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역현장부터 스타트업까지 대응책 마련 시급

지난달 27일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확대된 가운데 시행을 유예하는 개정안이 불발되면서 물류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류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는 공감한다는 입장이지만 50인 미만 사업장 중 상당수는 영세해 대응책 마련은커녕 아직 법안 검토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안전관리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한 사고를 방지해 종사자와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즉, 사고가 발생한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을 방지할 수 있도록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했는지를 따지는 것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관리와 사고의 인과관계를 살펴본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의 책임자가 현장실무자라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최상위관리자(경영자 등)에게 책임이 귀속된다. 또한 양벌규정과 과태료 외에 징벌적배상책임(민사)이 주어진다는 점도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징벌적배상책임은 미국의 징벌적손해배상과 비슷한데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할 수 있다. 

문제는 50인 미만 업체들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는 641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는데, 법안 시행을 앞두고 준비를 완료한 기업은 22.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9.6%는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36.8%는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준비와 관련해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는 “준수해야 하는 사항들이 너무 많다(53.7%)”라는 점을 꼽았다. 또한 51.8%는 “안전관리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고, 42.4%는 “비용 부담이 과도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안전수칙 준수 소홀한 물류현장 많아
물류업계에서도 준비가 부족한 업체들이 상당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부터 새로 법안 적용을 받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을 점검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만하역, 항공화물, 터미널, 물류센터, 풀필먼트 등이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 사업군이다. 해당 사업군의 업무환경은 대부분 지게차와 같은 크고 작은 장비들과 종사자들이 뒤섞여 일을 하는 형태다. 그러나 현장 관계자들은 작업 동선은 효율만 중시하고, 안전수칙은 작업자 개개인이 알아서 지키라는 식으로 소홀하게 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일이 바쁘면 안전수칙 준수가 미흡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소규모 풀필먼트 업체나 스타트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업계에서는 겉보기엔 규모만 작을 뿐 영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안전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 풀필먼트 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시장이 워낙 치열하고 눈앞에 성장에 급급한 현실 때문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어떤 내용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유예가 답은 아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류업계에 만연한 하청문화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더욱 취약하다. 하청업체(도급)들이 안전수칙 준수보다 빠른 일처리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설업계에서는 검찰이 하청업체는 물론 원청업체에게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처벌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하청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원청업체들은 사고의 책임은 하청업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원청업체들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서둘러야
취재에 응한 물류기업들은 출발은 늦었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등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안내를 하고 있지만 이를 알고 있는 경영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전략의 핵심은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실제 이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상대응 메뉴얼과 같은 내부 규정을 만들고, 사전에 위험요소를 파악해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과장됐거나 와전된 정보도 걸러야 한다. 최근 업계에 50인 미만 사업장도 안전관리자 등을 배치하고 전담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으나 산업안전법에 명시된 내용에 따르면 △제조업, △임업, △하수·폐수 및 분뇨처리업, △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및 원료재생업, △환경정화 및 복원업만 해당된다.

아울러 재해가 발생했더라도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아두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대상은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안전보건 조치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50인 미만 기업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Q&A’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50인 미만 기업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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