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한 다툼내용의 아침드라마 국민정서 해쳐
- 토론문화정착으로 국민감정 순화해야

아침시간에 TV 드라마가 많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매우 전투적(?)이다. 대부분 가족, 친지들 간의 갈등으로 욕설과 울부짖음, 폭력의 장면을 쉽게 본다.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아침부터 그 기분에 젖어 싸움터로 나가는 군인처럼 전투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집 밖에만 나가면 차 타고 택시 잡는 일부터 남들과 치열한 경쟁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데 방송국이 살벌한 분위기 조성에 크게 한 몫을 더하는 셈이다.
이웃 일본이나 유럽의 아침에는 대담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룬다. 대부분 사회, 취미, 경제적인 화제로서 대화의 분위기는 한결같이 도란도란, 격한 논란 따위는 별로 없다. 아침은 하루를 시작하는 때인 만큼 밝은 마음, 가벼운 기분으로 출발해야 좋은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흔히 하는 말에 “아침부터 재수 없게…” 하는 말이 있는데 “좋은 기분의 아침은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드라마가 아침기분을 그렇게 만드는가?
여기에는 방송국의 시청률경쟁이 큰 이유인 듯. 한국에서는 드라마를 해야 시청률을 높일 수가 있고, 한이 많은 우리 시청자의 흥미를 끌어 모으려면 드라마 내용이 격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TV탤런트 공모할 때 무슨 연기를 해보라고 하면 한이 맺힌 신파조의 울분을 토해 내거나 상대에게 통쾌한 일격을 먹이는 격한 감정표출이 가장 많은 것을 봐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서양사람들이 대중 앞에 서면 농담이나 유머 섞인 말을 해서 사람들을 웃겨보려고 하는 점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방송국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우리국민들의 정서나 관습에도 문제는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이점을 고쳐야 한다. 내가 처음 비디오카메라를 샀을 때 친구들이 회식하는 모습을 담아 뒤에 같이 틀어보면 아주 재미있어 하곤 했다. 그런데 한번은 촬영하다가 끄는 것을 잊어먹어 나중에 틀어보니 화면은 한 곳에 고정된 채 소리만 녹음이 되어있는데 이것을 들어보고는 놀란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좌중에는 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저마다 입 달린 사람은 다 지껄이는데 하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을 하니 누구의 말인지 잘 식별되지 않았다. 작게 말을 하면 자기 말은 안 들리니까 점점 더 소리가 커지고 듣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대담이 아니라 싸움판 같았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을 해도 신경 집중하면 듣고자하는 사람의 말만 선택적으로 들을 수가 있지만 녹음기는 이런 지능이 없으니 모든 사람의 말을 똑 같이 강약대로만 녹음하니까 녹음된 것은 소음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 우리말은 ㄲ, ㄸ, ㅆ, 등 된소리와 ㅊ, ㅋ, ㅍ, ㅌ 등 거센소리가 많아 술 취해 떠들 때는 자칫 다투는 소리로 들리기가 쉽다.
서양사람들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서로 나직하게 오순도순, 다른 사람의 말하는 것을 가로채서 말하는 것을 삼간다. 성경에 “한 사람이 말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을 들어라” 는 가르침이 있는데 그 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에 이런 질서가 지켜지나 보다.
반면 우리는 ‘재하자 유규무언’, ‘침묵은 금’ 이라는 등 ‘입에 빗장을 지르는 말’로 아랫사람들의 말을 막아온 문화의 잔재 때문인지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평소에 억제되어 있다가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 말문이 터지면 봇물이 터지듯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면도 있다.
점점 인간관계나 생활감정이 각박해지는 요즈음 감정을 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접촉해서 대화를 나눌 때 유쾌한 시간이 되도록 토론문화를 바르게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독일인들의 파티를 가보면 참석자는 보통 2시간동안 끝까지 대화를 즐기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시작 30분 이내에 중요한 사람은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이것은 남과 악수를 나누는 일 이외에는 별로 하는 말도 듣는 말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새마을 교육에서는 토론문화를 함양하기 위하여 분임토론 등의 토론요령과 기법까지 훈련시켰다. 범국민적 의견교류의 필요성과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방법까지 마련했던 그의 혜안이 얼마나 탁월했던가 새삼 느껴진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일어났던 물류대란을 보고 오늘날 위정자나 전 국민 특히 언론매체들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호영 - 베네모어통상 대표/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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