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탄소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올해부터 탄소 배출권 거래제 적용 범위를 확대하거나 관련 규제를 신설, 시범운영을 개시했으며 일부는 늦어도 하반기 내에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동안 탄소 관련 규제는 대부분 제조기업과 생산시설에 초점을 두고 있어 물류기업에게는 크게 체감할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해운분야에서 탄소 규제에 따른 비용 지출이 현실화됐으며, 향후 세계 곳곳에서 항공운송과 육상운송 등의 규제 강화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탄소 관련 주요 동향과 규제 정보를 정리했다.

가장 빠르고 강력한 변화, EU의 CBAM
EU(유럽연합)는 탄소 관련 규제와 배출권 거래 확대에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꼽을 수 있다. CBAM은 탄소 규제가 엄격하지 않은 국가를 활용하는 편법을 막기 위한 제도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하면 탄소 관련 원가를 감축할 수 있고 배출권 등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 이는 유럽 내 생산기업들에게는 비용과 절차 등에서 불공정한 상황이 되므로 수입 품목에 대해 비슷한 수준의 규제를 두어 이를 상쇄한다는 취지다.

EU는 철강과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기, 수소까지 총 6개 품목을 유럽지역에 수출하는 EU 회원국 외 제3국 기업에게 탄소 배출량을 분기마다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수입업자는 보고된 내용을 바탕으로 1톤당 인증서 1개를 구매해야 한다. CBAM은 올해, 정확히 이달 31일에 첫 번째 보고가 이루어진다. 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은 수출물량의 tCO2e당 10~50유로의 벌금이 부과되며, 기한을 초과하거나 허위 사실이 적발되면 벌금이 늘어난다. 다만 아직 탄소 감축 전환기라는 점을 감안해 2024년까지는 EU의 탄소 배출량 산정 방식 대신 자국 혹은 제3국의 규정에 따라 계산한 내용도 인정하고, 2025년까지는 보고서만 제출하면 된다. 2026년부터는 인증서를 구입해야 한다(인증서 가격은 EU ETS에 따라 변동됨).

△CBAM 적용 대상 품목코드(출처 : KOTRA, 알기 쉬운 EU 통상 정책 시리즈)
△CBAM 적용 대상 품목코드(출처 : KOTRA, 알기 쉬운 EU 통상 정책 시리즈)

EU의 CBAM은 유럽 수출입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CBAM은 국경 간 탄소 배출권 거래제 활성화에 앞서 시장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탄소 배출량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데 세계 각국은 자국 산업계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산정하도록 제도를 마련해왔다. 따라서 배출권 거래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빠른 시행은 유럽지역 내 기업들의 불공정 불만 해소는 물론 시장의 표준을 주도하겠다는 의도라는 것. 유럽지역의 규제가 정착된다면 북미나 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일정부분 이를 따라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점점 확대되는 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
BRICS의 한 축인 브라질은 올해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확대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작년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브라질은 우선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화학, △원유, △천연가스사업을 대상으로 시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연간 2만 5,000톤을 초과 배출한 기업들은 배출권을 구매하고, 이하 기업들은 남은 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특히 브라질은 세계 7위 탄소 배출국으로, 배출권 거래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남미 최대 배출권 거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이를 통해 남미의 탄소 경제시장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브라질의 주력사업인 농식품과 축산업이 빠졌기 때문에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호주는 올해 호주탄소배출권(ACCU) 거래 시장 확대를 위해 별도의 등록기관을 신설하고 탄소와 재생에너지 등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인증서를 통합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또한 추후에는 증권거래소를 통한 거래 플랫폼도 추진할 예정이다. 호주 정부는 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효율성 향상을 위해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요 대비 공급량이 급증한 상황에서 거래량을 더욱 늘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일본은 호주보다 더 빠른 지난해 10월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정부가 발행하는 탄소 배출권 J-크레딧(J-Credit)의 거래를 시작했다. 현재 일본은 탄소중립을 위한 GX(녹색전환, Green Transformation) 추진전략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 일환 중 하나로 기업 간 자발적인 탄소 거래를 위해 J-크레딧이라는 인증서 개념의 배출권 제도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J-크레딧은 적정 가격 산정 문제, 수요자와 공급자가 직접 서로를 찾아야 하는 등의 문제로 실제 거래 규모가 작았다. 이에 일본은 J-크레딧 거래 시장 활성화와 기업의 탄소 배출량 감축 유도를 위해 증권거래소를 선택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개장 첫날 약 3,700톤 수준의 배출권이 거래됐으며 향후 연간 50만 톤 이상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시장 자체가 일본 내 기업들에 한정되어 있는데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어 다른 국가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 책정된 점은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는 데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2025년 세계 3위 탄소 배출국이 될 인도도 탄소 배출권 거래를 시행할 계획이다. 인도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우선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제지산업으로 대상을 한정하고, 배출량 제한 기준을 설정해 허가를 받아야만 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4개 산업군이 전체 인도 산업의 탄소 배출량의 약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 시장 규모는 연간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 주요국 배출권거래제(ETS) 도입·운영 현황(출처 : KDB미래전략연구소, 황현정, 아시아 주요국 탄소가격제 도입·운영 현황)
△아시아 주요국 배출권거래제(ETS) 도입·운영 현황(출처 : KDB미래전략연구소, 황현정, 아시아 주요국 탄소가격제 도입·운영 현황)

