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2~13도,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이 뼈 속까지 얼려버리고도 남을 추위의 세밑 택배현장은 여전히 죽음의 그림자를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 올해에만 택배 배송근로자들의 사망사고는 무려 16명에 이른다. 이 같은 사고의 대부분은 하루 14~5시간의 과로에 따른 사고로 의심받고 있다.

기자는 택배산업만 20여 년을 몸담아 왔지만 올해와 같은 잇단 사망사고는 처음 접한다. 택배근로자들과 동반 배송에도 여러 번 나서봤고, 각종 택배현장의 열악한 소식을 전하면서 첫 번째 사망 소식과 연이은 사망사고는 충분히 배송 도중 사망에 이를 수 있겠다고 상상만 했다. 하지만 지난 세밑의 택배현장의 실상은 “‘이래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또 다른 죽음은 당연 하겠다”고 할 만큼 충격이었다.

택배현장에 끊이지 않는 과로 노동 상황과 이에 따른 죽음의 그림자는 아래와 같다.

#주부 오 모씨 가족은 연말에 총각김치를 담그려 A사이트에서 5Kg의 절인 총각무를 주문했다. 주문한 날짜는 12월24일, 배송 예정일은 29일(화요일)이다. 주문한 총각무를 기다리던 오 모씨는 배송 예정일 오후 늦게 ‘배송이 좀 늦을 것 같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답장을 통해 ‘늦어도 큰 문제가 없고, 너무 늦으면 다음날 배송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택배상품은 배송하겠다는 날 저녁 11시52분, “고객님 죄송하지만, 정말 너무 힘들어 죽을 거 같아 문 앞 배송까지는 못하고 …”란 메시지를 받는다. 메시지를 받은 오씨는 영하 13까지 떨어진 늦은 밤 급히 옷을 챙겨 입고, 마침 아파트 주차장에 택배차량이 주차해 있어 내려가 직접 상품을 수령해 온다.

오씨는 “이런 메시지를 보낸 택배기사는 20대의 건장한 젊은이”라며 “이렇게 가장 건강한 배송기사가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일을 계속하면서 ‘죽을 것 같아 문전 배송은 못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낼 정도면 얼마나 노동환경이 열악한지 알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오씨는 자신의 상품을 픽업해 오면서 “그 시간까지 여전히 배송하지 못한 택배상품만 아파트 단지 내 100여개가 남아 있었다”며 “연말연시 아무리 배송물량이 급증했다고 해도 여전히 택배회사가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택배물량을 할당하는 것은 택배기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새벽 1시 가까이 확인해 보니 이 배송근로자는 남은 100여 개의 택배화물 배송을 모두 끝냈다.
 
2020년 세밑 12월 택배물동량은 지난해 동기대비 20% 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장 인력 충원은 여전히 제자리며, 분류인력 추가 투입도 이제야 단계적으로 겨우 시작한 상황이다. 여기다 정부 역시 뚜렷한 대책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젊디젊은 근로자들이 ‘죽을 것 같아서’란 메시지가 비단 이번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과 같이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대책으로는 택배현장에 죽음을 지울 수 없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당장 내 앞에서 사망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모두가 손 놓고 있는 지금도 너무나 싼 택배가격 덕에 클릭 몇 번만으로 손쉽게 택배를 주문하고, 조금만 늦으면 배송기사에게 갑질 해 대는 고객들 덕에 택배현장의 사망사고는 2021년에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이제 화를 내기도 지친다. 택배산업을 관할하는 국토부 생활물류 긴급대응반도, 택배기업들도, 그리고 택배현장의 근로자들 모두 지금의 택배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2021년 택배기사들의 죽음은 얼마나 더 증가할지 모른다. 무엇이 지금의 택배현장 기사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부터 당장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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