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의 자리를 버리고 상인이 된 범려
상술로 권력의 최고 자리를 산 여불위

▲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여불위(위), 토사구팽이란 말을 만든 범려
    중국인들이 상인의 시조로 숭상하는 도주공(陶朱公). 그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춘추시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의 주인공인 월나라 왕 구천의 신하이자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을 만든 범려(范?)라는 인물이 바로 그다.

약소국이던 월나라가 오나라를 이기고 구천이 천하를 호령하는 데는 초나라 출신인 범려의 공이 컸다. 사람들은 그가 일등공신에 봉해져 큰 부와 권력을 손에 쥐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범려는 친구에게 ‘토사구팽’을 조심하라는 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그리곤 제나라로 가 이름을 바꾸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몇 년 만에 많은 재산을 가진 상인이 되었고 나라 안에서 명성이 자자해 졌다. 소문을 들은 제나라 왕이 그에게 재상 자리를 주려하자 그는 이를 거절하고 재산을 벗들에게 나눠준 뒤 다시 떠났다. 이후에도 그는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상술로 억만 금을 벌었고, 가난한 이들과 지인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장사도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성쇠와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시장이 번창할 때는 그만 멈출 줄도 알아야 쇠퇴의 국면으로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 시장이 쇠잔해 지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유리한 기회를 만들면 약세를 강세로 바꿀 수 있다. 이처럼 범려는 장사의 요체는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용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춘추시대에 범려(도주공)가 있었다면 그 다음 전국시대에는 여불위(呂不韋)라는 희대의 상인이 있다. 그는 범려와 달리 나라(의 미래)까지 사고팔 만큼 야심이 컸던 상인이었다.
여불위는 조나라 수도 한단에 물건을 사러갔다가 그곳에 볼모로 와 있던 진나라 왕의 서자 자초(子楚)를 보게 된다. 그는 자초가 훗날 크게 될 인물임을 알아보곤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진귀한 재물은 사둘만하다(奇貨可居).”

여불위는 유난히 사람을 좋아해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길로 자초를 만난 여불위는 그에게 가문을 크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자초는 별 미친놈 다보겠다는 듯이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먼저 네 가문을 크게 만든 뒤에 내 가문을 크게 만들어 주시오.”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여불위가 아니다.
“당신이 모르는 모양인데,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

여불위는 자신의 씨를 품은 여인을 자초에게 상납한다.
여불위가 한 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여불위는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볼모로 잡혀 있던 자초를 진나라 왕으로 만들고 자신은 승상의 지위에 오른다. 자초의 아들(사실은 여불위 자신의 아들인) 정(政)을 도와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다. 일개 상인이었던 여불위가 한 나라, 아니 중국 전체를 상대로 주판알을 튕겨 자신이 원하는 셈을 얻어낸 것이다.

여불위는 상인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 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자신이 투자한 인재가 한 나라의 왕이 되었으며, 앞을 내다본 그 투자 덕에 자신의 아들은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그 자신은 권력의 2인자 자리인 재상에 올라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과유불급, 결국 여불위는 아들에게 쫓겨나 관직을 잃게 된다. 여불위가 이때부터라도 정신을 차렸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력의 마력에 빠진 그는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을 안 했다. 여불위의 집은 여전히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결국 불안감을 느낀 아들 시황제가 보낸 편지를 읽고는 독주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김성종 기자>

