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글로벌 경제를 지탱하던 자유무역주의에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을 앞세워 미국을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중국 견제에 나섰다. 미국은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여하는 한편 자국 및 동맹국을 통한 공급망 강화에 나서는 등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은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를 지탱했던 기존 공급망이 붕괴하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 경쟁이 기존 무역분쟁과 다른 점은 ‘풍선효과’의 존재다. 무역분쟁은 상호 간 관세 분쟁으로 연결돼 뚜렷한 승자가 없지만 공급망 경쟁은 수혜 및 반사이익을 보는 곳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공급망이 등장하거나 기존 공급망의 강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공급망 대전환 속 지난 공급망 재편들에 대해 알아봤다.

공급망 효율성 강조에 중국 중심 공급망 구축돼
지금까지 전 세계 공장 역할을 담당한 중국은 1990년대 개혁개방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경제 개발을 꾀했다.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미국, 유럽, 일본의 뒤를 잇는 제4의 시장으로 도약할 준비를 마친다. 중국은 WTO 가입을 계기로 막대한 해외투자를 유치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한 공급망은 전 세계에 저렴한 가격으로 각종 제품을 공급해 중국은 세계 1위 무역 국가로 성장했다.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경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공급망 최적화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해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다면 국경을 여러 차례 넘나드는 중간재 무역을 활용했다. 우리나라는 많은 기업이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원재료, 부품, 중간재 등을 공급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생산해 수출에 나서면서 중국 특수를 누렸다. 다른 국가들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중국에 투자하며 중국이 생산을 담당하는 공급망이 구축·유지됐다.

동일본대지진, 자동차·소재·부품 공급망 변화로 이어져
2011년 3월 11일, 일본 관측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이 일본 동부 해안을 강타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불리는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한 마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이 유출되는 등 아직도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은 일본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동일본 지역은 일본이 자랑하는 자동차, 석유화학, 소재·부품 등의 생산지로 당시 기업들의 생산시설이 직격탄을 맞아 전 세계 공급망 차질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기업들은 취약한 공급망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급망 시각화, 집중구매 검토, 부품 공통화 등 공급망 개혁에 나섰다. 특히 일본의 핵심 산업인 자동차산업의 경우 부품, 소재 관련 기업의 설비 파손 및 전력 부족으로 인해 일본 전역의 자동차 생산이 일시 중단됐다. 또한 이 지역에서 부품 등을 공급받는 GM, 포드 등 글로벌 기업, 일본 자동차 기업의 해외 생산시설에서도 생산에 차질을 빚는 등 당시 일부 기업들의 취약한 공급망 구조가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세계적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만큼 조달해 생산하는 JIT(Just In Time)을 기본으로 공급망을 구축했다. 즉, 재고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통해 원가를 절감해 왔다. 도요타는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나자 공급망 흐름 전반을 파악할 필요성을 인지했다. 이에 2차 이하 부품 공급업체 대한 정보가 담긴 ‘RESCUE(REinforce Supply Chain Under Emergency)’라는 공급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선제적이고 신속한 공급망 위기관리체계를 구축했다. RESCUE는 일차적으로 위험품목을 식별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산거점 분산 등 공급망 다양한 전략을 수립했다. 또한 생산거점의 재난방지책 강화, 재고관리 등 재난대응책을 마련했다. 도요타의 공급망 위기관리 시스템은 지난 2016년 두 차례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 당시 도요타 생산공장의 신속한 업무재개를 가능케 해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돼
1980년대 일본은 엔저와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전자제품 등을 미국에 수출하면서 엄청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일본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올랐으며 특히 전자제품에 필수품인 반도체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이 시기 일본은 높은 기술력과 우수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이르는 등 미국은 물론 전 세계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의 수출 효자 상품인 D램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했다.

미국은 일본 반도체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86년과 1991년, 1996년 반도체협정을 통해 반도체 시장을 재편했다. 협정 이후 일본 반도체 산업은 제조업, 제조장치업체, 소재로 이어지는 수직 산업구조를 형성할 수 없게 됐다. 이후 반도체 시장은 빠르게 재편돼 팹리스(반도체 설계) 분야는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생산) 한국과 대만, 부품·소재·장비 등은 일본과 네덜란드 등이 담당하는 공급망이 구축됐다. 지난 2019년 7월, 반도체 공급망에 다시한번 비상이 걸렸다. 일본은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EUV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에 대해 백색국가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 차질이 예상됐다. 당시 정부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국내 중소기업 투자를 확대했으며 기업들도 소·부·장 관련 기업의 지원 확대 및 다른 국가로의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에 솔브레인이 액체 불화수소를 국산화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SK머터리얼즈 – 초고순도 기체 불화수소 ▲동진쎄미켐 –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한미반도체 – 반도체 절삭장비 ▲백광산업 – 고순도 염화수소 등을 국산화에 성공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공급망 자체를 국산화하기 위해 한국 상장사 8곳과 상장기업 자회사 1곳 등 9개 회사에 2,762억원을 출자하는 등 공급망 국산화에 앞장섰다. 이 밖에도 일본 수출규제 속 미국 듀폰은 한국에 EUV용 포토레스트 개발·생산시설 구축하는 등 일본기업들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투자가 이뤄졌다. 최근에는 반도체를 두고 미·중 양국이 대립하는 가운데 ‘슈퍼을’로 불리는 네덜란드 ASML이 2024년까지 경기도 화성에 2,4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따라 기업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한편 최근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고 동맹국 위주의 공급망 재편을 위해 반도체를 생산할 때 필요한 극자외선(EUV) 스캐너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등 반도체 관련 장비 기업을 압박해 공급망 재편을 추진 중이다.

반도체 분야 '슈퍼을'로 불리는 ASML이 경기도 화성시에 2,500억원을 투자한다
반도체 분야 '슈퍼을'로 불리는 ASML이 경기도 화성시에 2,500억원을 투자한다

한 글로벌 기업 SCM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공급망을 두고 원자재부터 제조, 유통 모든 과정에서 대립과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해지고 있어 기업들은 향후 공급망 구축 계획을 수립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Bio(바이오), Battery(배터리), Chip(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로 신냉전 시대 양 진영으로부터 구애받고 있다”며 정확한 정세 분석과 산업 데이터 분석은 물론 지난 사례들을 참고 공급망 구축 계획 마련해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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