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시간 밤샘 노동… 임금은 최악

기자가 처음 물류분야 기사를 쓰기 시작할 때 한 국내 물류업계 관계자에게 이런 말을 들은적이 있다. “물류현장은 3D(Three Dimensions)야.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게 아니라 입체적이란 거지. 업무부터 환경까지 입체적으로 열악하거든. 그 중에서도 택배터미널은 ‘지옥’이지.”
우리나라 물류산업은 3D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업계에서는 이미지 개선을 위해 처우 개선 등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는 것이 기자가 만나본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기자는 해당 기업에 알리지 않고 택배터미널을 찾아가 땀을 흘리며 체험했다. ‘물류지옥’이라고 불리는, 가장 열악한 물류현장의 참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다.

인력아웃소싱 업체가 알바모집… 미성년도 가능
택배터미널 일자리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하는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명절 특수기를 앞두고 일손이 부족해진 업체들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채용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업무는 대부분 저녁에 시작해 다음날 아침에 일이 끝나는 야간 상ㆍ하차, 분류 작업이며, 나이와 경력은 상관없었다. 심지어 모집 공고에는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만 있으면 언제든 바로 일할 수 있다고 적혀 있기까지 했다.

알바생을 모집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택배사에서 인력 아웃소싱을 받은 곳들이다. 이 중 한 곳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더니 “신규자(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당장 자리가 없으니 다음주에 연락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경기가 어려워진 탓에 일자리 문의가 늘어난 데다 방학을 맞아 알바를 하겠다는 학생들의 전화가 쇄도하여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 몇 차례 더 전화를 한 끝에 A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A사 담당자는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 뒤 이름과 전화번호를 문자메시지로 보내라고 했다. 그는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인력 명단에 올라가게 되고, 현장에 도착하면 명단에 서명한 뒤 바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급 장비는 목장갑뿐, 일당은 최저임금, 일하기로 한 날 B택배사의 터미널 사무실로 들어가니 한쪽 구석방에 ‘알바 대기실’이 있었다. 4평이 채 안되어 보이는 허름한 방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이곳에서 알바를 하는 사람은 평일 기준으로 보통 100명 정도. 토요일은 쉬는 차량기사들이 많아 평소보다 물량이 30%가량 줄어 70명 정도가 일한다고 한다.

대기실은 벽면마다 A사를 비롯한 다른 인력아웃소싱 업체의 이름표가 붙어있고, 그 아래 놓인 의자에 명단을 들고 있는 ‘반장’들이 앉아있었다. 반장은 인력아웃소싱 업체를 대신해 현장에서 알바생의 명단을 체크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알바생이다. 때로는 즉석에서 모자란 인력을 다른 업체 반장과 협의해 채워놓거나 배분하기도 한다. 보통 업체 당 1명씩 존재하며, 반장은 장기간 아르바이트를 한 사람들 중에서 선발한다. 일당으로 받는 아르바이트들과 달리 이들은 월급제가 적용된다. 월급이라고 하지만 아르바이트보다 10~20만 원 정도 더 받을 뿐이다.

반장에게 일하러 왔다고 하자 기자의 이름을 묻고는 목장갑과 ‘출근부’를 내밀었다. 장갑과 작업복을 지급한다고 했지만 몇 벌 안 되는데다 조끼라서 입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출근부는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2번 사인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야 돈을 받을 수 있다. 일하는 도중에 힘들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알바생도 있는데, 이 경우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매일 알바생의 얼굴이 바뀌기 때문에 정확한 임금 계산을 위한 방책인 셈. 업무 시간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꼬박 12시간. 원래 11시간인데, 설을 앞두고 있어 기본적으로 1시간 연장에 물량이 많을 경우 추가 연장 작업도 해야 한다. 반장은 작업 시간이 연장되면 그것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을 다 마친 뒤에 출근부에 사인할 수 있으니 결국 거부하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일당은 55,000원으로 최저임금(2012년 4,580원)수준에 불과했다. 반장은 수습기간이 있어 일하는 기간이 4일 미만이면 55,000원, 4일 이상은 60,000원이라고 귀띔했다.

