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공급망이란 단어가 많이 보이고 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공급망이 이슈화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최근 국제 문제 및 산업 전략 속에서 ‘공급망’은 필수 논제로 화두 되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는 수십 년간 글로벌 분업화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생산 효율성 높이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유지하며 효율성을 도모해왔다. 글로벌 분업화란 반도체로 예를 들어보면 미국과 유럽의 높은 제품 기술 개발 능력, 한국과 대만의 제조 공정 기술력, 중국·대만·베트남 등의 높은 조립 검사(ATP) 생산성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가치사슬별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망 재편의 원인으로는 코로나, 우크라이나 사태, 미-중 무역전쟁이 지목되고 있다. COVID19로 인해 전 세계가 경제 봉쇄(Shut down)를 본격화하면서 위축된 공급망이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탄소 가격이 급등하고 천연가스와 알루미늄, 목재, 네오디뮴 등과 같은 원자재 및 중간재 가격이 전반적으로 급등해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또한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집계한 미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 따르면 미국은 코로나19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던 2020년 5월, 45.4포인트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PMI는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50.0 포인트를 기준으로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수축 국면으로 평가한다.

출처 : Deloitte Insights 2022 No.22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글로벌 공급망 의존의 위험성을 일깨워주며 평화로운 공급망 분업 체계를 붕괴했다. 딜로이트 리포트에 따르면 러시아는 팔라듐 등 백금족 광물의 글로벌 공급량 중 30%, 티타늄은 13%, 니켈은 11%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촉매 변환기의 핵심 재료인 팔라듐 가격은 러-우 사태 발발 후 무려 80% 뛰었다. 특히 반도체 산업 내 미·중 패권 경쟁은 정치·외교적인 문제가 경제 산업에 투사되면서 공급망 파괴의 심각성을 더 일깨워줬다. 공급망의 취약성이 발견됨으로써 각국 정부는 공급망 안정화 및 회복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는 곧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졌다.

미·중 대결 속 엇갈리는 공급망 전략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되는 대표적인 공급망 재편 전략에는 해외 진출한 자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이전하는 리쇼어링(Reshoring), 본국과 가까운 인접 국가에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프렌드쇼어링(Freindshoring)이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보고서 및 미국혁신경쟁법에 나타나듯 미국은 공급망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 동맹국인 유럽 국가들, 한국·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과 같은 핵심 동맹국을 중심으로 프렌드 쇼어링과 같은 연대 전략을 제시하고 디커플링(탈동조화) 및 공급망 재편을 위해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FIRRMA), 수출통제개혁법(ECRA), 미국혁신경쟁법(USICA) 등 다양한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가드레일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먼저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협대화법은 중국의 공격적인 M&A를 통해 유출될 수 있는 미국의 첨단 기술을 방지하기 위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수출통제개혁법은 처음 의도와 달리 입법 시기 미·중 갈등이 악화됨에 따라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으로 변화했으며, 기존 수출관리규정을 개정해 전략물자의 수출을 통제하고 이후 수 차례의 개정을 통해 수출통제 대상 기술의 수도 추가하고 있다. 특히 가장 최근 법안인 미국혁신경쟁법은 첨단기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안으로 중국 관련 무역 정책에 대한 미 의회 권한 강화, 미국 내 중국 공자학원 제한 등 중국의 위협에 적극 대응하는 방안을 명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반도체, 전기차, 의약품 등과 같은 상품의 생산 기지을 미국 자국 내에 구축하고 투자하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이른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제조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은 미·중 패권경쟁에 맞서 국내에서 완전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쌍순환 전략'을 내세웠다. '쌍순환 전략'은 미국의 광범위한 견제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장기 성장 전략으로 국내순환과 국제순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순환은 제조업 핵심 장비·부품의 자급자족 실현으로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을 강화하고 국제순환은 기술 고도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상품 수출 확대를 강조한다. 즉, 국내 내수시장을 확대하고 독립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국내·외 경제순환을 촉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미국의 수출통제개혁법과 유사한 수출통제법 발효,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에 대응하기 위한 외국인투자심사법 발표, 미국의 무역 제한 목록과 유사한 무역 제한 기업 리스트를 발표하는 등 미국의 주요 입법에 대응하며 적극 견제에 나섰다. 또한 중국은 수출금지·제한 기술 목록에 다수의 항목을 추가하는 등 자국 내수 산업 활성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제무역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중국의 적극적인 자국 산업 육성 정책으로 가공 무역 비중은 떨어지고 중국 수출산업의 중간재 자급률은 높아졌다.

출처 : Deloitte Insights 2022 No.22

한국 역시 장기화가 예상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 의존도가 큰 원자재는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들로 다변화하고 공급망 구조를 바꾸고 미국과의 협력은 강화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개편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적극 참여하고 이미 일부 대기업은 미국 리쇼어링 정책과 관련해 미국 현지에 진출해 인프라 친환경 투자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인도로 공급망을 확장해 가고 있는 만큼 양국 간 산업 협력의 폭을 넓혀야 한다"며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협상,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을 통해 산업·무역·투자 등 경제 전반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사업장의 국내 신설·증설’의 범위를 기존 공장 유휴공간 내 설비를 도입하는 경우로 넓혀지는 등 개정 시행령을 통해 기업들의 국내 복귀 활성화를 통한 공급망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다만, 한국수출입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해외 진출한 한국 기업은 리쇼어링보다는 미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중국 이외의 타국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는 경향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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