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의 안전, 시작은 설계단계부터

요즘도 뉴스를 보다 보면 물류창고 화재 소식이 간간히 들려온다. 물류창고 화재 소식을 접할 때면 항상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08년 12월 몹시 차가운 어느 날 나는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사고수습 중이었다. 보통 사망사고 조사를 하다보면 아주 가끔 유족들이 사고현장을 방문할 때가 있다. 이날도 물류창고의 화재로 인하여 이미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아직 불타고 있는 창고 내부에는 미처 구조되지 못한 재해자가 창고 안에 갇혀있는 상황이었다. 불타고 있는 창고에 도착한 유족이 불길로 뛰어들 기세로 하염없이 통곡하는 것을 보면서 내 자신이 죄인이 된 마음으로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여러 종류의 사고가 발생하지만 산업재해와 그 밖의 재해는 뚜렷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는 산업재해는 불특정인이 사망하는 일반사고와 달리 재해자가 주로 생계를 책임지는 집안의 가장일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가 발생하며 재해 당사자와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물류창고도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가장이 근무하는 작업장이며 그들의 안전이 결국 사회 전체의 안전과 직결됨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중요한 요소임을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물류창고 작업자 및 창고시설의 안전관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걸까? 참 쉬울 듯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물류창고의 사고·재해형태를 따져봐야 한다. 물류창고의 대형재해는 대부분이 화재 또는 붕괴 사고이다. 이는 물류창고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 배경을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가혹도가 큰 물류창고의 화재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물류창고가 일반건축물 보다 화재발생 빈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물류창고는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연면적 대비 상주하는 근로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이 근무하므로 그만큼 화재 발생 시 감지 및 초동조치가 늦어진다. 또한 물류를 보관하는 목적이 강해 가연물(화물)의 양이 많아 그만큼 화재하중이 높아서 한번 화재가 발생하면 화재 가혹도가 워낙 커서 우리가 체감하는 화재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느낀다.

물론 냉동창고의 경우 보냉을 위해 창문과 출입구를 최소화 하는 건축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화재발생 시 방열보다는 축열이 이루어지는 효과가 발생하여 화재를 확대시킨다.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저렴한 비용으로 창고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패널구조는 화재의 전파를 확대하고 진화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려 더욱 피해를 키우게 된다.

물류창고를 지을 때 발생하는 건축물의 붕괴 또한 창고의 구조에서 기인한다. 더 많은 화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벽체를 최소화하고 천장을 높게 만드는 RC구조 창고는 슬래브 콘크리트 타설 시 하중을 견디지 못한 동바리의 붕괴로 이어지고 결국 건설 근로자의 재해를 야기하는 사고를 종종 유발한다.

대형재해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대형재해를 논하다보니 안전의 시작이 설계단계에서 시작됨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즉, 건축주는 창고를 건설하기 전 설계 단계에서 건축물의 특징에 따른 위험성을 사전에 평가하고 잠재위험을 도출하여 대형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건축 시 동바리 개수를 늘려 하중을 줄이는 설계를 하거나 콘크리트 타설 시 건축물의 벽체가 적은 구조는 충분한 양생시간을 유지하고, 샌드위치 패널을 건축재료로 사용할 경우 내부 충진재는 불연재 또는 난연등급이 높은 소재를 사용한다. 또 화재 발생 시 조기에 감지하도록 연기감지기, 불꽃감지기, 열감지기 등 감지기의 형태를 다원화하고, 조기 진화를 위한 스프링쿨러 헤드(라지드롭)를 적용하는 등 설계 시에 안전요소를 반영하는 것이다.

안전관리의 중요요소인 운영(관리) 설계에서부터 안전이 시작된다면 안전관리의 중심은 운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2008년 화재사고의 경우 창고 개보수 중 실시한 용접작업에 기인한 사고였다. 이 경우만 보더라도 샌드위치 패널 벽체에 용접작업을 실시하여 화재 발생의 단초를 제공하였고 옥내 소화전 밸브는 잠궈져있어 화재 진화를 지연시켜 근로자가 대피시키는 시간을 잃게 만들었다. 운영이 안전의 중심이란 말은 사고의 본질적인 원인(루트커스)을 파악해보면 바로 드러나게 된다. 우선 건축물이 화재에 취약한 구조인 점이 가장 큰 원인이며 개보수 시 실시한 용접작업이 두 번째 원인이다. 만약 보수작업을 하면서 화기를 사용하지 않은 볼팅 등의 물리적 접합 또는 안전한 장소에서 용접을 실시한 후 패널에 조립만 하는 작업형태를 하였다면 재해발생을 예방할 수 있었다. 즉, 운영을 어떻게 하는가가 안전관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운영은 관리를 의미한다. 비단 대형재해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산업재해가 관리 소홀로 인해 발생한다. 겨울에 빙판길에서 작업자가 넘어져 다쳤다면 그 재해자를 탓하기 전에 빙판길을 방치한 운영(관리)을 탓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게차가 전복되어 재해가 발생하였다면 지게차 운전자를 탓하기 전에 화물의 하중, 작업장법, 정격속도 등의 정보를 올바로 제공하였는지, 운전자에게 그러한 위험요소를 교육하였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이처럼 운영(관리)의 중요성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운영자(관리감독자)에 대한 교육을 연간 16시간 이상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물류창고는 도급업이 많이 존재한다. 사업의 일부를 도급을 주는 경우 안전·보건에 관한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여야 하며 협의체는 도급인인 사업주 및 그의 수급인인 사업주 전원으로 구성하여야 한다. 사업주는 그가 사용하는 근로자, 그의 수급인 및 그의 수급인이 사용하는 근로자와 함께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작업장에 대한 안전·보건점검을 하여야 한다. 도급업체 근로자는 사업장의 환경에 익숙하지 않고 창고 내의 유해·위험요소 및 취급하는 화물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함으로 인한 취약성이 존재하므로 도급업체에 대한 관리에는 이러한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교육을 통해 근로자의 안전의식 고취시켜야
물류창고 안전관리의 마지막은 근로자 자신에게 있다. 창고 내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는 작업표준을 따라야 하며 항상 안전수칙 준수가 최상의 안전관리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말이 있다. ‘뿔이 있는 자는 이빨이 없다’라는 말로 ‘빠르고 쉽고 안전한 작업은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사업장의 생산물류창고에서 지게차 전복으로 운전자가 사망한 재해를 조사한 적이 있다. 사고조사 중 발견한 영상기록장치(CCTV) 화면을 보니 지게차 운전자가 창고를 나서면서 운전 중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장면이 보였다. 내리막 길을 주행하다가 점점 속도가 높아진 지게차 운전자가 전면의 장애물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커브를 돌다가 원심력으로 인해 전복된 것이다. 운전자는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아 헤드가드 사이에 끼여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에서 기안하는 위험을 예방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을 통해 근로자의 안전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매분기 6시간 이상의 근로자 정기안전보건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근로자가 사용하는 안전수칙 또는 안전관리 매뉴얼은 가능하면 쉽고 단순화하여 적용성을 높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안전관리 매뉴얼도 복잡하고 어려워서 적용성이 떨어진다면 아무런 효과를 발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국토교통부에서 물류창고 관리자와 현장 근무자의 안전관리를 위해 배포한 ‘물류창고 기본 안전관리 매뉴얼’은 좋은 사례일 것이다.

“안전의 시작은 위험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항상 작업 전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표준작업안전수칙을 준수하는 습관은 작업자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사회의 안전을 지켜주는 안전관리의 마지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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