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도 없이 다리 밑에서 분류 작업하는 열악한 택배현장

1월 26일 오후 3시 서울 OO대교 아래. 택배차량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 20대 정도의 택배차량이 집결됐다. 잠시 후 그들은 자신들의 차량에 가득히 쌓인 택배박스를 맨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일이 주소를 확인해가며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행여 누가 볼까 주위를 자주 살피며 작업을 진행했다. 두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작업을 마쳤는지차량들은 차례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곳에서 분류작업을 진행한 택배업체는 도서 등을 전문으로 배송하는 중견택배기업인 A사로, 인터넷쇼핑몰 도서업체 물류센터에서 출고된 택배상품을 지역별로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낮은 택배단가… 터미널 임대료 내면 적자
이렇듯 다리 밑에서 분류작업을 실시하고 있는 택배사는 A사 뿐만이 아니다. 수도권 내에 터미널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중견택배업체들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 그나마 형편이 나은 업체들은 대형 주차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차장을 장기 임대해 운영하는 업체들의 경우는 그나마 천막과 컨베이어를 설치해 분류작업을 실시하는 정도다. 아무래도 맨 바닥에서 작업하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택배업체들은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비싼 땅값 때문에 터미널 확보는 엄두도 못 내고, 주차장 등을 이용하자니 운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현저히 낮은 택배단가로 현재도 배송사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적은데 비싼 임대료까지 지불 할 수 있는 수익구조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준 한 택배기사는 “이곳에서 이렇게 작업하는 것도 불법으로 진행하는 것이다”며 “만약 이곳에서 작업을 할 수 없게 되면 이와 비슷한 장소를 또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도서의 경우 화주기업에서 지불하는 택배단가 자체가 1,200원 수준이다. 여기에 본사 이익금 등의 수수료를 제외하면 한 건당 얼마가 남는지 대충 감이 올 거다. 이런 상황에서 터미널 임대료까지 내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몸은 몸대로 상하고 돈은 돈대로 못 벌고 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도심권 공동터미널 구축 정부 지원 필요
과거 택배업체들은 허브 앤 스포크 운영 방식을 추구, 모든 상품이 허브 터미널로 입고 됐다가 다시금 전국 단위로 분류되는 형태로 운영됐다. 서울 마포구에서 마포구 또는 용산구로 보내는 상품들도 충청권에 있는 허브터미널까지 갔다가 다시 배송됐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간선차량 운행 대수가 늘고, 허브 터미널 작업시간도 길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를 방지하고자 최근 택배업체들은 허브 앤 스포크 방식에 포인트 투 포인트 방식을 접목해 운영 중이다. 가까운 지역에서 배송돼야 하는 상품들의 경우 직배송 체계를 구축, 운송비와 터미널 운영비 등을 줄여보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태로 운영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주요 도시에 서브 터미널들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리 밑이나 대형 주차장이다. 일부 택배업체들은 택배업체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서울 지역 내에 택배터미널을 확보하는 게 어려우니 정부에서 공동택배터미널 등을 마련해 주길 희망하고 있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서울에 인구가 가장 많다보니 택배물량도 수도권 인근에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울 지역 인근에 터미널을 확보하지 못해 제대로된 운영과 고객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다. 하지만 투자할만한 여력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애로사항이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 공동택배터미널 등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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