해운업계, 유럽서 ‘탄소 할증료’ 부과 시작
물류산업 가운데 탄소 규제가 본격화된 분야로 해운업계를 꼽을 수 있다. EU는 올해부터 해외에서 유럽 내 항만에서 운항하는 5,000GT 이상 선박을 대상으로 EU 탄소 배출권 거래제(EU-ETS)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해당 선사들은 올해 총 탄소 배출량 산정값의 40%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내년에 구입해야 한다. EU는 산정값을 2025년은 70%, 2026년은 100%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또한 유럽 내 항만에서 타 지역 항만으로 해상운송하는 경우에도 50%에 해당하는 배출권 구매 의무가 부여된다.

이에 주요 선사들은 EU-ETS의 할증료 부과 방침을 밝혔다. MSC는 지난 1일부터 EU 항만을 기항하는 모든 선박과 전체 항해 중 유럽연합을 50% 이상 기항하는 선박을 대상으로 할증료를 부과하고 있다. 북유럽-동아시아 노선은 20피트 컨테이너 기준 1TEU당 22유로, 리퍼 컨테이너(냉동냉장 컨테이너)는 20유로가 추가된다. 북미-유럽 노선은 1TEU당 18유로, 리퍼 컨테이너는 27유로의 할증료가 책정되는 등 다양한 항로에서 할증료가 부과되고 있다. 

중국선사인 COSCO는 EU-ETS에 대한 할증료를 산정했는데 아시아에서 북서유럽으로 가는 선박은 1TEU당 28유로, 리퍼 컨테이너는 42유로이며 북서유럽에서 아시아로 운송할 경우 1TEU당 19유로, 리퍼 컨테이너 29유로다. 아시아에서 지중해 방면 노선은 1TEU당 19유로, 리퍼 컨테이너는 29유로이며 지중해발 아시아향의 경우 1TEU당 11유로, 리퍼 컨테이너는 17유로로 책정됐다. 머스크는 아시아-유럽 노선에 1TEU당 70유로를 책정했으나 42유로로 할인된 금액을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한나 연구위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EU-ETS를 적용받는 국적선사들의 탄소세 비용부담액은 1조 700억 원에서 최대 4조 8,916억 원이 예상되며, 탄소배출권거래제 비용부담액은 최소 2,163억 원에서 최대 8,30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배출가스의 구분(출처 : KOTRA, 알기 쉬운 EU 통상 정책 시리즈)
△배출가스의 구분(출처 : KOTRA, 알기 쉬운 EU 통상 정책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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