, 피지컬 인터넷의 표준화와 공동화의 기본 컨셉에서부터 단계적으로 고도화하겠다는 의지와 방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의 피지컬 인터넷 기반의 혁신 성과로 제시된 첫 번째는 모듈화된 운송 단위 즉, 유닛로드 표준화 확산에 대한 내용이다. YTO Express 등 선도 기업들은 작은 소포 25~30개를 하나의 ‘익스프레스 백(Express back)’에 담아 운송하는 시스템을 구현했는데, 이는 해상 운송의 컨테이너와 유사하게 모듈화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이 백은 160회까지 재사용 가능하고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제작되어 친환경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업 간 협업 네트워크도 소개되었다. 중국 특송 업계는 우리나라의 택배 대리점의 대형화 버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역 프랜차이즈 모델(Jiameng)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본사가 플랫폼, 기술, 표준을 제공하고 5,000개가 넘는 독립적인 파트너사들이 지역 운영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이를 개방적이고 연결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PI의 개념과 유사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선도적인 드론 배송 체계를 적용하였음을 소개했다. SF Express의 Phoenix Wings라는 솔루션이 소개되었고, 중국 정부의 ‘저고도 경제(low-altitude economy)’ 정책 지원 하에 드론 물류가 대규모로 상용화될 수 있었음을 언급했다. 표준택배 박스를 활용해 적재 용량을 최대화 했고, 저소음/저공해 설계가 적용된 친환경적인 운송 수단임을 강조했다. 실제, 선전(Shenzhen)에서는 현재 86개의 상업 드론 배송노선을 운영 중으로, 매일 20,000개 이상의 소포가 드론으로 배송되고 있다. SF Expreess는 피지컬 인터넷 공유 스페이스를 통해 다양하나 화주들과의 협력으로 전국적인 확산을 계획하고 있다.(그림3)

중국 상해의 공유 스페이스 출범은 피지컬 인터넷의 시작 단계일 뿐이며, 향후 이 모델을 다른 도시나 지역으로 ‘트윈닝(twinning)’하여 확산시키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또한, 실제 제조사, 유통사, 물류 기업이 참여하는 공동 운송 및 자원 공유 실증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고, 다자간 협업 구조와 데이터 거버넌스, 법·제도적 인센티브 구축을 진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3. 호주, 필리핀 등 기타 아시아 국가 : 초기 준비 단계
호주와 필리핀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여러 국가들도 PI 개념을 국가 차원의 물류 전략에 포함하기 시작했음을 공유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대부분 논문이나 실증 프로젝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산업계 전면 적용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금번 IPIC 2025에서 공유 물류 허브 설계, 다수 기업 간 물류 자원 공동 활용, 디지털 물류 네트워크 구축 등이 주요 연구 대상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PI 도입 노력은 기존 도심 물류 혼잡, 인프라 제한, 그리고 이커머스 급성장에 따른 배송 수요 증가 등 지역적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그림4)

4. 결론 및 향후 전망: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의 전환
피지컬 인터넷 컨셉이 태동한 미국은 물론, 이제 중국 및 아시아권에서도 피지컬 인터넷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미래의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상하이의 공유 스페이스 출범은 도시 물류 허브 및 다자간 공유 네트워크 구축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세계 피지컬 인터넷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IPIC 2025의 세션별 토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피지컬 인터넷 확산을 위해서는 공통의 해결 과제가 있음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언급된 세 가지 과제는 다음과 같다.
√ 표준화 및 인프라 구축이 절실: 표준화된 모듈 구조와 공유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은 초기 단계에 있으며, 기업들이 참여/도입 의사결정을 주저하고 있음
√ 협업 문화 및 관행: 여러 기업과 조직이 경쟁 관계를 넘어 자원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구조가 아직 산업 관행으로 자리 잡지 못함. 단, 협력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TNO나 IMEC 등 유럽 연구기관은 데이터 공간 기술(Data Spaces) 및 거버넌스 구축에 집중하며 대안 모색 중.
√ 제도적 기반: 데이터 공유, 거버넌스 체계, 그리고 기업 참여를 유도하는 법·제도적 인센티브 마련이 필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피지컬 인터넷 추진 움직임은, 이제 첫발을 뗀 한국의 피지컬 인터넷 추진 전략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관 협업 기반의 플랫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연구기관은 물론 산업계의 다양한 기업들의 참여, 시범 구축 지자체 또는 중앙 정부가 함께 기능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공유 네트워크 인프라 및 데이터 생태계 구축이다. 컨테이너 모듈화, 운송 자원의 풀링 체계, 데이터 거버넌스의 확립이 피지컬 인터넷 실현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실증 범위/영역의 확대를 위해서는 참여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의 도입의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도시 허브 모델이나 다기업 물류 자원 공유 모델을 통해 실증 단위를 확대하고, 이를 촉진할 법적, 제도적 인센티브 마련이 관건임을 IPIC에 참여한 유럽의 선행 실증 사례들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피지컬 인터넷 LAPI(Logistics Alliance for Physical Internet)는 국제적인 흐름에서 도출되는 시사점을 거울삼아, 피지컬 인터넷 혁신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전략적이고 협력에 기반한 방법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피지컬 인터넷 특집 기사의 마지막 편으로, 지난 10월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글로벌 피지컬 인터넷 워크숍과 ALICE Logistics Innovation Summit에서 공개된 실증 사례와 여러 유럽 국가에서의 프로젝트 실행 담당들과 LAPI 운영진이 직접 나눈 토론 내용을 통해 우리나라 피지컬 인터넷의 미래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겠다.

한국물류연구원은 우리나라의 피지컬 인터넷 추진을 위해 주요 기업의 CLO(Chef Logistics Officer, 최고물류책임자)로 구성된 ‘한국CLO협의회’를 발족합니다. 화주기업 또는 물류기업의 물류관리책임자 여러분의 가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의처 : 한국물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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