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안 항목 각종 선행조건, 실행과정 어긋날 경우 후폭풍 더 커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파업 찬반투표 마지막 날인 21일 새벽, 노사간 쟁점이던 분류작업 책임 등 각종 현안에 대해 최종 합의, 택배대란은 일단 멈췄다. 하지만 합의안의 실행과정에 다양한 걸림돌이 여전히 남아, 언제든지 택배서비스의 멈춤은 재현 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합의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 동안 택배기업과 택배근로자들 간 첨예한 쟁점이던 분류작업에 대한 택배사 책임을 명시하는 한편 주간(6일)최대 노동시간을 60시간으로 제한하는 등 택배기사 노동시간을 줄일 대책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원칙적’ 및 ‘자동화 장비 도입’, '가격인상을 위한 연구용역'등 애매하고, 물리적 시간이 걸리는 각종 선행 조건이 달려 있어 어느 한 항목이라도 실행 과정에서 어긋날 경우 택배시장의 파행 운영은 지금보다 더 큰 후폭풍을 더욱 키울 것으로 우려된다. 택배서비스의 총파업은 철회됐지만, 남은 문제는 무엇인지 점검해 봤다. 
  

 

명확한 ‘분류작업’ 정의 못 내리고, 대안도 없이 파업 봉합만
  
정부가 조정한 택배노사간 합의 안을 살펴보면 택배노동자 과로 방지 대책을 대거 담았다. 우선 합의안에서 정의한 분류작업을 ‘원칙적(?)’으로 택배기업의 책임으로 하되 비용은 대리점과 분담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대리점이 편법으로 분류작업 비용을 일선 택배기사에게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와 함께 택배기업은 분류작업 설비 자동화를 추진하고, 자동화 이전까지 택배기사가 불가피하게 분류작업을 하게 되면 분류인력 투입비용보다 높은 비용을 택배기사에게 지불하도록 했다. 택배기업과 대리점이 지금처럼 택배기사에게 분류작업을 시킬 유인을 없애 과로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분류작업을 원칙적으로만 택배기업 책임으로 명시함에 따라 추가 비용에 대한 보완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정의는 ‘원칙적’이란 단어로 인해 원점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추가 분류작업 비용과 자동화 추진 자금등 1천 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소요될 수 있을 만큼 택배가격 인상이 늦어질 경우 택배기업의 부담이 증가하게 되면 이번 합의의 지속은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빠른 택배가격 인상은 불가피해 졌다.  

이와 함께 이번 합의안에서 노동 환경 개선 항목도 대거 들어 갔다. 당장 택배기사들은 주 60시간을 초과해 작업할 수 없도록 최대 작업시간을 정해 올해 상반기 내에 시행하기로 했다. 야간노동도 제한된다. 이로 인해 택배기사 당 배송물량이 축소돼도 현재 수입 수준을 보전한다. 이를 위해 택배기업와 대리점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에 대해서는 거래구조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거쳐 택배비·택배요금을 현실화한다. 

이 같은 합의안 역시 거래구조 개선 연구용역이 상반기 안으로 이뤄져 시행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각각의 택배기업들 별로 분류작업비와 자동화 분류장비 도입 규모와 설비 상황도 달라 택배가격에 현실화 과정도 녹녹치 않을 전망이다.
 
합의 항목 시행에 정부 및 국회, 세심한 조정력 절실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이하 사회적 합의기구)가 21일 새벽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번 1차 합의문은 장시간·고강도 작업으로부터 택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2월7일 출범, 3차례에 걸친 전체회의, 2차례에 걸친 분과회의를 통해 국회, 사업자, 종사자, 소비자, 화주, 정부 등의 합의를 거쳐 마련한 것이다.

문제는 합의문이 첨예하게 이견이 있는 분류작업과 택배기상 근로시간등 실질적인 과로 방지대책을 위한 내용에 큰 추가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국회와 정부는 구정 설등 택배성수기를 코앞에 두고 파업여부 투표에 나선 택배노조를 달래기 위해 극적인 합의 항목을 내 놓았지만, 여기엔 모두 추가적인 천문학적 비용추가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다.

특히 과로사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에 대한 명확한 책임의 경우 여전히 택배기업 혹은 택배기사 몫으로 정의하지 않은 점은 두고두고 이번 합의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택배노동자의 작업시간을 주 최대 60시간, 일 최대 12시간 목표로 하고, 불가피한 사유을 제외하고는 9시 이후 심야배송을 제한하기로 함으로써 적정 작업시간을 보장한 것 역시 배송기사 추가 인력 충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큰 만큼 이에 대한 보완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번 합의를 이끈 민생연석회의 수석부의장 우원식 의원은 “그동안 택배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노동자 처우개선, 불공정 관행 개선 등 제도가 뒤따르지 못했다”며 “이번 1차 사회적 합의는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나 과로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고, 택배산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구정 설을 앞둔 택배산업 최대 성수기에 파업은 이번 합의로 큰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택배현장에 얼마나 빨리, 또 어느 정도의 과도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택배업계 한 원로는 “택배서비스 총파업에 찬반투표는 결과를 안 봐도 100% 가까운 찬성이 나왔을 터”라며 “이번 합의안이 택배현장에 연착륙하고, 실제적으로 과도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빠른 가격인상과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은 정부와 국회가 이번 합의에 보다 책임감을 갖고 후속 대책을 빠르게 내 놓아야 함을 의미한다. 

정부와 국회가 이번 합의를 이끌어낸 조정력을 얼마나 더 세심하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코로나19 정국에서 생활물류산업의 안정화는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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