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쟁과 제재, 물류 루트를 바꾸다

‘유라시아 물류이야기’는 2017년 6월부터 2021년 2월까지 40회에 걸쳐 물류신문에 연재된 바 있다. 마지막 기고문을 쓴 지 3년이 흘렀고, 그동안 유라시아 물류시장 상황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기에 다시 이어서 조명하고자 한다.

2022년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연합, 캐나다, 우리나라와 호주, 일본 등 서방 진영 50여개 국가는 러시아에 제재를 취했고, 러시아는 서방 진영에 대하여 대응 제재를 취했다. 전쟁 이후, 유라시아에서 물류 루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항공
서방 항공사의 우회와 중국-중동 항공사의 강세

실생활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항공이다.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유럽은 러시아 항공사를 대상으로 유럽 영공을 폐쇄했고, 이에 대응해 러시아는 유럽 항공사를 대상으로 러시아 영공을 폐쇄하였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와 일본의 항공사들도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지 않게 되었고, 러시아 항공사도 우리나라와 일본으로의 운항을 멈췄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터키. 중동 등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의 항공사들은 러시아와 유럽 양쪽의 영공을 오가면서 유라시아를 관통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오가는 비행기는 운항 시간이 약 2시간 정도 늘어났으며, 북미를 오가는 비행기도 약 1시간 정도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러시아를 오고 가려면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터키, 몽골 등 다른 곳을 경유해야 하므로 비용은 증가했고 소요 시간도 늘어났다.

미국의 제재 대상국인 러시아와 이란을 경유하지 않고,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길은 카스피해를 거치거나 이란 남단으로 돌아서 가는 방법밖에 없다. 유라시아 항공운송 측면에서 서방 항공사들은 우회를 하게 됨에 따라 영향력이 축소되었고, 러시아 항공사들은 상당히 위축되었다. 반면 중국과 터키, 중동 항공사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해상
글로벌 대형 선사들의 철수와 중소형 선사들의 진입

전쟁 이전만 해도 해상운송은 철도나 항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했었다. 그런데 전쟁이 반발하자 HMM, 머스크(Maersk), MSC, CMA CGM, ONE 등 글로벌 선사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항구로의 선박 운항을 중단하였다. 발트해에 위치한 페테르부르크 항구, 흑해에 위치한 노보로시스크 항구, 태평양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러시아 항구라는 이유로 운항이 중단되었고, 흑해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항구는 전쟁으로 인하여 운항이 중단되었다. 심지어 중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선사인 COSCO도 미국 시장의 매출이 큰 관계로 러시아 운항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선사인 MSC는 식품, 의약품에 한정하여 유럽/중남미/아프리카와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항구를 오가며 아직까지도 많은 러시아 물량을 운반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나 노보로시스크로의 해상운송시장은 러시아와 중국의 중소형급 선사들이나 포워더들이 진입하였다.

이들은 중국~인도~중동~페테르부르크/노보로시스크 노선을 유지하거나 중국~(부산)~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선사들이 예멘 사태 이후로 아프리카 남단으로 우회하여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고 있지만, 러시아를 오가는 중소형급 선사들은 예멘 사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에즈 운하를 통해서 운항하고 있다.

전쟁 초반만 하더라도 글로벌 선사들이 페테르부르크와 노보로시스크 항구를 기항하지 않으면서 러시아 동부의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로 몰렸기에 러시아 극동 연해주의 정체가 극심하였는데. 러시아의 발트해와 흑해 지역으로 중소형급 선사들이 해상운송을 대체함에 따라 극동 정체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와 러시아 선사들의 한-러 항로의 운항 횟수나 물동량,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었고, 중국선사들은 증가하는 추세다. 그나마 한국계 페리 운영사들은 동해와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을 각각 운항하면서 여행객과 화물을 운반하고 있다. 

