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사를 관통하는 도전을 이어온 국내 원조 물류기업

조선의 쌀 생산량이 일본 시장의 쌀 가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 이출되는 조선미의 양을 조절하기 위한 보관 시설로 시작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이하 조선미창)는 쌀을 비롯해 각종 화물을 같이 취급하기 위해 1930년 별도의 법인체로 설립됐다. 지금의 을지로 입구에 있던 경성전기 본사 건물에서 업무를 시작한 조선미창이 현재의 CJ대한통운이다. 국내 물류기업의 시초였던 CJ대한통운은 국내 물류산업을 이끌어온 기업으로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현재의 물류산업이 있기 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한 기업이다.

1930년 조선미창 구 사옥 건물(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1930년 조선미창 구 사옥 건물(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대한민국 대표 물류기업의 시발점이 된 ‘조선미창’
국내 물류기업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CJ대한통운은 조선미창으로부터 현재까지 92년간 물류산업을 지탱해온 기업이다. CJ대한통운의 전신인 조선미창은 인천항을 시작으로 부산과 진남포, 목포와 군산에 지점을 설립하면서 물류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가장 많은 생산품이자 수출량 1위 화물이었던 쌀의 매입, 운송, 보관, 선적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담당했다. 이후 보관수요는 빠르게 증가해 1936년에는 마산, 여수, 강경, 원산, 해주까지 새지점을 개설했고 1937년에는 항만에 들어오는 화차 운송에서 보관을 거쳐 선적에 이르는 전과정을 일괄 취급하기 시작했다. 1943년에는 전국 23개역에 차급화물에 대한 면허를 받아냈고 이는 이후 소운송 분야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해방이후인 1950년에는 사명을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로 변경하고 비료와 양곡 등을 취급했으며 1962년에는 한국운수를 합병했다. 한국운수는 조선미창과 같은 해인 1930년에 만들어진 회사로 초기 회사명은 조선운송주식회사였다. 한국운수는 조선미창과는 달리 당시 운송업체들을 통합한 형태로 탄생했으며 이후에도 군소 업체들을 지속적으로 합병해 규모를 키워온 기업이었다. 한국운수는 해방 후 국책기업으로 운영되다가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로 합병됐다. 1963년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는 대한통운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동아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거쳐 2011년 CJ그룹으로 편입되고 2013년 대한통운과 CJ GLS가 통합되면서 CJ대한통운으로 사명을 변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는 길이 곧 물류 역사인 ‘대한통운’
한국운수를 합병해 규모를 키운 대한통운은 당시 최신형 운송장비 도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5년 삼륜 화물 트랙터 30대를 해외에서 직접 구입해 도입했으며 1967년에는 일본계 자동차화사에서 최신형 장비를 대량으로 도입했다. 국책기업으로 운영되던 대한통운은 1968년 동명증권(동아건설) 그룹에 편입되면서 민영화 됐다. 같은 해 대한통운은 당시 동양 최대 중량 화물(175톤)을 자체 제작한 250톤급 바지선을 통해 운송하며 중량물 해상운송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1973년 본격적인 항공포워딩 업무 시작(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1973년 본격적인 항공포워딩 업무 시작(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1973년 대한통운은 미국 슐만에어프레이트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항공 포워딩 업무를 시작했으며 다음해인 1974년에는 인천항에 전용부두를 만들어 하역과 보관의 현대화를 추진해 국내 항만 개발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1975년 에는 철도 화물 수송 근대화를 위해 컨테이너 전용열차를 도입했다. 

1986년 인천항에 최초로 도입된 갠트리 트레인(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1986년 인천항에 최초로 도입된 갠트리 트레인(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대한통운은 1984년 서울 지역에 한해 소화물 집화 배달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도입한다고 밝히면서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집배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1985년에는 110톤급 철도 특장차를 국내 도입해 철도 수송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다음해인 1986년에는 인천항에 대한통운 민자부두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갠트리 크레인을 도입해 항만하역의 새로운 변곡점이 됐다. 1992년에는 전국 물류거점에 건설된 내륙물류기지인 복합물류터미널을 통해 화물체계의 효율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1993년 ‘대한통운 특송’이라는 브랜드로 시작한 택배사업은 최초는 아니지만 후발주자로서 핸디캡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초로 윙바디 트럭과 리프트게이트가 장착된 알루미늄 벤카를 자체 개발해 사용했다. 같은 해 대한통운은 새로운 물류 전략을 연구 개발하기 위해 물류연구소를 개설하고 복합하고 다양해지는 화물과 화주를 대상으로 물류 프로세스를 진단하고 개선하는 물류컨설팅 업무도 진행했다.

1993년 대한통운 특송으로 택배사업 시작(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1993년 대한통운 특송으로 택배사업 시작(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1995년에는 물류업계에서는 최초로 ISO9001을 운송, 택배, 항만하역, 복합운송주선업 등 사업부문에서 획득했다. 2000년대 들어 여러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대한통운은 여전히 물류산업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2007년 45층 빌딩과 맞먹는 크기의 마창대교의 상판구조물을 운송하면서 중량물 운송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10년에는 2억 상자의 택배물동량을 최초로 돌파했다. 1993년 택배서비스를 시작한 후 2007년 1억 상자를 돌파한지 3년만이 이룬 성과였다.

2007년 마창대교 상판 구조물 운송(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2007년 마창대교 상판 구조물 운송(출처_CJ대한통운홈페이지)

2016년에는 TES전략실로 종합물류연구원 기능을 확대하고 TES 이노베이션 센터를 개관해 물류 첨단화를 위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에는 경기도 광주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메가 허브를 오픈했으며 2019년에는 화성 동탄에 곤지암 허브 센터보다 규모가 큰 물류센터를 구축해 운영하면서 대한민국 물류 역사를 써오고 있다. 최근에는 TES물류기술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시스템 등에 특허를 취득하면서 앞으로 물류산업을 이끌 기술에서도 앞선 경쟁력을 선보이고 있다.

9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물류의 혁신을 통해 산업 내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던 CJ대한통운은 현재 국내 물류시장에서 첫 손에 꼽히는 리딩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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