사상규략
- 동업자끼리 공동거래를 할 경우라도 반드시 계약을 체결하라. 서로 갈라지게 되면 분쟁이 생겨 손실을 입는다.
- 중요한 금품은 충분히 신뢰감이 가는 사람을 골라서 의탁하며, 상품을 처분할 때는 먼저 지불을 요구하라.
- 트집 잡기를 좋아하는 자는 융통성이 없고, 성질이 나쁘고, 무정하다. 먹기를 좋아하는 자는 사람은 좋으나 간섭이 심하고, 의리를 강요한다. 도박을 좋아하는 자는 부침이 잦고, 나중에 모든 것을 잃는다. 여자를 좋아하는 자는 이곳저곳에서 놀기만 하며, 화를 당하거나 사기를 당한다. 이런 인간들을 가까이하지 말라.
- 사치를 뽐내는 자는 변변치 못하며, 부를 자랑하는 자는 반드시 남에게 그것을 빼앗긴다. 이런 사람들은 악인은 아니지만 장사를 함에 실수가 많다. 정직한 이의 말은 귀에 거슬리고, 근검한 이는 자수성가한다. 이런 사람들은 진실 되며 보통 성공한다.
-장사를 함에 있어 성급하게 덤비듯이 말하는 자는 상대방을 반드시 속이려고 함이다. 행동이 무게가 있어 보이고, 여유 있게 이야기하는 자는 틀림없이 성실하다. 재산도 목숨도 걸겠다는 자, 양심이 없는 자들과는 거래하지 말라. 장사의 흥정에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성의가 없으면 안 된다.
- 세상사는 평온 속에 변화가 숨어 있게 마련이며, 호경기가 왔을 때 불경기의 싹이 자라는 법이다. 가장 좋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려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저가로 내려간 상품은 반드시 올라가니, 변화는 평안을 부르게 마련이다. 변화가 심할 때는 사지 말고, 싼 물건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사들여라.
- 상품 보관 장소의 방수와 방화에 만전을 기하라. 수시로 물건을 빼고 넣고 하는 데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 또한 기회를 만나면 파는 시점을 오판하지 않도록 하며, 거래가 뜸하면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라. 사물에는 성쇠가 있으나, 값에는 상례가 없다. 도박을 거는 자는 처음에는 유리해 보이지만 습관이 되면 결국 하나도 남는 것이 없게 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은 불가하다. 장사를 시작하는 모든 이는 어쩌다 손해를 보더라도 배우는 것이 많고, 시장이 있는 한 다시 나갈 수 있다. 아무리 잘되더라도 절대 교만하지 말라. 교만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일단 중간에서 실패하게 되면 자신을 잃게 된다. 장사에는 기회가 있다. 이익이 있다고 여겨지면 곧바로 상품을 풀라.

사상십요
- 점포의 문을 열쇠로 잠그고, 창문도 꼭 닫도록 하여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 또한 화려한 실내장식을 피하라.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위험하다. 주의를 깊게 하고, 겸허하게 있어라.
- 손님에게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대하며, 험악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말라. 연장자를 존경하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 충심으로 선행을 돈독히 하라.
- 원장부는 꾸준히 성실하게 기입하며, 나중에 적거나 게을리 하지 말라. 수지가 발생할 때마다 적으며, 잊어버리거나 거짓으로 기입하지 말라. 성실하게 세심하게 힘쓰도록 하라.
- 남들과 교제할 때는 상대방의 안색을 살펴서 상대할 것인지 피할 것인지를 판단하라. 일에 대처함에 있어서는 그에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고, 약자를 속이거나 강자에 굽실거리지 말라. 강자도 약자도 똑같이 대하도록 하라.
- 큰 거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상담하고, 독단이나 속단으로 하지 말라. 장사는 정황판단이 중요하며, 사물에 구애받거나 융통성이 없는 자는 실패한다. 전환기를 살리는 대응을 하라.
- 공무로 나갈 때는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행동하고, 술을 마시고 시비를 걸지 말라. 앞뒤를 잘 헤아려 말을 하고, 무책임한 말은 입에 담지 않도록 하라. 독실하고 지성이 있어야 한다.

 

▲ 오경재가 지은 <유림외사>
상인 엄감생은 평생을 부지런하게 일하고 절약해서 많은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세월을 어쩌지는 못했다. 임종을 앞둔 그를 보러 가족과 친척들이 몰려왔다. 엄감생은 간신이 손을 뻗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기력이 다해 말을 못하게 된 그의 표정은 절박하고 안타까움이 절정이 묻어났다.
큰 조카가 물었다.
“작은아버지, 친척 두 사람이 안 왔다는 말씀입니까?”
엄감생은 고개를 겨우 저었다. 그러자 이번엔 둘째 조카가 물었다.
“어딘가에 이백 냥의 은자가 있는데 말을 안 하셨다는 뜻입니까?”
엄감생은 얼굴에 노기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답답하다는 듯 두 손가락을 다시 내보였다. 옆에서 아기를 안고 있던 유모까지 나섰다.
“나으리께서는 두 분 외삼촌이 아직 오시지 않았다는 말씀이죠? 이 도련님을 부탁하려는 것이죠?”
엄감생은 이제 고개를 흔들지도 못하고 그냥 손가락 두 개만 펴 보였다. 그의 아내가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당신은 저 등잔의 심지 두 개에 불이 모두 켜 있어 기름을 낭비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하나는 끄겠습니다.”
아내가 등잔 있는 곳으로 가서 한 쪽 심지의 불을 끄자 엄감생은 그제야 편안한 표정을 짓더니 숨을 거두었다.
청나라 때 오경재가 지은 중국 고소설 <유림외사(儒林外史)>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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