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과 사회적 책임, 현실로 직시할 때

기업에 대한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산업계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물류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물류기업들은 환경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친환경 관련 기술이 대거 도입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대부분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 것이 현실이다. 많은 중견·중소물류기업들은 여건이 어렵다는 이유로 친환경이나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한 활동은 적지 않은 비용과 인적 자원이 필요하며 기업 규모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눈앞에 닥친 친환경 규제
EU는 지난 10월 1일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CBAM에 따라 철강이나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수소, 전력을 EU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분기마다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또한 2026년부터는 관련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즉,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그러나 CBAM에 대해 숙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많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9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기업의 21.7%만 알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물류기업들도 대응책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CBAM 적용을 받는 품목들은 물류업계에서도 주요 운송품목이기 때문에 시장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2년 뒤 인증서 구매가 본격화되면 운임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화주기업들은 비용이 증가하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가절감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물류기업에게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당장 대책이 시급한 문제도 있다. 올해 7월 국제해사기구는 제80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80)를 통해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최소 20%, 2040년까지 최소 70%를 감축하고, 2050년경에는 탄소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국제 기준이기 때문에 해상운송업을 영위하는 전 세계 모든 기업은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국내 해운선사들은 기존 화석연료 선박을 친환경 연료 선박을 대체해야 하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조선소에 발주해야 2050년 발효될 국제 기준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견·중소선사들은 자금 문제로 신조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며, 국내 조선사들의 친환경 선박 발주는 대부분 해외 선사들 차지다.

항공운송과 육상운송도 탄소배출은 해묵은 과제다. 항공운송에서는 항공기 외에도 지상조업 등을 위해 다양한 장비들이 사용되는데 연료나 유지보수를 위해 화석연료나 화학물질을 사용하게 된다. 이런 장비들은 다량의 탄소와 각종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화학물질은 인화성이 있거나 위험물로 분류되어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육상운송의 경우 전기차나 수소차 도입을 눈앞에 두고 있어 어느 정도 비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존 경유 차량 감축에 대한 정부의 방침과 업계의 반발은 풀어야 할 숙제다.

이외에도 다양한 물류현장에서 매일 쏟아지는 포장재 폐기물과 폐플라스틱, 각종 포장재와 1회용품 등도 물류기업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가고 있다. 단순히 분리수거를 잘해야 한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재활용, 새활용 같은 리사이클 활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일부터 7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양환경보호위원회 제80차 회의(MEPC 80)에 참석한 회원국 주요 인사들이 탄소 배출량 목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제공=국제해사기구)
△지난 7월 3일부터 7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양환경보호위원회 제80차 회의(MEPC 80)에 참석한 회원국 주요 인사들이 탄소 배출량 목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제공=국제해사기구)

업계 내부의 사건사고, 사회 갈등으로 번져
기업의 사회적 위치를 논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기여와 책임이다. 봉사활동이나 성금 기부 등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기여와 달리 책임은 민감하고 무거운 문제들이 포함되며, 경우에 따라 사회적 갈등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물류현장은 과거 열악한 작업 현장 때문에 사건이나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지금도 크고 작은 사고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비용이나 인력 등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며, 이것이 반복되면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커지게 된다. 

육상운송이나 택배분야의 대표적인 사안으로는 지입사기를 꼽을 수 있다. 지입사기 피해자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얻기 위해 물류업종을 선택했다가 어렵사리 모은 금전을 날리는 등의 피해를 입고 있으며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대부분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물류신문은 지입제도의 폐해를 꾸준히 지적해왔으며, 정치권에서도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는 운임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물가와 금리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운임 인상의 필요성은 물류기업과 화물차주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원가절감과 갑의 지위를 이용한 화주기업의 이기주의 탓에 운임 인상은커녕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이는 화물차주의 수입과 삶의 질 악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물류기업 사이에 하청과 재하청 과정에서 다량의 수수료를 떼어가는 관행도 문제다. 현장에서는 화주의 갑질로 인한 불공정한운임 거래가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물류기업 간 과당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해사분야의 선원 인권 문제는 인재 유입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안이다.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업무 강요는 물론 욕설이나 사생활 침해 등 사회적 기본권 침해 사례들이 여전하다. 고속도로에서 화물차량의 과적이나 난폭운전 문제, 고박불량으로 도로에 화물이 떨어지는 사고는 대중에게도 익히 알려진 사회적 이슈로, 시민들의 우려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항만과 물류센터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 다단계 하청에 따른 저임금 문제, 영세 기업의 난립 등도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일부에서는 물류현장을 무허가 시설로 운영하거나 처우가 엉망인데도 버젓이 영업활동을 벌여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물류산업의 환경과 사회 관련 주요 이슈
△물류산업의 환경과 사회 관련 주요 이슈

