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장승희 신한관세법인 대표이사(대표 관세사)

‘신한관세법인’이 올해 3월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관세 역사상 반세기를 넘어 60년 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킨 관세법인은 신한관세법인이 유일하다. 신한관세법인은 인천국제공항과 부산항 등 국내 5개 지사와 해외법인, 자회사인 신한인비스타를 거느리며 수출입 신고 대행부터 국내외 화물운송·보관서비스, 베트남 수출입 통관 컨설팅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관세법인을 이끌어가고 있는 장승희 대표이사(대표 관세사)는 업계에서 보기 드문 2세 경영인이다. 또한 처음부터 관세사를 꿈꾸었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주부였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장승희 대표를 만났다.

『내가 관세사의 길에 들어선 이유』
“신한관세법인이 6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고객들과 훌륭한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회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념식 대신 고객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고, 전·현직 직원들을 위해 작은 파티를 열었어요. 세미나에 만족감을 표시하는 고객과 동창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직원들의 말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승희 대표는 60주년의 소회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을 관세사의 길로 이끌어준 창업주이자 부친인 故 장흥진 회장의 이야기를 꺼냈다. 1965년 장흥진 회장은 3명의 직원과 함께 서울역 인근에 사무실을 얻어 ‘서울통관사’를 차렸다. 관청의 전유물이었던 관세업무를 민간에서 담당하기 시작한 1세대 관세사이기도 하다.
장 회장은 늘 직원들에게 꼼꼼하고 성실할 것을 당부하며 관세업무를 가르쳤고, 유능한 관세사들을 많이 배출하며 입지를 다졌다. 1993년 새로운 한국이라는 의미를 담아 상호를 ‘신한’으로 변경한 뒤에도 그는 묵묵히 관세사로서 역할을 다했다. 딸인 장승희 대표에게 관세업무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한 건 회사를 설립한 지 36년이 됐을 때였다. 당시 장 대표는 미국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면서 틈틈이 회계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관세업무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예요. 대학을 졸업하고 곧 결혼하면서 외국에서만 생활한 탓에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거든요. 손주들도 많이 보고 싶었을 텐데 그때는 편지로 사진을 보내거나 국제전화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전부였어요. 아버지는 누군가 회사를 이어가길 바랐던 것 같았는데, 가족들 모두 각자의 일로 바빴습니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지 않고 성격도 비슷한 저를 떠올리셨던 것 같아요. 남편도 적극적으로 권해서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장승희 대표는 40대에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너무 힘들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여느 워킹맘처럼 회사에 나가 일을 배우고, 돌아오면 초등학생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관세사 시험을 준비했다. 하루하루가 벅찼고 일하는 동안 시댁에 아이를 맡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지만 가족들은 물론이고 시댁에서도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을 보내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덕분에 몇 번의 실패를 경험했지만 결국 47세라는 나이에 당당히 관세사 자격을 따냈다. 당시 업계에서도 화제가 됐던 일이었다.
“아버지가 길을 만들어주셨지만 지금까지 그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관세사라는 직업에 대해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무역, 수출입 물류가 무척 중요하지요. 관세사는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일이 우리나라와 기업,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은 제게 성취감 이상의 것을 돌려주었습니다.”

