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형 화주들의 물류 아웃소싱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시장에 나온 대형 물량이 많았다면 전문 물류기업들의 얼굴에 희색(喜色)이 가득했어야 할 터이지만 주름만 더 갔단다. 본지가 연말특집으로 다룬 ‘물류시장 2011/2012 회고와 전망’ 3PL편(19페이지)을 보면 ‘입찰 건 많았으나 단가경쟁 극복 못해’라는 제목이 달렸다. ‘자존심까지 판’ 수주 건도 여럿 있다는 소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물류서비스 가격 하락은 물류기업들이 만들어낸 시장 구조 때문’이라는 반성의 역사는 짧지 않다. 물류기업들 모두가 가격 떨어뜨리기에 동참해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여기에 칼자루를 쥔 화주기업들이 가세, 물류시장 가격은 바닥에 떨어져 고개를 들 의지를 잃었다.
그러나 물류기업들이나 화주기업들만을 싸잡아 성토(聲討)하기 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류서비스 요금 하락을 부추겨온 ‘물류비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오해는 그릇된 이해이고, 왜곡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한다는 뜻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물류와 관련된 보고서나 세미나 발표자료, 정부의 물류정책 자료의 첫 장에는 항상 국내 물류산업의 문제점, 또는 국내 물류산업의 현황을 다뤄왔다. 이처럼 일관성과 통일성이 강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이 장에는 어느 자료를 보든 국내 기업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 수치가 외국의 수치와 비교되어 나온다. ‘매출액 대비 기업물류비가 선진국에 비해 높다’, ‘3자 물류기업 이용률이 선진국에 비해 저조하다’는 대목이 빠지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국가별로 물류비 구조가 다르고, 회계상의 계정이 다르다는 점을 들어 이들 비교수치에 대해 ‘참고할 가치조차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해왔다. 3자물류 이용률 역시 국가의 물류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효율과 경쟁력 면으로 볼 때 자가물류나 자회사 물류가 유리할 수도 있다는 보다 폭 넓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물류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그리고 몹시 답답해 하는 것은 이러한 물류비 비교 수치가 화주들로 하여금 물류시장과 물류비용을 왜곡하게 한다는 점이다. 화주들의 물류비용 왜곡은 곧 물류서비스 요금 깎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들은 “객관성을 잃은 이 수치를 화주기업 경영자들이나 정책결정자들이 보게 된다면 ‘물류비가 높다. 더 줄여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꼬집는다. 화주기업 실무자들에게 있어 경영자의 ‘높은 물류비를 더 줄이라’는 말은 곧 ‘물류기업을 더 쪼아라’로 해석될 것이 분명하다. ‘물류비 = 비용’이라는 등식을 무슨 바이블의 성구(聖句)처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들에게 ‘선진국보다 물류비가 높다’는 글귀가 얼마나 고맙고(?), 가슴에 와 닿겠는가.

우리 화주기업들은 ‘물류비 줄이기가 곧 물류합리화’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물류개선사례를 말할 때 항상 언급되는 모 대형화주기업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러 이러하게 했더니, 물류비가 연간 얼마 얼마 줄었다’고 밝히곤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 기업의 물류를 담당하는 물류기업이 그만큼 손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감추어져 있다. 한 예로 이 기업은 수송물량과 수송기간을 제시하고는 물류기업들로 하여금 온라인으로 가격을 제시하도록 하는 온라인 입찰 시스템을 썼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만족할 만큼 가격이 떨어지면 낙찰하는 방식이다.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이 기업의 상품은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 낮은 만큼 부실해진 물류서비스, 전문 물류기업의 낙후, 우리 물류기업의 물류서비스 질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하락 등을 종합해 본다면 총체적으로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수치는 물류비 비교수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외 물류경쟁력 수준이 아닌가 싶다. 세계은행이 지난 2010년 2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물류경쟁력은 세계 23위 수준이다. 상당히 낮다. 부문별로 보면, 통관 26위, 물류인프라 23위, 국제운송 15위, 화물추적 23위, 적시성 28위다. 국제운송이야 국적해운선사나 국적항공사들의 세계적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때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나 그나마 수긍이 간다. 그러나 IT 강국에서 정보화 수준에 좌우되는 화물추적, 적시성 등의 순위가 떨어진다는 것은 ‘물류정보화에 대한 투자가 부진’한 결과로 밖에는 해석이 안된다.
물류는 비용이 아니라 상품의 경쟁력, 나아가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한다. 이제 물류는 계획과 전략 수립에서부터 조달, 생산, 보관, 판매는 물론 인프라 투자, 인력 투자 등 기업 경영활동의 전반을 컨트롤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렇게 볼 때 물류비는 늘어야 한다. 물류에 대한 투자는 기업 활동 전반의 흐름에서 발생하는 누수현상을 줄이고 고객의 니즈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대한 투자다. 따라서 물류에 대한 투자는 기업의 매출상승과 함께 수익률 향상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 비해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이 높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물류비가 경쟁력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되며, 다른 나라에 비해 물류비 비중이 높다는 수치에 현혹돼 물류서비스 요금을 깎음으로써 시장 전체의 건전성을 훼손하지는 말자는 의미다.
우리 정부가 내세운 비전이 동북아 물류중심국, 글로벌 물류강국이라면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물류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물류경쟁력은 물류에 대한 투자와 직결된다고 본다. 이제 물류비에 대한 왜곡에서부터 벗어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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