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39

이번 호에서는 나진 물류 프로젝트에 대하여 알아본다.

나진-훈춘-하산
나진은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북한의 동해안 항구로 중국 및 러시아와 가깝다. 한반도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하는 최전방에 위치해 있다. 북한의 나진-중국의 훈춘-러시아의 하산 지역은 북-중-러가 만나는 삼각 무역지대다. 원래 훈춘과 하산은 중-러 국경 교역이 활발한 곳이다. 하산과 훈춘을 오가는 도로는 포장도로이며 대형 화물차들과 여행객들이 즐비하지만 하산과 나진을 오가는 도로는 비포장도로에 군인 차량이 거의 대부분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나진-하산, 나진-훈춘 프로젝트가 논의되었고 가동되었다. 그리고 2013년 8월 나진항에서 훈춘을 잇는 북-중 철로가 개통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2013년 9월에 나진항에서 하산을 잇는 북-러 철도가 개보수되었다. 나진항에서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로 향하는 두 개의 물류 루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나진~훈춘~하산이 동북아의 중요한 교역지대로 떠오르는 시점이었다.
 
나진~중국
중국의 만주는 통상 서해의 대련 항구를 사용하지만 만주의 동부 지역은 동해가 더 가깝고 편하다. 동해를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 러시아, 태평양과 중국 상해나 홍콩 지역으로도 갈 수 있다. 중국은 ‘차항출해(借港出海)’ 즉, 다른 나라의 항구를 빌려서 동해와 태평양으로 진출했는데, 중국이 사용해왔던 항구는 러시아 연해주의 ‘자루비노항’과 ‘블라디보스토크항’이었다. 자루비노는 하산에 있는 한적한 어촌이고 조금 더 가면 연해주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가 나온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온 선박들은 자루비노나 블라디보스토크항을 통해 만주로 여행객과 화물을 운반해왔다.

중국은 러시아를 통해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지만 연해주보다 북한을 경유하는 것이 편하다. 중국은 ‘훈춘-나진’ 루트를 깔았다. 훈춘과 나진 사이의 약 50km 구간에 철로와 4차선 도로를 건설하고, 나진 항만에 2개의 자국 전용부두까지 설치하였다. 이로써 중국은 러시아를 경유하지 않고도 북한을 통해 동해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자루비노항은 너무 작고 블라디보스토크항은 너무 멀었는데 나진항은 더 크고 약 130km나 가깝다.

나진~하산
러시아는 중국이 나진항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견제해야 했다. 연해주에는 블라디보스토크, 나호드카-보스토치니, 자루비노 등 항구에 여유가 충분함에도 러시아는 중국의 동해 진출을 견제하기 위하여 나진항까지 진출했다. 바로 ‘나진-하산’ 루트다.

나진~하산에는 약 54km의 낡은 철로가 깔려 있었는데 러시아 철도청은 이 낡은 철로를 제거하고, 1,435mm의 한반도궤와 1,520mm의 러시아궤를 덧붙였다. 즉, 이중궤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비용절감을 위해 복선이 아닌 단선을 깔고 나진항에 러시아 전용의 부두를 1개를 확보했다. 러시아와 북한은 무려 5년 간 철로 개보수 작업 끝에 2013년 9월 개통식을 열었다. 중국이 북한을 경유하는 동해 항구가 필요한 것은 이해되지만 동해를 차지한 러시아가 나진항을 사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땅에 들어가니까 러시아도 들어간 것이다. 반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가 나진항에 투자한 덕에 우수한 항만-철로 시설을 얻은 셈이 되었다.

라손 콘트란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2008년 7월 러시아가 지분의 70%, 북한이 30%를 가진 라손 콘트란스라는 합작법인이 설립되었다. 러시아 철도청은 철로와 부두에 약 3,000억 원 정도의 현금을 투자하였고 북한은 토지와 부두를 제공하였다. 나진-하산 철로가 개통된 이후 2013년 11월 서울에서 박근혜-푸틴의 한-러 정상회담에서 양해각서가 체결된다. 포스코, 현대상선, 코레일 등 우리나라가 러시아 지분의 49%을 구매하기로 한 것이다. 나진항을 통한 러시아~북한~남한 물류가 시도되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석탄, 백두산 생수 등을 나진항에서 현대상선이나 중국 선사를 통하여 선적한 후 포항, 당진, 부산항으로 3~4차례 운송했었다. 나진항을 통하면 블라디보스토크항 대비 물류비가 절감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물론 러시아 철도청이 나진항 선적 시 철송료를 특별히 낮춰주기 때문에 물류비가 절감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블라디보스토크항 대비 철송료는 훨씬 비싸다. 러시아와 북한은 인위적으로 나진 물류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가동하였고 우리 정부도 참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거듭된 남북대결 구도로 얼마 못 가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2016년 3월 우리나라 정부는 러시아에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더 이상 추진할 수 없음을 통보하였다.

나진, 무용지물이 되다
나진항은 실용적인 노선이 아니다. 중국은 북한과 동해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러시아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북한을 러시아편에 두려고 진출하였다. 즉, 나진항은 정치-외교-군사적인 산물이지 실용적인 물류노선 개발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은 나진항을 이용해 ‘남~러~중~북’이 연결되고 소통하는 것을 용납하려고 하지 않는다. 러시아 철도청은 우리나라에 라손 콘트란스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서도 경영권은 유지한 채 투자금을 조기 회수하려고 하였는데 차질이 빚어졌다. 그리고 몽골에 매각도 검토했지만 쉽지 않았다.

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남-북-러-중 모두 나진을 통한 물류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감이 높아졌었다. 러시아가 유엔에 힘을 써서 그나마 유엔 대북제재의 예외조항으로 인정받았지만 미국의 제재는 유지되었다. 북한에 기항한 선박은 1년 동안 우리나라에 입항할 수 없기에 나진은 결국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진 물류 프로젝트는 한반도 물류에 여러 시사점을 안겨주었다.
첫째, 물류는 국경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나진을 통하게 되면 북한이라는 국경을 하나 더 통과해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직접 가는 것이 나진항을 경유하는 것보다 편리하다.

둘째, 소련 붕괴 후 30년 동안 부산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운항하며 유라시아 물류를 해왔다. 일시적으로 속초, 포항, 나진 등 동해안 항구들이 북방 물류를 시도했지만 부산항의 1%도 처리하지 못한다. 그럼, 향후에도 북한과 통일이 되기 이전까지는 부산~블라디보스토크를 계속 운항하면 되는 것인가? 북한의 나진항보다는 수도권 및 북방과 가까운 속초항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셋째, 1,520mm의 러시아궤가 한반도의 나진 인근에 54km가 깔렸다. 러시아궤는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핵심궤이고 나진항이 빛을 발한 이유는 바로 이 러시아궤 때문이다. 그럼 나진까지만 러시아궤를 깔지 말고, 더 밑으로 내려가서 속초를 거쳐 부산까지 러시아궤를 까는 것이 필요할까? 아니면 러시아궤를 깔지 말고, 우리나라가 한반도궤와 러시아궤를 모두 운영할 수 있는 가변 화차를 만들어서 러시아와 한반도 간 운항을 할 수 있을까?

넷째, 미국의 제재로 나진 물류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고작 약 50km의 북한땅도 우리 정부 스스로 지나갈 수 없는 분단 상황인데 한반도를 종단해서 500km 이상 지나가려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의 제재를 피해서, 북한을 우회하여 유라시아에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나진 프로젝트, 한반도에서의 미래 물류와 유라시아 물류에 시사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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