안전 교육 無…상자 던지지 않으면 작업 밀려
시계가 7시 반을 가리킬 쯤 사람들이 하나둘씩 대기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반장이 깜빡했다며 밖으로 나가려는 기자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말했다. 작업 중에 핸드폰을 사용하다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대기실을 나가보니 터미널 도어 근처에 놓인 천막과 자판기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틈에서 십 분정도 기다리자 검정색 재킷을 입은 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B택배사 직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다른 업체 이름이 붙어있었다. 야간에는 B택배사의 협력사가 작업장을 관리하고, 인력은 협력사가 아웃소싱한 업체가 공급하고 있었다.

즉, 현장에서 B택배사와 인력 아웃소싱업체 직원은 없고 대신 ‘반장’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일을 하는 구조였다. 협력사는 일부 직원이 중요한 구역에 배치되어 쉬운 업무를 같이 하며 감독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반장을 따라 사람들이 줄을 서자 무리 중에 한 남자가 금속탐지기를 들고 사람들을 한 명씩 검색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는 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탐지가 끝나자 그는 주의사항을 말했다. 그는 작업장 내에서 핸드폰을 쓰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상대방을 ‘야’, 혹은 ‘아저씨’라며 반말로 부르는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니 화를 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 위험이나 안전수칙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는 그들이 핸드폰에 민감한 이유가 사고 위험이라기보다 화주나 작업장 내 시설의 노출을 우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기존 인력이 먼저 작업장에 들어가고 기자와 다른 신규자들은 반장의 손짓에 따라 잠시 머물다가 터미널에 들어섰다. 시끄러운 기계음이 가득한 작업장에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자동화 설비들, 그리고 한 가운데 작은 현장관리실이라고 적힌 부스가 있었다. 반장은 컨베이어 벨트가 지나가는 코너에 기자를 세워두고는 뒤편에 롤테이너를 4개 연달아 놓게 한 뒤 여기에 상자를 쌓으면 된다고 알려줬다. 일이 능숙한 인력은 하차를, 초보자들은 상차 작업장에 배치됐다.

8시 정각이 되자 벨트를 따라 다양한 규격의 상자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상자를 하나씩 잡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송장을 살펴보니 의류들이 대부분이라 가벼워서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자들이 쉴 새 없이 내려왔다. 반장이 일러준 요령대로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밀려든 상자들은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급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눈길이 마주쳐도 각자의 일이 바빠 도와주거나 벨트를 잠시 멈춘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상자가 뜸한 틈을 타 허리를 굽히고 정신없이 쌓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살펴보니 그들은 상자를 들어 롤테이너에 던져 넣고 있었다. 기자도 밀려드는 상자들을 이기지 못하고 던져 넣기 시작했다. ‘취급주의’, ‘던지지 마세요’라고 씌어있는 상자도 예외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벨트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롤테이너에 상자가 가득 쌓이면 누군가가 다가와서 상차라인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정신없이 상자들을 던지는데 갑자기 뒤에서 “야!”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자가 깜짝 놀라 쳐다보니 30대 남자(알바생)가 “이거 저쪽으로 밀어”라고 말했다. 그냥 빤히 쳐다만 보고 있으니 “야! 이거 저쪽으로 밀라는 말 안 들려?”라며 다그쳤다. 일을 시작할 때 들었던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시키는 대로 롤테이너를 구석으로 옮기고 자리에 돌아오니 반장이 잠깐 쉬어도 된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겨우 한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허리를 펴니 기둥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작업장에 상품 파손은 없다’

비위생적인 작업현장…재포장 기피
10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같은 작업이 반복됐다. 처음처럼 상자들이 밀려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와 팔이 아파왔다. 이따금씩 큼지막하거나 무거운 상자가 들어오면 더 힘들었다.

