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간 불법 주선행위에 번호판 값 천정부지로 올라

택배영업소장 김 씨는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김 씨의 영업소는 매달 물량이 늘어났지만 영업용 번호판 증차가 금지됐기 때문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자가용 차량을 운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신규 번호판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기사들에게 “그동안의 설움이 이제 좀 보상을 받는 것 같다. 이제 열심히 일하자”며 독려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한숨만 쉬고 있다.

그는 “새로 번호판을 받았지만 여전히 모자라고, 새로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또 번호판을 받지 못한 기사들은 용달협회에서 회비를 강요받고 있고, 지입도 구하기 힘들어 시름만 더 늘었다”고 말했다.

택배업무만 할 수 있도록 지정된 ‘배’자 영업용 번호판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해진 개수만큼 번호판이 나왔지만, 배포가 완료된 지 100여일이 지난 지금 어느 지역, 어느 회사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사이에 불법 행위가 자행되고 있고, 번호판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신종 지입 거래 사례도 나타나면서 시장은 더욱 혼탁해지는 양상이다.

실제 증차 규모 1만 1,000여대로 추산

물류신문사가 취재한 결과 10월 현재 현장에서 운행 중인 택배용 ‘배’자 번호판은 1만 1,000여개로 추산된다. 국토해양부가 허가한 1만 3,000여개에 비하면 다소 모자란 수치다. 당초 허가된 것보다 적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신청 과정에서 접수가 늦었거나 자격로 받지 못한 경우, 기사의 퇴직 등으로 번호판이 반납 혹은 회수됐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시장에 풀린 번호판의 개수가 정확하게 집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각 택배업체 본사에서는 자신들에게 허가된 수치만 알고 있을 뿐, 일선 현장에서 번호판을 제대로 수령해갔는지, 누가 받지 못했는지 그 숫자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번호판이 풀린 뒤 여러 사유로 반납되거나 미처 받지 못한 케이스가 있다. 관리를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선 영업소조차 번호판 등록 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취합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실상 파악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영업소 관계자는 “사무실에 직원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기사들에게 물어보는 방식 외에는 직접 차량을 조사할 계획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일도 많은데 귀찮게 그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다. (번호판 발급을 위한) 전수 조사 때도 영업소 직원들이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본사가 나와서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번호판 등록 현황을 파악하는 업무는 협회에 일임되어있다. 그러나 협회에서 일일이 영업소를 찾아 정보를 받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협회는 업계에 정보를 취합하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자 번호판을 이용한 불법행위 기승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이 ‘배’자 번호판을 이용한 불법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택배기사가 다른 기사를 임의로 고용해 다단계로 배송을 시키는 신종 주선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규 번호판을 획득했던 기사가 다른 기사에게 차량을 빌려주고 일정 금액을 주선 수수료로 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불법 행위라고 지적당하면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거나, 번호판을 반납하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때문에 번호판 하나가 아쉬운 영업소들은 묵인하고 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차량을 빌려 쓰는 기사에게 돌아간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해도 다른 기사만큼 급여를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종 주선은 당장 생계가 급한 기사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다. 또한 이런 차량을 운행하는 기사는 제대로 된 보험이나 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고 발생 시 더 큰 피해를 낳을 수도 있다.

새 번호판을 받은 기사에 대한 개인 정보도 제대로 수정되지 않고 있다. 한 영업소 관계자는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번호판의 숫자가 잘못 찍혀 나온 게 있더라. 아마 접수할 때 기사가 쓴 글씨를 잘못 알아보고 기입한 것 같다. 나중에 어떤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사들은 당장 일해야 하는 처지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오류는 혹시 모를 사고나 범죄 발생 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한 전문가는 “번호판 현황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각종 불법행위를 막고,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작업 등 택배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고 관리하는데 꼭 필요한 자료”라며 “정부와 협회, 업체와 영업소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번호판 값 급증하자 임대 보증금 요구

새 번호판이 풀렸지만, 시중에 거래되고 있는 영업용 번호판 가격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증차가 확정됐던 지난 1분기에는 대략 대당 1,100~1,400만 원 수준. 그러나 지금은 1,800~2,000만 원선에 달하고 있다.

번호판 가격이 치솟은 이유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기 때문이다. 일부 번호판 브로커들은 내년부터 카파라치 제도가 시행될 가능성이 있는 점을 노려 가격이 더 올라갈 때까지 매물을 내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한 영업소 관계자는 “번호판 때문에 발생하는 택배를 해보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부담이 크더라도 가능하면 번호판을 구입하라고 권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속칭 법인용달로 불리는 일부 업체들은 번호판을 택배업계에 임대(지입 개념)하면서 수수료(월 15만 원선)와 함께 보증금을 요구하고 있다. 말이 보증금이지 실제로는 돌려받지 못하는 돈인데, 최근에는 대당 300만 원까지 뛰었다. 그러나 일부 택배업계에서는 당장 1,800만 원을 마련할 길이 없고, 그나마도 매물이 적어 어쩔 수 없이 지불하고 있다.

보증금은 엄연한 불법이다. 때문에 이들은 이면계약서를 작성을 강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카파라치가 뜨기 전에 임대 번호판이라도 선점하자며 이면계약서를 남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용달 업체들도 화물이 없어 차량을 세워둘 바에 번호판을 임대해서 수익을 얻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결국 번호판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영업소들은 ‘배’자 번호판의 반납을 막는데 애쓰고 있다. 특히 퇴사자가 나오면 당장 다음날 차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계속 일 해줄 것을 권유하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기사와 용달협회 간 갈등 계속

용달협회와 기사와의 갈등도 여전하다. 일부 용달협회는 택배기사들에게 주 1회 꼴로 전화를 걸어 가입을 종용하고 있다.

일부는 기사들에게 “회원가입 거부는 엄연한 불법이니 내용증명을 보내겠다. 문제가 커지면 번호판을 회수할 수도 있다”며 압박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영업소에서는 가입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직접 협회에 전화도 해보지만 그때마다 통상적인 안내일 뿐이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이런 소모적 숨바꼭질은 촌각을 다투는 기사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국토부, 12월 경 현황 파악 나설 듯

한편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12월 경 ‘배’번호판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설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12월 말에 각 시군구에 공문을 보내 새번호판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설 예정이다. 또한 번호판 업무를 주관하는 한국통합물류협회도 자료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례 유형을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번호판 현황이 파악되는 대로 불법행위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뒤따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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