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포장, 선진국 간 경제전쟁의 각축장

1. 물류표준 선점, 왜 중요한가?
60일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을 내용으로 한 소설은 영화화까지 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천신만고 끝에 목표를 달성하여 관객에게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요즘 개봉되었다면 아마 흥행에 실패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는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정도로 작아졌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화상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이 즉시에 이루어진다. 내수와 수출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각국은 경제영역을 최대한 확산시키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통신과 수송수단의 발전은 속도전을 야기했고 머지않아 지구는 일일 생활권이 될 전망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미주 수출은 선박으로 1달 이상 걸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미주까지 열흘이면 충분하다. 이렇듯 물류분야의 발전은 글로벌화를 촉진시켰고, 이에 걸맞게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공통기준 설정의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 ISO나 IEC 같은 국제표준기구를 거쳐야만 세계적인 확산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로벌화는 물류분야의 발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한 가지 풀지 못한 숙제를 남겨 놓고 있다. 물류는 흐름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이라도 막히게 되면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포장, 수송, 보관, 하역, 정보 등 제반과정이 일사불란한 연계체제를 가져야만 하는데 불행히도 전 세계는 각 경제 블록별로 약간씩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 부분은 전 회에서도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거니와 글로벌화의 추이를 볼 때 언젠가는 한 가지 체제로 통합될 것이다.

국내 현황은 T11형 파렛트를 기본으로 하여 구축된 물류표준 체계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크다. 아직 세가 약한 우리로서는 우리 체제를 고집하기보다는 국제 추세에 순응하고, 나아가 역이용하는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이 현명한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선다는 일념으로 오늘날 우리는 최강의 정보통신 기술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파렛트화는 늦었지만 물류포장 선진화는 앞선다는 개념을 똑같이 적용하면 머지않아 우리도 물류 선진화의 선두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T12형(1,200×1,000㎜) 파렛트가 향후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 규격에 정합하는 포장표준 규격을 우리가 한발 앞서서 산업계로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물류표준화의 가장 큰 목적이 물류비 절감에 있는 만큼 포장규격 표준화가 핵심수단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국내외 물류포장의 비하인드 스토리
여러 차례 지적한 바와 같이 물류표준화의 핵심은 파렛트표준화이다. 단위화물체계(ULS)에 정합하는 국제표준 파렛트는 ISO 6780에 규정되어 있다. 2000년대 초까지 4개의 표준파렛트가 규정되었고 매년 각국 대표들이 모여 통일화 작업을 추진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6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구축해 놓은 물류표준을 변경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국이 자국의 물류표준으로 통일할 것을 고집한 결과이다. 실무적인 파렛트 사용을 규정한 ISO 3676에서도 1,200×1,000㎜와 1,200×800㎜의 두 종류에서 일본의 제안으로 1,100×1,100㎜가 추가되었으며 미국의 전격적인 밀어붙이기 전략으로 2012년 말 워싱턴 회의에서 48×40″가 포함되어 최종적으로 4종류로 개정되었다.

한국은 1992년에 ULS에 정합하는 국가표준파렛트로서 1,100×1,100㎜ 규격으로 단일화하였다. 이 당시 또 다른 국가표준 규격이었던 1,200×1,000㎜ 규격을 단일화 규격으로 채택하자는 주장도 많았으나 격론 끝에 T11형으로 결정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불과 20년 앞을 못 내다 본 결정이어서 아쉬움이 있다.

어쨌든 국가표준파렛트 단일화를 기점으로 한국, 일본, 대만이 주도하여 STAP11을 결성하고 3개국의 파렛트풀시스템을 구축하였다. STAP11은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오랫동안 설득하였지만, 중국은 T11형으로의 단일화에 완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타협 끝에 2007년 제주도에서 T11과 T12형을 아시아표준파렛트로 하는 한·중·일 3국 협정을 맺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이 내용을 즉시 KS규격화 하였다.

표준파렛트 규격이 바뀌게 되면 표준포장의 치수규격도 이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2013년도에 국가표준 파렛트가 이원화됨에 따라 KS T1002 포장화물 표준치수 규격도 개정되어야 하지만 2014년 상반기 현재 아직 후속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ISO 3394의 포장표준 치수규격에 한국의 발의로 T11과 T12 파렛트의 공통 포장치수 규격인 600×500㎜ 계열치수군이 삽입되어 2013년에 먼저 확정되었다.

국제 물류표준화 추세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산업별로 표준치수 규격에 의한 적정 포장설계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물류 표준화의 핵심은 파렛트 표준화이며 포장 표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물류를 생각하는 포장 즉 물류포장의 핵심은 포장표준화이다. 포장표준화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3. 포장표준화의 추진 방법
포장은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한 1차적인 포장을 낱포장이라고 한다. 소비자 판매를 위한 포장을 속포장이라고 하며 운반을 위한 포장을 겉포장이라고 한다. 제품에 따라서 낱포장과 속포장 혹은 속포장과 겉포장이 중복되기도 한다.

포장표준화는 운반을 위한 겉포장이 대상이 된다. 판매를 위한 속포장은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위하여 점점 더 개성화, 다양화 되어가는 추세이다. 반면 운반을 위한 겉포장은 물류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규격화, 표준화가 필요하다.

포장표준화는 치수, 강도, 설계, 재질, 관리 등 5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중에서도 치수표준화와 강도표준화가 중요하다. 하지만 IT와 융합된 스마트물류와 보안물류가 강조되는 최근의 추세를 보면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는 관리의 표준화를 향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포장치수의 표준화는 말 그대로 물류과정의 첫 단계인 포장규격을 물류기기에 정합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물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표준 포장치수는 표준파렛트에 정합하는 규격이다. 국가표준파렛트가 T11형 단일규격이었을 때 포장 표준치수는 KS T1002에 69종의 치수가 규정되어 있었다.

이 규격들은 표준 파렛트 한 변의 길이 1,100㎜를 분할한 550, 366, 275, 220의 숫자를 서로 조합하거나 임의의 수치를 합하여 1,100으로 맞춘 임의조합 치수들을 배열한 것이다. 표준치수로는 너무 많은 69종을 규정하였기 때문에 단순화의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국가표준파렛트가 이원화됨으로서 조만간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예정이다. 새로운 개정규격에는 2개의 표준파렛트에 각각 정합하는 규격과 함께 공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규격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 규격처럼 너무 많은 표준치수 규격을 규정하지 말고 최소한으로 단순화하여야 한다.

표준 포장치수 규격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다음 표와 같이 ISO 3394 개정안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이 규격은 현재 3대 경제블록을 각각 대표하는 표준파렛트 3종에 정합하는 치수군이다.

600×400㎜는 유럽과 미주를 대표하는 1,200×800㎜와 1,200×1,000㎜에 정합하는 공통모듈이다. 600×500㎜는 아시아와 미주를 대표하는 1,100×1,100㎜와 1,200×1,000㎜의 공통모듈이다. 550×366㎜ 모듈은 T11형 전용모듈로서 타 파렛트 규격에는 맞지 않는 규격이어서 3개의 포장 모듈군 중에서도 활용률이 가장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KS T1002는 위 표를 참고로 하여 대폭 개정될 전망이다. 각 산업군별로는 KS 규격을 기본으로 하고 각각의 특성과 현황에 맞는 업종별 포장표준 치수군을 설정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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