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40

‘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를 지난 4년 간 연재했는데. 이번 40편이 마지막이다. 첫 기고문은 배 안에 철로를 깔아놓은 선박, 즉 ‘레일페리(Rail Ferry)’에 대한 소개였고 마지막 편은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레일페리를 운항하자’로 끝마치고자 한다.

중국과 서해안 레일페리는 어렵다
1990년대 말부터 인천과 중국을 잇는 서해안 레일페리가 검토되어 왔다. 그러나 20년이 흘렀는데도 서해안에서 일반 선박은 운항되고 있지만 레일페리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표준궤로 궤폭이 같아 레일페리를 사용하기 적합한 환경인데도 말이다. 중국과 물류가 이루어지는 건 대부분 중국 동부 해안 지역이지 내륙 깊숙한 곳이 아니다. 따라서 한-중 물류는 해송과 철송이 아니라 해송과 트럭 위주로 구축되었다. 

중국은 세관의 서류 검사, 트럭 공급, 철도 화차의 공급이 신속한 편이다. 그래서 중국 부두에서 통관하고 반출시키는 것이 빠르고 편하다. 그래서 굳이 한-중 서해안 레일페리를 사용할 이유가 적다. 

또한 러시아나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을 위해 한-중 서해안 레일페리를 운용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화차가 중국을 관통해도 카자흐스탄이나 러시아 국경에 도착하면 러시아 궤로 궤폭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표준궤만으로 중국~(카자흐스탄)~러시아~유럽까지 도착할 수 있다면, 서해안 레일페리는 운항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동해안 레일페리는 효율적이다
통상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선박이 러시아 부두에 도착하면 화물을 선박에서 양하하고 다시 러시아 화차에 적재하면서 철로에 태운다. 그러나 레일페리를 사용하면 우리나라 부두에서 화물을 러시아 화차에 태운 후 레일페리로 동해를 건너 러시아 부두에서 철로에 태운다, 화물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에 도착한다. 참고로 유라시아에서 이미 화차에 올린 화물은 철도청이나 세관에서 잘 건드리지 않는다. 

이것을 내리거나 올리려면 번거롭고, 앞뒤 열차의 스케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화차에 올린다는 의미는 화차에서 화물을 내릴 때까지 운송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레일페리는 ‘철로를 가진 선박’이라기보다 ‘선박 안에 놓인 철로’다. 해송의 기능이 아닌 철송의 기능이 크다. 일반페리는 철송과 해송의 분리이지만, 레일페리는 철송의 연장선이다. 게다가 레일페리는 30여 가지의 다양한 유라시아 화차를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컨테이너보다 2~3배나 더 부피가 큰 박스 화차도 실을 수 있는데, 속초 창고에서 박스 화차의 옆문을 열고 화물을 실은 뒤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의 작은 창고에 도착해서 다시 옆문만 열면 내릴 수 있다. 레일페리는 러시아 부두에서의 적재 시간을 줄여주므로 화물의 분실, 멸실, 도난의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레일페리의 신속성
레일페리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성이다. 컨테이너를 부산에서 선적하고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양하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운송한다고 치자. 그럼 해상 3일+항구 통관 4일+화차 대기 5일+열차 준비 3일+철송 10일=총 25일이 소요된다. 그런데 레일페리는 해상 3일+항구 통관 2일+화차 대기 0일+열차 준비 3일+철송 10일=총 18일이 소요된다. 약 7일이 줄어든다. 

특히 모스크바, 타슈켄트, 바르샤바, 프랑크루르트, 페테르부르크, 알마티 등 대도시로 향하는 컨테이너 약 50개를 모으면, 레일페리 안에서 직통 급행열차를 바로 만들면 된다. 우리나라 부두에서 선적 후 폴란드나 헝가리 국경까지 18일이면 주파할 수 있다.

벌크 화물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평균 30일 정도는 대기해야 화차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언제 화차가 준비되는지 명확하지 않은 채로 선적해야 한다. 만약 레일페리가 운항된다면 화차가 우리나라 부두에 도착해 있거나 언제 도착할 것인지를 확인한 후 선적할 수 있다. 

벌크 선박은 비정기적으로 운항되기 때문에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한-러 구간을 운항한다. 따라서 벌크를 선적하려면 오래 기다리거나 대규모 물량을 선적해야 한다. 화차가 통상 50톤~60톤 정도를 운반할 수 있으므로, 그 정도 양의 벌크 화물도 레일페리가 운영된다면 선적이 수월해진다. 벌크 운송기간도 약 15일 정도 줄일 수 있다. 

