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휘 필립스 SC&Logistics 본부장
이병휘 필립스 SC&Logistics 본부장

애플 아이폰14라인의 인도 생산 확대 뉴스로 한참 시끌벅적했다. 폭스콘은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정저우공장이 폐쇄된 후 앞으로 2년간 인도 공장의 인력을 지금의 4배로 증가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4배라고 해도 7만 명이 되지 않는 인도 공장이 20만에 달하는 중국 공장의 인원들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삼성도 베트남에서의 생산 비중을 낮추며 공급망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2020년 60%에 달했던 베트남 생산량을 2023년 46%대로 감소시킬 계획이며 잔여물량들은 이미 20%대의 생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 생산거점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시작돼, 트럼프 행정부에서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한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로 가속도를 내며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에 불 지핀 ‘불안정성과 불확신성’
사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최근 들어 새롭게 나타난 이야기는 아니다. 자원과 제품의 공급망 자체는 오래전부터 무기화 되어 왔다. 태평양 전쟁의 원인이기도한 석유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기화 된 자원으로 그 공급망과 생산지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분쟁이 일어왔고 2010년대에는 희토류 분쟁으로 대표되는 무기화 시도가 있었다. 가까운 예로는 2019년 일본이 불화수소를 무기화하여 한국과의 정치적인 분쟁을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20년 코로나의 발생 이후에는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특히 베트남과 중국의 매우 강력한 봉쇄정책은 불안정해진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에 큰 물음표를 남기게 된다. 중국은 세계의 완제품 생산공장이면서 동시에 부품공장으로 전세계적으로 펼쳐진 공급망에 있어 개별국가의 정책 안정성이나 정치적 목적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로 인해 공급망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쌓이게 되고 결국 공급망 다변화에 더욱 속도를 내는 원인이 됐다.

‘중앙화 된 거대생산거점’에서 ‘백업 가능한 개별생산거점’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새로운 생산거점의 단순한 이전보다는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의 불안정성과 정치적 상황이 공급망에 주는 불확실성의 경험에 힘입어서 다변화를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초반 시작되어 아직도 진행 중인 원료 및 부품 등의 수급문제와 중앙화 된 생산거점의 무력화로 인한 전체적인 공급부족현상을 겪은 제조업체들은 관련한 전체 공급망의 재편 과정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고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기존의 중앙화 된 거대생산거점에서 단순화 된 공급망을 통해 최대의 효율을 추구해왔다면 지역별로 생산거점들을 구축하여 개별생산거점들이 서로를 백업하는 형태로 교차 생산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정 거점의 불능화에도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판매부진이나 여타의 이유로 생산량을 조절하거나 거점을 이동하는 경우에도 더 많은 선택지를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생산거점이 재편성되면 관련한 공급망도 같이 변하게 된다. 다변화된 공급망을 지원하기 위해 부품과 원자재를 공급하던 회사들은 내·외부적 재편을 거치게 된다. 단순하게 A라는 거점으로 공급하던 품목을 B, C, D라는 분산된 거점으로 나누어 보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 생산수량부터 배송조건, 공급업체의 위치까지 고려해야 된다. 기존에는 공급업체들이 생산거점과 최대한 가깝게 위치하며 관련한 비용과 소요시간을 줄이는데 집중되었다면 분산된 생산거점 정책안에서는 공급망 전체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공급처의 다변화 또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생산거점과 반드시 같은 지역안에 위치하지 않더라도 부품의 공급허브로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각 생산거점에 공급하거나 단일공급처에서 다변화하여 각각의 생산거점이 규격화 된 부품을 공급 받을 수 있는 별도의 공급망을 구성할 수도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 장점 버려야
공급망의 변화속에서 한국은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양질의 부품과 자재를 공급할 수 있는 품질관리 능력과 생산력을 갖추고 있지만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의 방향이 탈중국화라면 거리적으로 지금 누리고 있는 생산지에 근접한 지정학적 장점을 포기해야 한다.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인도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생산된 부품들이 생산거점에 도착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양국사이를 오가는 해상운송의 주기 등에서 보다 악화된 조건에서 공급을 진행 해야 한다. 반면, 기존 인도가 자국내의 산업기반이나 적정한 품질의 작업이 가능한 인적자원의 가용성에서 아직 명확한 성과를 내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기존 공급업체 또는 새로운 공급업체들이 진출하여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기존 중국이나 베트남의 생산거점이 긴 기간동안 자국내의 생산, 공급능력을 개발하여 자체수급을 해왔던 것에 비해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는 지금이 새로운 납품처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초기 중국으로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진출했던 많은 한국기업들이 초기 한국내 생산-공급에서 현지 생산-공급으로 전환한 것처럼 새롭게 재편되는 공급망에서 초기 기존생산설비를 활용하여 품질 안정성을 확보하고 차후 현지 생산으로 전환하는 기회를 노릴 수 있을 것이다. 국내의 물류기업들도 재편되는 공급망 아래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3PL 기업이 종합 상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관련한 애로사항들을 해결하면서 함께 세계적인 물류기업으로 성장한 것처럼 국내기업들도 물류 애로사항들을 해결하면서 양적,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한국의 대인도 수출액은 195억 달러로 적지 않은 금액이며 2022년 들어 급격한 수입 증가와 GDP 상승을 보이고 있다. 다변화 된 생산거점은 목표 소비지역에 인접하여 확보하게 되고, 생산거점을 위해 확보된 물류망은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된다. 언제든, 변화의 시기는 모두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뉴노멀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유행이 지난 격변의 시기이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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