『경영자로 나섰다, 변화의 바람을 가져왔다』
장승희 대표가 처음부터 경영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첫 근무지였던 인천공항지사에서 실무를 익혔고, 관세사 자격을 취득한 뒤에는 관세평가포럼에 가입해 관세행정가, 기업체 관계자 등 다양한 이들을 만나 현장에서 겪지 못했던 것들, 공부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을 깨달으며 안목을 넓혔다. 그때 만난 소중한 인연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장 대표의 말이다.
시간이 지나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장승희 대표는 신한관세법인에 변화의 바람을 가져왔다. 신한관세법인은 인천공항 외에도 부산항과 인천항, 청주산업단지에 지사를 확충했으며, 젊은 관세사들을 채용해 조직의 규모를 늘리고 활력을 불어넣었다. 물류 자회사인 신한인비스타도 이때 설립됐는데, 관세법인이 물류서비스를 직접 제공한 것은 처음이었다.
“신한인비스타는 고객들의 편의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다가 관세업무부터 물류업무까지 한 번에 처리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물류서비스의 특성을 잘 모르다 보니 초기에는 손해도 봤지만 지금은 전문인력들을 배치했고, 물류센터도 갖춰 국내는 물론 해외를 대상으로 보관부터 운송까지 다양한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요. 특히 외국계 기업들의 요청이 많아 최근에는 물류센터를 추가로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부터 경영 전면에 나선 장승희 대표는 FTA를 주목했다. FTA가 활성화되면 국제무역과 관세업무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고객들을 위한 상담 역량 향상에 힘썼고, 이는 전문 컨설팅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신한관세법인은 중소기업진흥공단 FTA 컨설팅 기관, 무역협회 OK FTA 컨설팅 프로그램 등을 도맡았고, FTA 중소기업지원 우수사례 최우수상 수상 등 대외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외에도 현재 관세무역, AEO, 심사, 행정, 외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맞 춤형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해외로 나가다』
미국과 베트남 진출은 장승희 대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안이다. 관세행정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어 당시만 해도 해외진출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장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우연히 베트남에 직원을 보낼 일이 있었는데, 베트남의 관세행정이 우리나라의 80년대 수준이라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알게 됐지요. 물론 우리 고객들도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었고요. 이번에도 고객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현지 관세행정에 대한 기본적인 컨설팅을 시작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업무 처리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습니다다. 예를 들면 수기로 작성한 서류의 오류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았지요. 그래서 베트남에 법인(Shinhan Customs Vietnam)을 세우고, 컨설팅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직접 통관까지 처리할 수 있는 ‘FTA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시스템에서는 기록이 남으니까 고객들의 불편이 크게 줄었습니다.”
미국 법인인 코드 파트너스(KORD Partners Inc)는 장승희 대표가 LA에서 열린 한·미 FTA 관세 세미나에서 강연하기 위해 참석했다가 설립을 결심한 경우다. 장 대표는 함께 일정을 소화하던 현지 관세사들로부터 국내 기업들에게 FTA와 관련해 수시로 문의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국내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로 미국에 수출했다가 문제가 된 건들도 많았고, 미국 현지 사정에 맞지 않는 서류들도 적지 않았다.
“한·미 FTA를 제대로 준비하면 우수한 한국 상품들을 미국 메인스트림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꿈을 가지고 관세사들과 의기투합해 코드 파트너스를 만들었습니다. 베트남과 미국 법인 모두 설립 초기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이름난 기업들이 코드 파트너스를 찾아주면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위임하되 방임하지 않는 경영자가 될 것』
신한관세법인은 60년 동안 수많은 고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역사를 만들었는데, 30~40년 이상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유명한 기업들도 많다. 그 사이 직원들의 역량도 늘었고 국내외 네트워크와 물류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춰나갔다.
장승희 대표는 60주년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성장에 중점을 두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신한관세법인은 매출 목표를 높게 정하거나 영업에 열을 올리는 스타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에게 더 좋은 업무 환경을 마련해주고 만족스러운 급여 인상안을 제시하려면 성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또한 성장은 고객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적극적으로 영업에 나서고 매출 증대에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장승희 대표는 도약의 기본 요건은 직원들의 역량 향상이라고 봤다. 신한관세법인이 올해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신품교육(신한관세사의 품격을 높이는 교육)’은 관세사들이 숙지해야 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월 1~2회 열리고 있다. 최근에는 AI 전문가를 초청해 내부 교육을 시행하고 AI 솔루션 아이디어 대회도 열었는데, 좋은 안이 많이 나와 실제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장승희 대표는 직원들에게 권한은 위임하지만 방임하지 않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경영자가 모든 일에 다 참견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직원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저 친구가 잘 아니까 믿고 맡긴다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사람에게 해가 될 수도 있어요. 가끔은 진행 상황을 확인해야 조직에도 건강한 긴장이 흐르고,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직원이 보는 시각과 경영자가 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지요. 저는 모르면 모른다고, 아닌 건 아닌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해요. 그러면 직원들은 각자의 지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해줍니다. 물론 저도 제 의견을 이야기하고요.”
직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장승희 대표는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서로 원하는 것을 알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같은 맥락에서 직원들에게도 가능하면 고객에게 전화나 이메일을 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문화를 만들자고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과 시시콜콜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면 서로를 좀 더 알게 되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편하게 이야기하게 되지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함께 성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이 사회에서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깨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물론 눈앞의 일에만 매여 있지 말고 이따금 좀 더 멀리 보며 살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작은 습관이 모여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로 신한의 가족 모두가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