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산업, 변해야 산다

 

[특별기고] 석태수 한국통합물류협회 회장


요즘 상생문화, 동반성장이라는 말이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동반(同半)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일을 하거나 길을 가는 등의 행동을 할 때 함께 짝을 함’이라고 되어있다.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설명이다. 정부도 동반성장 정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 부문에 치우쳐 있어 일자리 창출의 원천으로 부각되고 있는 물류산업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껏 제조업 위주의 성장정책에 따라 물류산업은 타 산업을 지원하는 부수적 산업이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는데, 또다시 동반성장 정책에서도 소외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물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수십만의 개인들이 사업자로 구성되어 다른 분야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그 중심에는 화주기업-물류기업이라는 관계가 있다. 제조업에서 대기업-중소기업이 갑과 을이라고 하지만, 물류시장에서 화주기업과 물류기업과의 관계는 갑과 병·정이라는 서글픈 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동반성장이 지속가능한 패러다임이 될 지 더 지켜 볼 일이다.
하지만 유가가 인상되면 이를 물류업체나 화물차주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등 불평등한 거래관행이 많은 현행 물류시장 구도에서는 대-중소기업간의 동반뿐 아니라, 화주기업-물류기업 간의 동반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화주, 동반성장 위한 첫걸음 과감하게 내디뎌야

한국교통연구원 자료를 보면 3자물류비는 5년 전에 비해 낮아졌고, 2자물류비는 높아졌다. 최근 정부 차원의 3자물류 경쟁력 강화와 활성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2자물류비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2자물류와 3자물류기업을 단순 비교하면 단기적으로는 2자물류기업이 우세할 수 있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모기업에서 좋은 채용조건으로 직원을 뽑고, 모기업의 물동량 출하와 운송계획에 따라 효율성 있는 운영이 가능하니 경쟁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들의 자금력과 조직, 인력에 맞서 경쟁할 수 있는 국내 물류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화주기업은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한다. 화주기업과 2자물류기업은 양자간의 지나친 의존도 때문에 2자물류기업의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최근 일본 유수의 대기업들이 2자물류기업 때문에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IT 강국으로 자부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취약해 단순 IT 하청국가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장의 이익을 쫓다 보니, 핵심역량을 키우는데 소홀히 한 탓이다. 이미 특정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기업들은 한 단계 더욱 강력한 경쟁력으로 무장하기 위해 본연의‘업(業)’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화주기업은 물류기업과 동반성장을 위한 첫걸음을 과감하게 내디뎌야 한다. 경쟁입찰로 역량 있는 전문물류기업들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공정경쟁을 통한 동반성장의 물꼬를 터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고성장기에 있었기에 모든 영역을 스스로 해결해 더 높은 이윤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고성장기도 아니며 계속되는 유가·원자재가 상승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경쟁력 있는 Sourcing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또한 물류설비와 부지를 직접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큰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화주기업과 물류기업이 진정한 협업과 파트너십의 새로운 협력자 관계를 만들어야 더 높은 단계로 비상할 수 있다.

물류기업, 남 탓만 말고 자생력 키워야

물류기업은 스스로 탄탄한 자생기반을 구축하여 물류산업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소모적인 가격경쟁에서 벗어나 고품질 서비스에 기반한 부가가치 경쟁으로 변모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물류기업의 실상은 부족한 면이 너무도 많다. 과연 얼마나 많은 물류기업이 Supply Chain 상의 프로세스를 통합관리하며 화주기업의 부가가치를 향상시켜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화주기업은 물류 아웃소싱의 효과에 대해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물류기업은 실질적인 비용절감 효과와 더불어 생산성 향상에 대한 믿음과 높은 수준의 물류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물류기업이 화주기업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주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우고, 뼈를 깎는 노력과 혁신으로 단단하게 무장해야 한다. 이럴 때에 명실상부하게 화주기업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정부는 보다 강력한 리더십 보여야

정부는 물류산업 육성을 위한 관련 법률의 정비, 지원 강화 등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 동안 제조업은 정보화·기술개발·공정혁신·컨설팅 지원 등 다양한 부문에서 지원을 받아온 것에 비해, 물류산업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현실과 맞지 않는 각종 물류 관련 규제는 물류산업의 효율성과 국제 경쟁력 제고에 한계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류기업의 원가 부담을 경감 시킬 수 있는 요소를 발굴하여 지원함으로써 물류서비스의 질적 제고와 시장확대를 도모해야 한다. 이래야만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다.
현재 물류시장에는 너무나 많은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어 시장원리에 따른 교통정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택배시장이 물량 증가에도 허덕이고 있는 것은 너무 많은 업체들이 무차별적인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가격경쟁 중심으로 경쟁이 이뤄지고 서비스 질은 저하돼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도 규제완화의 부작용으로 급격하게 업체수가 증가하고 시장 경쟁은 심화되어 서비스 하락은 물론이고 물류사업자는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시장경제 관점에서 규제완화와 자유거래 유도는 대세이지만 지나치면 방임이 된다. 규제도 아니고 적극적인 자유거래 유도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으로 인해 물류산업의 질서가 깨지는 폐해가 일어나면 안 된다. 규제가 필요한 곳은 과감하게 규제하고, 완화해야 할 곳은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 합리적인 정책을 펴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정부의 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당장 생계가 걱정인 영세한 차주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타 산업에 비해 열악한 근무 여건에서 물류업 종사자들이 일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건강한 생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기반을 마련하는 것 또한 정부의 몫이 아닌가 싶다.
가야 할 길이 그리 평탄치 만은 않다. 물류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전국의 물류업 종사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화주기업-물류기업-정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전 산업의 혈관과 같은 물류산업이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류산업은 변해야 산다.

물류산업의 선진화 없이 제조업 경쟁력도 없고 국가 경쟁력도 없다. 모두가 합심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반드시 물류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확실히 자리 매김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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