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 | 물류신문 대기자 / 인하대 겸임교수

고종황제, 우리나라는 표준궤도 채택을 공포하다
우리나라에서 철도 설치가 공론화된 것은 대한제국 시절 1876년 일본 수신사로 다녀온 김기수가 일동기유라는 견문록에 철도를 소개하고, 주미 공사였던 이하영이 기관차 모형을 궁중에서 공람하면서부터이다. 실제로 철도 부설은 고종 재위 기간(1863∼1907) 중인 1899년 경인선을 필두로 1905년에는 경부선, 1906년에는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 1897년 경인선 착공 당시 모습
▲ 경인선 주행장면

이와 관련하여 철도궤도는 처음부터 선진적인 표준궤도 1435mm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철로궤도 채택의 배경에는 열강의 권력 다툼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한 고종의 결정이 높게 평가될 만하다.
아관파천(1886년)이 일어난 19세기 말은 러시아 세력이 조선반도에 정치적 입김을 불어넣던 시기였다. 이때 러시아는 러시아와 같은 광궤도 1520mm를 채택한 열차 부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조선반도 상륙을 염두에 둔 일본은 1894년 경제력이 약한 대한제국에 일본이 철도부설권을 갖기로 하는 잠정합동조관을 체결하고 일본과 같은 협궤 1067mm 철도 채택의 편리함을 주장하였다. 일본은 1894년 대한제국에 철도부설 참여를 분명히 하고 1898년에는 일본의 주관을 분명히 한 경부철도합동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철로궤도에 관한 결정은 일본이 사용하고 있던 협궤 1067mm 궤도가 아닌 1435mm 표준 궤도가 채택된 것은 매우 아이러니 하다. 1896년 고종황제는 표준궤도의 사용을 대한제국 척령 31호로 공포하였다. 동시에 고종은 국내 최초의 경인선 (제물포와 노량진) 부설의 설계, 기술과 운영, 유지에 대한 부설권을 미국인 James Morse에게 맡겼다.(당시 계약서에는 대한제국 정부 측에 외무대신 이완용과 농상공부대신 조병식 이름으로 되어있다.)
경인선은 1897년에 착공하여 1899년에 개통되었는데 당시에 Morse가 사용한 경인철도건축 설계도(철도박물관 보관)에는 궤도 폭이 4피트8과 2분의1인치(1435mm)로 표기되어있다. 따라서 설계도면에 미국인에 의한 철로 및 궤도설계가 문서화되고 대한제국이 이를 승인하여 경인선의 철도가 이 사양에 의해 개통되게 되었고 원자재도 미국에서 수입하였다. 이 채택 배경에는 러시아의 광궤, 일본의 협궤의 채택 압력을 서로 견제하는 동시에, 향후 만주에 북경과 봉천 간에 부설한 영국의 표준궤도와 연결함으로서 원활한 물자수송을 위한다는 이유를 들어 표준 궤도를 추진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실제로 경인선 부설은 Morse가 자금난을 겪자 일본 경인철도 합자회사에게 부설권이 이양되어 일본자본에 의하여 개통되었다. 종전까지 협궤 궤도를 주장하던 일본의 입장과 달리 표준 궤도가 부설된 것은 군부의 입김이 작용한 탓이다. 향후 만주 점령과 대륙 진출을 위한 전략적 포석에서 보면 만주와 같은 철로궤도가 더 유리하다는 일본 군부의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결국 경인선에 이어 경부선까지 표준 궤도가 진척될 수 있었다.
최초의 철도 부설은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이 관여되어 있는 와중에 고종황제의 고심어린 결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표준궤도가 대부분 사용되었지만 지역선으로 수인선(수원-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이 762mm 협궤로 건설되어 곡물, 식품운반, 광물운반용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궤도가변장치의 안전성을 시험할 철도가 없다
유럽까지 운행되는 대륙간 TSR은 러시아의 광궤도를 경유해야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경에서 환적이나 대차 교환 없이 운행할 수 있는 궤도가변장치를 발명하고 현재 시험 중에 있다. 이 가변장치가 실용화되면 궤도가 다른 나라에 들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운행이 가능하다.
상이한 궤도간격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주로 세 가지가 있다. 기술적 관점에서 가장 용이한 환적(열차 갈아타기)이 있지만 많은 시간, 비용이 발생하고 화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하기 쉽대. 때문에 아예 위험물은 취급 불가능하기도 하다.
또 다른 방법은 대차교환(혹은 윤축교환)방법이 있는데 차륜과 차축을 가진 2개의 윤축을 상단에 고정시킨 대차를 분리하고 다른 대차와 교환하는 방식이다. 대차 교환시에 열차와 화물은 들어 올려야한다. 이 방식 또한 교환에 필요한 정류장 시설과 다량의 대형 기중기, 대차제작 등의 비용이 들고 교환 시 시간지연(일반적으로 25대 화물열차 경우 5~6시간 소요) 등 문제점이 발생한다.
가장 선진화 된 방안은 궤도가변 시스템의 장착이다. 다른 궤간을 달리면서도 안전에 영향을 주지 않고 국경에서 다른 부품을 장착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멈출 필요가 없는 차량시스템으로 현재 스페인과 프랑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간에서 운행되고 있다.

▲ 한국형 궤도가변장치(대차)의 동특성 시험 장면 사진제공 :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기술연구원 기술진 4~5명이 독자적으로 발명한 한국형 가변장치는 다른 유럽형보다 부품수가 적고 간결한 메커니즘을 사용한 잠금장치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우리 연구진이 약 5년 동안 약 17억 원의 비용으로 설계, 제작, 주행 시험 중인 이 장치는 우리 한국의 기술수준을 세계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놀라운 실적 중의 하나로 이미 국내외 출원을 마치 상태이다. 
다만 실제 궤도 위에서 시험을 하지 못하고 고정된 장소에서 주행동특성 시험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운행상 안전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거리에 두 가지 다른 궤도를 설치하고 상당기간의 주행기간을 거쳐야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길게는 5~10년 정도를 연결부분의 안전성과 변환된 철로궤도상에서의 속도, 중량, 곡선노선 등의 가변적 조건하에서의 안전성을 시험하고 나서 실제 운행에 투입된다.
시험용 철도의 부설, 토지의 확보, 대량의 시험용 열차의 제작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특히 러시아 등지에서의 혹독한 내한 환경시험 등을 위해 양국의 공동협력이 필요하다.
물류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이러한 혁신기술은 확실히 선점하고 확보하고 있어야 외국의 추격을 물리칠 수 있고 가능한 시점이 왔을 때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궤변가변장치 조언 및 사진제공 :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장승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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