레일페리의 높은 운송료
바다 혹은 강과 같은 장애물이 나오더라도 레일페리는 신속하게 양쪽의 철로를 연결한다. 하지만 레일페리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선박에 철로를 깔아두었기에 그만큼 적재 공간이 줄어든다. 

따라서 레일페리는 일반적인 선박보다 운항비가 비싸다. 그래서 1,000km 이상 운항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략 하루 이내에 운항할 수 있는 거리. 즉 600km 이내가 적당하다. 러시아의 발트해, 흑해, 중앙아시아의 카스피해, 그리고 동해안 북동쪽의 사할린섬 인근에는 레일페리가 활발하게 운항된다.

레일페리가 동해안에 필요한 이유
유라시아 철로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은 한반도 철도 물류에 있어 꿈이고 비전이다. 유라시아 철로에 접속하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허락하지 않으며,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도 있다. 그럼 북한을 거치지 않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바다 위에 철로를 깔 수는 없으니 레일페리를 동해안에서 운항함이 좋다. 

북한을 경유하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쉽지 않다. 약 700km에 달하는 북한 철도를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최소 1조 원, 많게는 10조 원이 들 수도 있다.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서 북한을 관통하는 것은 물류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고, 국내 분열을 일으킬 수 있으며, 북측에 의하여 언제든 중단될 개연성도 있다. 

레일페리를 운용하면 우리나라 부두에 약 4km 정도, 그리고 선박에 1km 정도, 러시아 부두에서 약 1km 정도를 설치하므로 약 5~7km의 철로만 깔면 된다. 최소한 200억 원에서 많게는 약 500억 원이 들겠지만 리스크가 적다.

속초~블라디보스토크 
우리나라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는 선박의 대부분은 부산에서 출발한다.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30여 년간 일관되고 안정되게 유지해온 물류 루트다. 그럼 부산~블라디보스토크를 운항하는 일반선박과 레일페리가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 운항거리를 줄여야 한다. 

남부지역 보다는 속초, 강릉 등에서 띄운다면 운항거리는 줄어들고, 운항횟수를 늘릴 수 있다. 최근에는 속초에 고속도로가 뚫려서 수도권, 강원권에서는 내륙 운송비와 운송시간이 더 줄었다. 

속초와 강릉 항구는 북방 항로를 꿈꾸며 러시아와 일본으로 운항하는 선사들에게 많은 보조금을 주면서 동해 국제선 정기 항로를 유지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일반 선박으로는 부산과 경쟁할 수 없음을 지난 십여 년간 보여주었다.

Stena Line, 한창해운, 동춘항운, Eastern Dream 등이다. 속초에는 북한으로 향했던 크루즈선이 정박하는 항구와 차량 주차장 공간이 비어있어서 레일페리가 운항할 수 있는 부두와 물류창고를 지을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다소 쉬운 편이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는 여러 부두들이 있으며, 부두들은 각각 철도 화물역을 가지면서 시베리아 철도에 연결된다. 속초~블라디보스토크는 레일페리의 최적 루트다. 

레일페리의 운항 조건 
레일페리를 운항시키기 위해서는 세 가지 물류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첫째, 속초 인근에 레일페리 전용 부두와 물류창고를 마련하고, 러시아 궤를 약 4km정도 설치한다. 
둘째, 일반페리 1~2대를 개보수하여 레일페리로 전환한다.  
셋째,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의 부두에서 인근 철로까지 약 1km의 철로를 설치한다.     
그럼 러시아, 카자흐스탄, 라트비아 등 러시아 궤 화차들이 속초로 들어올 수 있고, 우리나라 화주들은 유라시아 철도를 보다 효율적으로 누릴 수 있다. 

이미 유라시아의 화차들은 대부분 경쟁체제이며 민영화가 되어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흑해에서 레일페리를 차터(Charter)하여 14개월 동안 러시아와 터키를 13회 왕복 운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필자는 레일페리의 신속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한편으로 레일페리는 임시적인 조치일 뿐이며, 결국은 부산~속초~나진~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중앙아시아)~모스크바~유럽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속초~블라디보스토크에 레일페리를 운항하는 것을 정부에서 검토해주었으면 한다.

‘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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