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감정에 관여하는 화학물질들

지난 호에서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을 이야기했다.

성감대가 확연히 다른 만큼 성격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에도 차이가 난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것은 여자와 같다.」하고 말하는 대상을 정복(?)하려면 진심으로 여자 대하듯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가용을 여자 대하듯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늘 고마워하고 대견하다, 예쁘다 하면서 어디 상한 곳은 (아픈 데는) 없나 자주 살펴주고 장거리 주행을 했을 때는 쓰다듬거나 키스도 해주는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어야 탈이 없다. 간혹 트러블이 생길 때도 내 잘못이라 자책하며 성심껏 돌봐야지, 자동차 탓을 하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확률이 높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골프 코스가 여성이라면 진실하게 진짜 여성을 대하는 매너와 에티켓을 보여야 한다. 점잖은 사교모임에서 다소 돋보이는 여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서는 정도면 훌륭하다. 절대로 더티(dirty)하거나 거친 언행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와 별 상관없다며 거리의 여자 대하듯 해서는 안 된다. 회원제 골프장의 게스트(비회원)라고 해서 그냥 스쳐지나가는 여자 정도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거나 희롱을 한다면 골프코스 또한 스쳐지나가는 남자 정도로밖에 대해 주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그 대상 모두가 「나의 여자」일 수는 없다. 수 없이 만나게 되는 대상을 하나 같이 아내나 애인처럼 대하라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카사노바 같은 골퍼일지라도 어찌 다 데리고 살 듯 할까.

한 가지 획기적인 방법은 있다. 마음에 드는 골프장 회원권을 사서 그 골프장만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골프장만을 사랑하여 18홀 코스 구석구석 나무한 그루 잔디 한 포기에까지 정을 주고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게 된다면 최소한 그 코스만큼은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의 타고난 속성이 한 곳에서의 만족으로 안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
을 고해의 바다에서 방황하게 하는 진짜 원인인지도 모른다. 골퍼가 고뇌할 수밖에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마치 그렇게 높고 험한 산을 힘들게 올라갔음에도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몇 십분. 이내 내려오고, 그리고 내려와서는 다른 산 올라갈 궁리를 하는 산악인처럼…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라 해도 줄곤 같이 있는 다면 그 「사랑의 수명」은 불과 2년 정도라는 연구 보고가 있다. 미국 코넬대 인간행동연구소의 신디아 하잔 교수팀 최근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남녀 간의 애정이 얼마나 지속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2년에 걸쳐 다양한 문화집단에 속한 남녀 5천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한 연구팀은 남녀 간에 가슴 뛰는 사랑은 18~30개월이면 사라진다고 밝혔다. 남녀가 만난 지 2년을 전후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사랑의 화학물질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고 줄어들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변하는 것은 자연 현상이라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사랑의 감정에 관여하는 화학물질이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 사랑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이끌림, 둘째는 빠져듦, 셋째는 애착이다.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첫 단계엔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혈압조절, 중뇌에서의 정교한 운동조절 등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이자 호르몬인데 가장 널리 알려진 기능으로는 쾌감ㆍ즐거움 등에 관한 신호를 전달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만약 도파민의 분비가 비정상적으로 낮으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며 감정표현도 잘 하지 못하는 파킨슨병에 걸리게 되며, 분비가 과다하면 환각 등을 보는 정신분열증에 걸릴 수 있다.)  대뇌의 변연계에서 이 도파민이 만들어지는 때는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다음 단계로 사랑에 빠졌을 때는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천연각성제 구실을 한다. 이성으로 제어하기 힘든 열정이 분출되고 행복감에 빠진다. 이른바 「사랑의 묘약」이다. 이 페닐에틸아민 수치가 올라가면 이성이 마비되고 열정이 분출돼 행복감에 도취된다. 흥분과 긴장 그리고 유쾌함까지 동반하니 상대의 결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쾌감중추는 활성화되지만 인지 능력과 함께 감각 인지에도 영향을 끼친다.

흔히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방의 단점을 보지 못하거나 보더라도 너그러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매너가 불량한 것도 터프해 보이고, 고집이 센 것도 자기 주관이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양말을 벗어 아무 데나 던져놓아도 용서가 되고, 내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 먹고 싶은 음식만 앞세워도 서운치가 않다. 이렇게 연인들의 눈에 콩깍지가 씌워지는 이유가 페닐에틸아민이다.

분류상으로 페닐에틸아민은 마약의 주성분인 암페타민 성분에 속한다. 이 성분이 든 마약은 흥분 작용과 함께 부분적으로 감각 인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구름 위에 올라 탄 기분’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황홀한 기분도 유통기한이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이 호르몬 변화에 적응하고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한 내성이 길러진다. 이 때쯤 되면 슬슬 상대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고,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이벤트를 만들어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바야흐로 무조건적인 사랑의 봄날은 가고, 페닐에틸아민 작용으로 일어났던 설렘과 흥분의 꽃은 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페닐에틸아민의 마법이 지속되는 시간 역시 길어야 2~3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열정을 찾기 위해 페닐에틸아민 수치를 높여줄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골프에 그대로 적용된다. 한 골프장 정복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속성인 것이다.

골프를 처음 접하고 좋아지기 시작할 때 도파민이 형성되는 것도 같고, 골프에 푹 빠졌을 때 페닐에틸아민 분비가 많아지는 것 역시 같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정이 온통 필드로 보이는 환각 현상은 도파민 분비가 과다한 이유이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골프 이야기에 묻혀 사는 건 페닐에틸아민 작용이다. 골프가 시들해질 때 다시 열정을 찾기 위해 새 골프장을 찾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유통기한의 최대치는 있다. 어느 시점에 가면 그래, 여자는 다 같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골프장은 다 같아.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때에 이르러 골퍼는 페닐에틸아민의 작용이 끝난 후에 오는 제 3의 단계 진정한 행복을 만나게 된다.

소설가/골프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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