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측, 항소 혹은 행정소송 검토 중

지난 10월 26일 서울 서초동 법원건물 앞에 지입차주들이 모였다. 과거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이하 세덱스)의 배송업무를 처리하던 기사들이었다. 이들은 2006년 세덱스의 유가보조금 편취 논란 때 받지 못했던 보조금을 받기 위해 지난해 서울시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었다. 이날 법원은 서울시청이 세덱스가 반환한 유가보조금을 지입차주에게 지급하지 않은 것은 부당이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시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지입차주들은 판결에 반발해 항소나 행정소송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류신문은 사건의 정황과 판결 내용을 짚어봤다.

원고 측 부당이득 주장 기각돼
정부는 지난 2001년 7월 유류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의 인상으로 운송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에서 관할 시장이나 군수가 세액 인상분의 일부를 보조해 주는 유가보조금 제도를 시행했다. 그런데 지난2006년 운송업체의 유가보조금 편취 논란이 불거지면서 업계는 물론 사회이슈로 부각됐다. 그 중 세덱스는 지입차량 약 3백여 대를 직영차량인 것처럼 서류를 제출한 뒤 2001년부터 5년 간 약 22억 원의 유가보조금을 받아온 사실이 적발됐다. 논란이 커지자 세덱스는 유가보조금을 다시 돌려보냈고, 돈을 받은 서울시청은 현재까지 지입차주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를 받기 위해 차주들이 모여 지난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지난 10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9민사부 노정희 판사는 지입차주들이 서울시청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 민사소송에 대해 원고 청구를 기각시켰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운송회사들이 그동안 지입차량인 화물자동차를 마치 직영차량인 것처럼 유가보조금을 신청한 사건이 적발됨에 따라 지급처분의 상대방의 지위에서 반환명령의 이행에 갚음하여 자신들의 수령한 유가보조금을 스스로 반환한 것임을 알 수 있다”며 “원고(지입차주)들 주장의 손실과 피고(서울시청)의 이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피고가 원고들과의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 없이 사건 유가보조금 상당의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앞서 원고 측은 지입차주가 받아야 할 유가보조금을 세덱스에게서 반환받은 서울시청이 차주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이기 때문에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
한 법률 전문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서울시청은 강제징수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운송회사가 임의로 유가보조금을 반환했든 아니든 어차피 받아갈 돈이었다”며 “법원의 판단은 세덱스가 임의로 반환했더라도 결과는 강제징수와 동일하기 때문에 서울시청이 반환 받았다는 것 자체를 부당이득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행정소송, 소멸시효 관건
원고 측은 이번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원고 측 관계자는 “세덱스가 지입차량을 직영차량인 것처럼 꾸며서 유가보조금을 가져갔던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며 “유가보조금을 신청할 때 지입차주와 직영차량을 구분할 수 있도록 소명자료를 제시하도록 되어있었다. 이를 서울시청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운송회사에 돈을 내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고 측은 항소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행정소송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멸시효가 5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법률계에 따르면 국가 혹은 지자체에 금전을 청구하는 문제에 대한 시효는 통상 5년이다. 그러나 원고 측이 문제 삼은 유가보조금은 지난 2001년부터 2006년 사이에 지급됐다. 지급 시점에따르면 원고 측이 승소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돈은 2006년에 지급된 것뿐이며, 그 이전의 돈은 받을 수 없다. 일부에서는 원고 측이 민사소송으로 부당이득을 문제 삼은 것도 소멸시효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부당이득 반환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10년이기 때문이다.

원고 측은 세덱스가 보조금을 받아간 상태에서 지입차주들이 2중 청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유가보조금이 서울시청에 반환됐을 때로 봐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기관에 유가보조금을 청구했을 때부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도 시행 전에 신중히 검토해야
이번 판결에 대해 서울시청 관계자는 “서울시청은볍령에 따라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판결에 대해 전할 말이 없다”면서 “원고 측이 항소를 한다면 재판에 임할 것이며, 판결에 따라 행정업무를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세덱스에서 업무를 진행했던 한 관계자는 “이미 돈을 서울시에 돌려줬고 그것으로 끝난 문제다. 세덱스는 이제 없어졌고, 돈은 서울시청에 있기 때문에 세덱스가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판결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기관의 해결 노력이 아쉽다는 이야기와 지입 차주들이 무리하게 소송을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쨌든 기사들에게 유가보조금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국토부나 서울시청에서 반환된 유가보조금 처리에 대해 좀 더 고민했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유가보조금 지급 방법이 제도 개정으로 바뀌었지만 과거에 발생했던 문제점이 있는 만큼 시청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세덱스가 불법적으로 받은 유가보조금을 서울시청에 반환한 것은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유가보조금 제도도 개정된 마당에 지입차주들이 문제가 됐던 당시에 바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정부기관이 제도 시행에 앞서 사전에 충분한 준비와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번 일을 교훈삼아 정부기관은 앞으로 제도 시행에 앞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기업과 학계는 물론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해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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