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연습과 실전 구분은 없다. 인생도…


반취 이기윤(소설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에 푹 빠져 지내는 김헌 이라는 40대가 있었다.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새벽이면 인도어에 나가 연습을 했고, 주말은 어김없이 필드에서 보냈다. 그런데 공들이는 것에 비하면 너무 실력 향상이 안 되었다. 반취 형 말대로 필드에 진짜 핸디 귀신이 있는지, 파 행진을 하다가도 어딘가에서 무너져 쓴맛을 꼭 보고야 말고, 스페인의 세베 바에스테로스나 영국의 스티브 보틈리 처럼 만만해보이는 120미터짜리 파3홀에서 11타를 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 새벽이면 더욱 힘주어 연습 볼을 날렸다.
드라이버를 열심히 치다 보면 열 뻔쯤 칠 때부터 공이 죽죽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아이언도 마찬가지다. 어떤 클럽이든 처음에 한두 샷이나 서너 샷은 생크도 나고 뒷 땅도 치지만 대여섯 번 이상 반복하는 사이 샷이 잡힌다. 구질도 좋고 방향성도 좋다 싶으면 혹시 구경하는 사람 없나 뒤를 흘끔거린다. 어디선가 ‘굿 샷!’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주변의 부러워하는 시선이 의식되는 기분이다. 그러면 약간 ‘으쓱’하면서- 자못 더 진지하게- 연습 볼을 날린다. 
옆 타석의 노인이 그를 눈여겨보다 말을 건다.
“잘 치는구먼. 나가면 한 100타 정도 치겠네?”
이 노인네가 왜 이래? 싶으면서도 뭔가 들킨 심정이다.
“컨시드(concede) 없이 치면 그렇죠… 어떻게 아셨어요?”
“컨시드 없는 거야 당연하지. 구력은 제법 오래된 것 같은데?”
“예. 한 6, 7년 됐습니다.”
노인네의 넘치는 카리스마에 거짓말을 못한다.
“필드에도 자주 나가지?”
완전 족집게다. 김헌은 속으로 뜨끔한다. 노인은 자신의 연습은 끝난 듯 클럽을 주섬주섬 챙긴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로 몇 마디 충고를 던진다.
“연습은 그렇게 하면 안 돼. 내가 보니 자네는 연습을 위한 연습을 할 뿐이야. 인생에 연습 따로 있고 실전이 따로 있던가? 골프도 마찬가지라네.”
“그럼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려는데 노인은 말 붙일 겨를도 없이 휙 가버린다. 어디서 날아온 건지 모르는 공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아 연습을 끝내고도 내내 기분이 찝찝하다.
“연습을 위한 연습?  삶에는 연습이 없다?
며칠이 지나도록 노인의 충고가 머릿속에 웅웅거렸다. 연습도 부지런히 하고 라운드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성적은 늘 그 모양 그 꼴인 자신의 골프에 슬슬 회의가 생기는 때였다. 노인을 다시 만나면 뭔가 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연습장을 다시 찾는다. 마침 그 노인이 연습을 하고 있다. 김헌은 거리를 두고 앉아 그 노인의 연습하는 모습을 훔쳐본다.
거리는 별로지만 정확성이나 일관성은 대단해 보인다. 집에서 가져왔는지 따끈한 음료를 마시면서 한 샷 한 샷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멀리서 봐도 상당한 내공이 느껴진다. 공을 치는 개수는 많지 않다. 한참 보고 있던 김헌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노인에게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오 자넨가. 며칠 뜸했지?”
노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투로 반색을 한다. 좀 바쁜 일이 있었다. 고 변명한 뒤 김헌은 물었다. 
“어르신. 지난번에 연습하는 저에게 그건 연습이 아니라고 하신 뜻이 궁금합니다.”
노인은 한참 뜸을 들이다 되묻는다.
“필드에 나가서 공치는 것만 골프고 연습하는 것은 골프가 아닌가?”
“그건 아니죠. 이것도 골프죠. 하지만…”
“하지만 뭔가? 라운드만 인생이고 연습은 자네 인생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진 않지만 ……”
“꾸준히 연습장 나오기에 유심히 봤는데 자네 연습은 마치 여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처럼 보였어.”
“그렸나요?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하는 것과 제대로 하는 것은 다르지. 욕심으로 샷을 하면 욕심꾸러기 샷이 되고, 멍청하게 자동공급기 속도에 맞춰 연습하면 멍청한 샷을 연습하는 꼴이 되지. 화를 내면 화 난 샷 연습이고, 끊임없이 연구를 하면 그건 연습이 아니고 고민 덩어리 샷을 만드는 것이어서 실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
“그런가요?”
“연습이나 실전이나 다르지 않아. 그냥 같은 골프일 뿐이지. 연습의 연장이 실전이요, 실전의 연장이 연습이 되어야지.”
“아, 예…”
“매 샷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회한의 전홀 퍼트에 있는지, 불안한 미래에 있는지, 공에 집착하고 있는지, 클럽페이스에 있는지, 궤도에 있는지, 아니면 허리나 무릎 등 몸의 한 부분에 머물고 있는지, 몸 전체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있는 지를 묻는 과정이고, 필드에서의 라운드는 그것을 스코어로 확인하는 과정인 걸세.”
“고맙습니다. 어르신…” 
김헌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반성했다. 그날 이후 김헌의 연습 태도는 몰라보게 달라졌고 당연히 골프실력도 쑥쑥 늘었다. 이상한 일은 그날 이후 그 노인을 연습장에서 볼 수 없었다. 혹시 김헌의 무의식적 기도에 답을 주려고 현신하신 골프 신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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