-철도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위축과 중국 횡단철도의 유지

‘블라디보스토크항~시베리아~벨라루스~폴란드~유럽’, 즉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오가던 수많은 열차는 전쟁 발발 이후 운행이 거의 전면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청도, 연운강, 대련~서안~카자흐스탄~러시아~벨라루스~폴란드~유럽’, 즉 중국 횡단철도를 오가던 열차들은 그 물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으나 그나마 노선은 지금도 잘 유지되고 있다.

결국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물동량은 철도운송이 아니라 수에즈 운하를 경유한 해상운송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러시아를 경유한 철도 루트 기피도 있었겠지만, 2023년에 해상운임이 대폭 내려간 부분이 컸다. 

2024년 2월 현재 후티 반군의 홍해 사태로 인해 수에즈 운하 운항에 차질로 인하여 해상운임이 상승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따라 선박이 운영됨에 따라 운송시간이 늘어났다. 이에 중국과 유럽 간 운송에 있어서 중국 횡단철도가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전쟁 이전보다는 철도운송은 위축되었다.

-도로 
유럽과 도로운송 중단 및 이웃 국가들과 도로운송 활발 

전쟁 이후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트럭을 통한 도로운송이었다. 하루에 약 800km 정도는 갈 수 있어 신속하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에는 폴란드/동유럽~러시아를 가로지르는 트럭을 통한 횡단 운송이 가장 활발했었는데, 전쟁 이후에는 이 구간 운송이 거의 사라졌다. 반면 전쟁 이후 유라시아 지역에서 트럭운송이 활발한 구간은 다음과 같다. 

△중앙아시아~러시아, △코카서스~러시아,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카슈가르 국경~중앙아시아, △터키~코카서스~중앙아시아, △유럽연합~우크라이나 구간

전쟁 이전에는 유럽,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 해상과 철도로 들어온 물량이 모스크바 인근 지역으로 집결한 뒤 중앙아시아와 몽골, 코카서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주변 국가로 트럭운송을 통해 흩어졌다. 그런데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 주변 국가들로 화물이 먼저 집결된 뒤 러시아로 트럭운송을 통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전쟁기간 동안 물류의 신속성이 중요해졌고 해상/철송의 제한이 많아졌기에 도로를 통한 트럭운송은 활발해졌고 아주 중요하게 되었다.

보다 강화된 제재
2023년 가을 러시아의 선사이면서 철도운송업체인 러시아 대형 물류업체에 대하여 영국이 제재를 발표하자, 이 업체가 사용하던 블라디보스토크 터미널의 운송 물동량이 급감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2024년 2월 24일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이유로 미국은 러시아 물류업체에 대한 제재를 보다 강화하였다. 특히 보스토치니 항구에 있는 하역 운영사와 러시아 최대 컨테이너 철도운송업체가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한국발 제품들의 상당한 물동량이 해당 운영사와 철송업체를 통하여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운송해왔는데 말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수출자들은 중국 횡단철도와 극동 연해주의 소규모 항구로 물류루트를 변경하면 되겠지만, 결국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지역으로의 물류는 러시아나 우리나라 물류업체가 아니라 중국 물류업체 중심으로 운용될 것으로 보인다.
        
유라시아 물류에 대한 시사점  
최근 2년 간 유라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여러 제재는 유라시아 물류 측면에서 몇 가지의 시사점을 안겨주었다.

첫째, 세계가 분열되면서 전쟁과 제재가 늘어나고, 물류가 더욱 중요해졌다. 
둘째, 물류 루트를 결정할 때 경제적 실리뿐만 아니라 외교적 노선이 반영된다.
셋째, 유라시아 대륙 중앙에 위치한 국가들 간의 내륙 운송 긴밀성이 높아졌다. 
넷째,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중동, 몽골 국가들의 물류루트가 강화되었다.     
다섯째, 교역 및 물류 측면에서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증가하는 추세인 반면에 러시아, 우리나라, 일본의 물류업체들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

전쟁과 제재는 유라시아 지역의 물류 루트를 변화시키면서 물류 흐름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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