 

직간접적 영향 대비해야
경기침체를 이유로 물류기업들이 친환경과 사회적 기여 활동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또한 아직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거나 계획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상황이라 실적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소기업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업의 대응 능력이 요구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친환경의 경우 주요 국가들의 환경규제에 따른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CBAM은 물론이고 내년 중에 입법될 것으로 예상되는 EU의 공급망 실사 지침도 향후 물류업계에 직접 혹은 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적용 기준이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한정되어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규제 대상의 기준을 낮추거나 원청기업이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에게 같은 내용의 실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회적 책임도 기업의 평가 지표로 활용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사에게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항을 보고하거나 감사 항목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기준으로 ISO 26000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물류 입찰에서 평가가 비슷하다면 사회적 기여도를 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실제 신용평가기관 등에서도 ISO 26000이나 지역사회에 기여한 내용을 근거로 삼아 기업의 평가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출기업이나 국제공급사슬관리에 포함된 기업, 사회적 투자금을 지원받거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 등은 ISO 26000의 준수 여부가 중요한 척도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천 이유 정립하고 구성원 간 합의 필요
전문가들은 친환경이든 사회적 책임이든 가장 먼저 기업 스스로가 이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를 정립하고, 이에 대한 구성원 간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 기업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업무와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것. 특히 기업의 대외 이미지 개선은 물론 구성원들에게는 소속감과 만족감을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들에 비용은 현실적인 문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친환경경영 컨설팅 지원사업 등을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자체들도 탄소중립 혹은 그린뉴딜 등의 이름으로 기업을 위한 친환경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중앙회, 지자체 산하 기관, IBK기업은행 등 다양한 곳에서 ESG 경영을 위한 컨설팅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컨설팅이 포함되어 있어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친환경이나 사회적 기여 활동은 내부 직원들은 물론 외부에서 봤을 때도 그만큼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올라섰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때문에 각종 규제나 평가 지표에서 얻는 이점 외에도 인재 영입이나 기업 간 협력, 해외진출 등에서 중장기적으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책임의 역사

△미국 경제학자 아치 캐롤(Archie B. Carroll) 조지아대학교 경영대학 전 교수 겸 경영대학 의장, 현 명예교수
△미국 경제학자 아치 캐롤(Archie B. Carroll) 조지아대학교 경영대학 전 교수 겸 경영대학 의장, 현 명예교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경제학과 경영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됐다. 1930년대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웬델 윌키(Wendell Wilkie)가 처음 언급한 기록이 있으나 실제 개념 정의가 이루어진 것은 미국 경제학자 하워드 보웬(Howard Bowen)이 1953년 출간한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저서다. 보웬은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은 우리 사회의 목적과 가치에 알맞게 기업가들이 의사결정을 해서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에 옮기는 의무라고 정의를 내렸다.

1960년대 들어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졌는데 1963년 조셉 맥과이어(Joseph W. McGuire)는 기업이 경제적, 법률적 의무를 넘어 전체 사회에 대한 책임까지 의미한다고 발언한 것이 유명하다.

사회적 책임이 구체적으로 확립된 것은 1970년대 들어 미국의 경제학자 캐롤(Archie B. Carroll) 교수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제적, 법적, 윤리적, 재량적 책임으로 구분하면서부터다. 198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사회적 책임이 조직과 환경에 어떻게 통합되는가, 기업의 재무적 성과의 관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환경보호와 인권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한 1990년대에는 사회적 책임을 재량보다는 기업의 전략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마케팅과 운영, 인재 육성 등 다양한 영역과 통합되어 논의됐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유의미한 인식(이미지)을 획득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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