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 / 교보문고

2010년대 후반부터 많은 기업들이 추구하는 기업 역량이 바로 ‘속도’이다. ‘속도’가 기업의 핵심적인 역량으로 대두되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의 속도에 대한 대응 때문이다. 1990년 IMF이전 기업들 사이에 유행했던 사자성어가 바로 ‘大馬不死’이다. ‘기업의 규모가 일정 이상 도달하면 그 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는 속설 아닌 속설이었다. 그래서 모든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업의 규모를 키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내더라도 일단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면 그 기업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대상이 된다는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결국 우리나라는 IMF라는 수렁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가 거대 조직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정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기술의 발전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치달리기 시작했고 2010년 이후부터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혁기로 넘어오면서 디지털 기술이 산업계는 물론 사회 전반을 큰 변화의 물결로 뒤덮었다. 특히 2020년 이후 인공지능(AI)의 본격적인 등장은 인류가 그동안 살아왔던 문명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 경량문명의 탄생’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작가는 이전의 그의 저서인 ‘핵개인의 시대’, ‘호명사회’에서 급변하는 대외적 변화에 있어서 사람(개인)관점과 사회적 관점에서의 변화의 트렌드와 방향성에 대해 언급을 했다면 이번 그의 저서에서는 새로운 문명인 ‘경량문명’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러한 관점에서 산업과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어떻게 이 문명에 적응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어떤 인사이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 필자는 이 책에서 그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중량문명의 종말과 경량문명의 도래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가량 이어진 ‘중량문명(heavy civilization)’을 전환의 맥락에서 본다. 기술 발달과 분업, 조직의 대형화는 과거의 경쟁 우위였지만 오늘날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중심 변화, 속도의 가속화 앞에서 ‘거대함 = 안전’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즉 조직과 개인이 무거움(크기, 규모, 계층·복잡성 등)을 유지할수록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변화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반면 지금은 가볍고 빠르게 적응하는 쪽이 생존력을 갖는 시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새로운 문명의 틀인 ‘경량문명(lightweight civilization)’의 탄생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며 이 문명이 조직·개인·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단언하고 있다. 경량문명은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라는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다. ‘지능의 범용화’는 과거에는 복잡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대형 조직·전문가 집단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부지런한 지능’과 ‘초월적 지능’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개인이나 소규모 조직도 고차원의 업무를 실행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협력의 경량화’는 조직이나 집단이 무거운 계층·매트릭스를 갖기보다는 필요할 때 빠르게 뭉치고 흩어지는 ‘클러스터’형, 팬덤형, 모듈형 협력 구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력의 형태는 가볍고 유연하므로 경량문명으로 변화를 촉진하는 주된 모멘텀이 된다. 경량문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거대 조직보다는 작고 민첩한 조직이 유리하다. 둘째, 일을 하는 방식이 ‘풀스택(full stack)’보다는 ‘퀵스택(quickstack)’, 즉 빠르게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셋째, 조직 내부의 위계와 관리·감독 중심 시스템이 약화된다. 대신 구성원이 책임을 공유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문화가 강조된다.

경량조직의 법칙과 변화 방향성
경량조직이 작동하기 위한 법칙과 문화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새로운 리더의 자질 : 거대 조직을 이끄는 강한 관리자형 리더보다는 스토리텔러·쇼맨십을 갖춘 리더가 유리하다. 이는 조직 문화 자체가 콘텐츠화 되고, 리더에 대해 구성원은 물론 외부에 이르기까지 팬덤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간 지능 + 인공 지능의 결합 : 조직은 더 이상 인간만으로 운영되지 않고 인간과 AI의 협업으로 운영되는 구조로 전환된다. 이로 인해 조직의 유형과 이에 따른 사람의 역할 그리고 프로세스·형태와 역할이 달라진다. 구성원의 경우 ‘조직의 일원’이라기보다는 프로젝트와 네트워크 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독립된 주체(에이전트)의 역할에 주력하게 될 것이며 프로세스는 상급자에 대한 권한이 대폭 축소될 것이며, 대규모 사업이나 업무는 세분화로 분해하여 빠르게 진행되는 프로세스로 변화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AI가 예측과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고 사람은 창의적 판단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조직 문화의 엔터테인먼트화 : 앞서 새로운 리더의 자질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직 문화가 하나의 콘텐츠화가 됨으로 인해 내부에서 생기는 경험이나 관계도 단순한 생산·관리 차원을 넘어서 ‘브랜드 경험’이 된다. 즉 조직 자체가 팬덤을 만들어내는 매개체기능을 갖추고 진화해야 한다.
배움과 공부의 재정의 : 기존의 학습 방식(장기 투자, 전문성 축적 중심)만으로는 부족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역량’이 더 핵심이 된다. 유연하게 배우고 버릴 줄 아는 자세가 강조된다.

경량문명의 삶과 태도
작가는 ‘경량문명’은 무겁고 복잡했던 과거의 산업문명과는 달리 가벼움, 유연함, 연결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갖출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경량 문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태도는 다음과 같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 : 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소유하는 데 가치를 두지 않고, 경험·시간·감정적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보유보다 접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공유경제·구독 서비스·디지털 콘텐츠 소비를 일상화한다.
연결 중심의 삶 : 개인은 네트워크 속에서 존재하며 물리적 공간보다 온라인 연결성의 중요성이 커진다. 정보·감정·가치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교류되고 사람들은 ‘나’보다는 ‘함께’라는 기반으로 살아가며 이로 인해 공동체의 형태가 혈연이나 지연이 아닌 관심 기반의 느슨한 연결망을 추구한다.
효율보다 의미와 감성을 중시 : 과거 산업사회가 ‘속도’와 ‘생산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면 경량문명의 사람들은 감정·공감·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 브랜드나 조직에 대해서도 ‘가격’보다 ‘가치’와 ‘진정성’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 ‘왜 하는가’가 ‘어떻게, 얼마나’ 보다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
유연하고 변화에 민감한 태도 : 불확실성과 빠른 기술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적응력과 학습 능력이 생존의 핵심 역량이 된다. 고정된 직업이나 정체성보다 프로젝트 단위의 일과 자기 정체성의 확장을 중시하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를 꾸준히 점검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업데이트한다.
자기표현과 진정성의 문화 : SNS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창작자이자 발신자가 되며 자기표현과 공감의 교류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과시보다는 진정성 있는 공유, ‘나 답게 사는 것’이 더 큰 사회적 가치로 평가받는다. 경량 문명은 ‘가벼운 대화와 깊은 공감’이 공존하는 시대이다.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감수성 : 사람들은 환경, 사회, 윤리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지속가능한 선택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한다. 단순한 친환경을 넘어, ‘가볍게 살기’ 즉 불필요한 낭비와 욕망을 줄이는 삶의 태도를 지향한다.

‘경량 문명’은 무거움을 탈피한다는 물리적인 관점의 변화가 아니라 의식의 변화로 마주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는 생각이다.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의식과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 즉 불필요한 것을 선별하고 이를 덜어내는 것, 이는 경량문명이 지식을 추구하는 것 보다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며 이것이 경량문명인으로서 살아가는 본연의 태도라는 생각이다.

저작권자 © 물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