2시간 정도 쉬지 않고 일을 하니 더 이상 상자가 내려오지 않자 반장이 기자를 불러 컨테이너에 상차작업을 하는 곳으로 데려갔다. 2층에서 연결된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상자가 내려오면 트럭의 컨테이너 내부까지 연결된 롤러를 타고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롤러 중간에 위치한 알바생이 바코드 스캐너로 체크하면 기자와 남자 알바생 1명이 상자를 밀고 컨테이너로 들어가 쌓는 방식이었다.이미 컨테이너의 절반가량은 상자가 빼곡하게 벽처럼 쌓여있었다. 기자가 잠시 놀라는 틈을 타 상자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송장을 살펴보니 하남시로 가는 상품들이었다. 유명 상표가 적힌 상자부터 송장이 붙은 정장 케이스, 감귤이나 책, 조립식 테이블이나 의류가 든 비닐봉투 등 종류도 다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벽처럼 상자를 쌓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가르쳐 준 요령대로 하니 상자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도 작은 상자들을 함부로 내려놓거나 던지는 일은 계속됐다.

컨테이너 내부는 무척 지저분했다. 바닥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테이프 조각이나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이 나뒹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스피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옆에서 일하던 남자알바생의 실수로 비닐포장이 뜯어지고 차렵이불이 삐져나왔다. 감독하는 직원이 “그냥 밑에 깔아놓고 상자로 덮어”라고 지시했다. 작업장 구석에 뜯어진 상자를 재포장할 수 있도록 에어캡이나 테이프 따위가 있었지만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이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참 쌓고 있는데 바코드를 찍던 남자가 다가와 “야! 밥 먹으러 가”라고 했다.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작업장 가운데에 모여들고 있었다.

외풍 몰아치는데 난방 시설조차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내식당으로 들어서자 반장들이 일회용 도시락 2개와 국그릇을 나눠줬다. 하나는 밥, 하나는 반찬이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배추김치 몇 점과 말라버린 잡채, 무말랭이와 젓갈 약간이 전부였다. 일반 편의점에서 파는 2,500원 짜리 도시락보다도 부실했다.

밥을 다 먹은 사람들은 불이 꺼진 비좁은 대기실에 모여 웅크리고 앉아 쪽잠을 청했다. 식사시간은 기껏해야 1시간 정도니 많아야 3, 40분 정도를 쉬는 셈이었다. 기자도 한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벽면이 시멘트 대신 조립식 건물에서나 쓰이는 샌드위치 패널로 이루어진 대기실은 심한 외풍 때문에 너무 추웠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밤 최저 온도는 영하 6도. 그러나 대기실에 난방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고, 한쪽 벽면에 붙은 자판기에서 윙윙하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눈을 감은 사람들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채 덜덜 떨면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기자 역시 추위를 견디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기실에서 나오니 몇몇 사람들은 퇴근한 사무실에 놓인 작은 전기히터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두꺼운 외투를 벗지 못했다. 천장에 난방기가 붙어있었지만 꺼져있었다. 둘러봤지만 스위치는 보이지 않았다. 알바생들 사연도 제각각. 밖으로 나와 보니 몇몇 사람들이 흡연을 하고 있었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다양한 사연들이 쏟아졌다. 대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알바생들은 등록금이나 생활비 감당이 안 되서, 사업이 부도가 나서 등 갖가지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들은 업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너무 적고, 자칫 몸이 상할까 걱정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짧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상자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작업장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작업장을 휘감는 컨베이어 벨트의 길이에 비하면 사람이 부족해보였다. 바쁘다보니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기자도 상자를 쌓다가 나와서 바코드 리더기를 들고 송장을 체크하거나 롤테이너를 들고 오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 딱히 정해져있지 않다보니 상자가 덜 몰릴 때 빨리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담배를 피워야 했다. 상자를 다 쌓으면 트레일러는 배달 지역으로 떠나고 그 자리에 텅 빈 컨테이너가 다시 들어왔다. 시간이 흘러 업무가 마무리 되자 반장들은 알바들을 모이게 한 뒤 청소를 하자고 했다. 일부는 빈 롤테이너를 구석으로 치우는 일을, 일부는 빗자루를 들고 작업장을 쓸기 시작했다.

작업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출근부에 퇴근 사인을 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 정확하게 12시간을 채웠다. 대기실로 들어가니 일부는 입고 있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기자도 외투를 벗어 털었더니 먼지가 날렸다. 팔과 다리, 허리에 통증이 심했다. 머리는 땀에 젖어 산발한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하나둘 씩 가방을 챙겨 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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