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립 로지스밸리천마 대표이사(물류학 박사)

우리는 지금 물류 변곡점에 살고 있다. 1996년, 2004년, 2022년! 필자가 생각하는 물류창고업의 변곡점이다. “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 비즈니스의 변곡점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라는 명제에 동의한다.

1996년
‘유통물류’와 ‘물류인프라’가 부각된 해다. 우리나라의 유통산업은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백화점, 전통시장 중심의 이중 구조에서 대형마트, 무점포판매업 등 다변화된 구조로 변화했으며 대형업체가 주도하는 ‘기업형 유통’으로 전환됐다. 1995년 홈쇼핑, 1996년 온라인 쇼핑몰이 차례로 등장하며 소화물 물류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던 기업들은 업무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물류 기지에 주목했다. 현대화된 설비를 갖춘 물류 기지를 늘리는 것이 소화물 물류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화물을 메인 허브터미널로 모은 후 분류해 배송하는 ’허브앤스포크(Hub & Spoke)’ 방식을 도입했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그동안의 제조업 중심의 물류 핵심은 상품을 보관해두고 필요에 따라 입출고만 하면 되는 ‘창고’ 기능이었다. 하지만 유통 시대를 맞이하면서 단순 보관 창고를 줄이고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속도’가 중요해져 창고는 ‘물류센터’(distribution center)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거대해진 유통물류와 소화물(택배) 운송의 핵심이 ‘물류인프라’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2004년
‘물류부동산’이 태동한 시기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물류부동산 개발 투자사가 한국에 진출했던 때가 2004년이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외국 자본 진출은 대세가 되었다. 물류부동산 개발 투자사(REIT, 부동산투자신탁 업계)들은 미국의 수익률 하락에 따라 해외 투자 기회 탐색 중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주요 대상지로 삼았던 것이다. 물류 창고 건설을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투자신탁 회사인 프로로지스(Prologis)와 AMB가 국내 수도권 물류거점과 공항만을 중심으로 물류 창고를 건설했고 더불어 미국 내 가장 큰 부동산투자신탁사인 사이몬 프라퍼티(Simon Property)도 여주에 유통 아울렛을 세웠다. 당시 외국 자본 유입은 ‘물류선진화’와 ‘금융과 물류를 연계한 글로벌 물류네트워크 구축’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외국 투자회사의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대형화와 전문화된 물류센터를 공급함으로서 국내 영세 물류창고 사업자들이 설 땅을 좁아지게 만들었다. 국내 물류센터 투자 대부분을 외국계 자본이 장악함으로서 물류부동산 ‘투기’ 우려라는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국자본의 물류부동산 자산운영이란 개념은 이후 온디맨드(On-Demand) 시대와 맞물려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상품’을 ‘즉시’ 공급하는 것이 변수가 되었다. 이는 속도만이 아닌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의 서비스 제공을 요구하며 물류센터(D.C)가 ‘풀필먼트 센터’(Fulfillment center)로 진화(進化)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22년
차세대 물류의 핵심 성장 동력이 ‘이커머스(전자 상거래)’와 ‘풀필먼트 서비스’가 되었다. 언택트 시대가 물류와 산업의 명암을 가르고 있고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며 우리의 일상이 통째로 바뀌었다. 새로운 소비패턴에 부합한 이커머스 기업의 물류서비스는 전통적인 유통산업을 뒤흔들었고 미래 생존을 위해 제조기업과 유통기업은 이커머스 기업과 같은 풀필먼트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면서 양보 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 

핵심은 물류로 돈을 번다는 인식의 변화다. 물류가 비용이라는 시대가 지나 수익이고 밸류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이커머스 업체에게 물류부동산이 곧 경쟁력임을 시사한다. 아마존과 쿠팡은 더 이상 유통회사가 아닌 물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글로벌 유통 기업들도 택배 네트워크와 물류창고 거점을 통합하는 등 이커머스 풀필먼트 시장 장악을 위한 치열한 샅바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가장 빠르게 늘어난 물류 인프라는 풀필먼트 센터, delivery station, regional sortation center 등으로 명명되며 당일·지정시간·2시간 내 배송 등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풀필먼트 서비스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풀필먼트는 단순 창고 개념이 아닌 첨단 기술을 활용해 물류 전체 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서비스로 물류기업에 생산성 증가와 비용 절감을 통한 지속적 성장을 촉진했다. IT 기반 소프트웨어로 빅데이터 연동, AI와 IoT 로봇 등 첨단 기술 접목은 맞춤형 물류 서비스와 이커머스 산업에 최적화된 물류 프로세스로 미래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변곡점에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25년 전인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도 기업처럼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해인 1998년 경제성장률은 –5.5%를 기록했다. 14년 전인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달러의 소중함을 실감케 했고 다음해인 2009년 경제성장률은 0.2%였다. 금융위기는 10년에 한 번 꼴로 반복되기에 2018년부터 많은 전문가가 2020년에 금융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지만 2020년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원인으로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전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지금은 슬기롭게 극복하고는 있지만 잠재되어 있는 금융위기의 불안은 떨쳐버릴 수 없다.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아니 달라졌다. 물류환경에서의 변곡점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우리는 새로운 로지스틱스(Logistics) 시대를 개막할 수 있을까? 우리만의 물류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창고(물류센터, 풀필먼트센터) 더 이상 산업의 변방이 아니다. 앞으로 물류센터는 위기 상황에 맞추는 유연성을 지닌 ’공급자‘로, 모든 산업의 ’지식센터‘로, 그리고 공급망(SCM)에서의 ’조정자‘이면서 ’관리자‘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또한 물류 변곡점을 넘어 새로운 번영의 길로 향해 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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