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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조업 공동화 논란의 허실
저자 출처 LG경제연구소
발간일 2004-03-02 등록일 200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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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제조업 공동화인가, 산업 고도화인가. 공동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가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실상은 그 다지 비관적이지 않다.


‘제조업 공동화 위험수위 넘었다.’ 국내 경제단체가 지난 연말 조사한 기업설문 조사 결과다. 제조업 공동화 를 기정사실로 못박고 용인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실제로 해외투자의 ‘블랙홀’인 중 국을 바로 옆에 둔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은 상당하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최근엔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쉽 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주장으로까지 비약됐다.

정말 제조업 공동화가 심각한 수준일까. 공동화라는 말 대로라면 제조업이 ‘공백상태를 맞았다’는 뜻인데 그 동안 한국 제조업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교육이민들이 고국 땅을 등지듯 기업들 역시 ‘탈한 국’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는 걸까.

제조업 공동화인가 탈공업화인가

공동화는 애당초 80년대 중반부터 엔고에 자극받아 자국을 탈출하는 기업들에 위기를 느낀 일본 언론이 주 로 사용했다. 미국 내 보호무역을 주창하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물밀 듯 밀려오는 동아시아산 수입품 에, 그리고 해외투자에만 열을 올리는 첨단기업들의 탈미(脫美) 러시에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할로윙 아웃 (hollowing-out)을 외쳐왔다. ‘공동화’라는 용어 자체가 ‘위기’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방치해 서는 안 된다는 처방을 주문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공동화에 대비되는 개념은 탈공업화(de-industrialization)이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여러 요인 에 의해 제조업의 생산, 고용 비중이 줄고, 대신 서비스산업 비중이 늘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공동화와 달 리 ‘가치중립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공동화 논의가 활발한 일본에서는 탈공업화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경쟁력 상실이나 해외이전 등의 요인 으로 국내 특정 산업기반이 사라지는 대신 다른 신산업이 부상하거나 다른 산업으로의 대체가 이뤄지지 않 아 산업구조에 공백이 생기는 현상을 칭하기도 한다. 즉 탈공업화라는 일반적인 산업구조 변화에 덧붙여 ‘산업공백’까지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공동화를 규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탈공업화를 진단하는 경제지표로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부문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이나 제조업 부문의 고용 비중 등을 들 수 있다. 두 가지 지표의 유용성이 도전 받는 추세이긴 하지만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토대로 우리 경제의 탈공업화 수준, 더 나아가 공동화 주장을 평가해 보자.

사실 한국경제의 산업구조 변화는 경제성장 과정과 함께 진행돼 왔다. 농업 등 1차 산업이 시들해지고, 제 조업이 떴다가 다시 서비스업이 우리 경제의 중추로 올라선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추세에 대해 학계는 물론 국민들 역시 이견이 없다. 그런데도 유독 최근 탈공업화가 ‘공동화’ 우려로까지 확산된 데에는 경제 내 불확 실성 증가, 내수경기 침체와 저성장에 따른 청년실업 증가, 갖가지 사회갈등의 폭발 등 기업 안팎의 경영 환경이 악화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탈공업화의 추세를 가능한 세밀하게 진단하기 위해 각종 경제지표 평가도 되도록 97년 외환위기부터 최근까지로 한정해봤다.

명목가격 기준으로 볼 때 88년 31.9% 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제조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2003년엔 28%대까지 떨어졌다. 최 근 2년 동안 2% 포인트 이상 하락, 제조업의 위축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변 부가가치 기준으로는 탈공업화 조짐 미미

그러나 불변가격 기준으로 산업별 부가가치 비중을 파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제조업 부문의 생산성 향상 으로 제조업 제품의 (서비스업에 대한) 상대가격이 하락해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왜곡을 제거할 수 있기 때 문이다. 70년대 10% 수준에 불과했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98년 4분기에 30%를 돌파한 뒤 최근 수년동 안 33, 34%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서비스산업도 90년대부터 50%대 중반을 유지하는 등 비중에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불변가격 기준 부가가치 측면에서 볼 때 탈공업화의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선진 각국과 비교해보면 국내 제조업의 기여도는 더욱 두드러진다. 2000년 기준 미국을 비롯, 일본 독일 프 랑스 등 선진 각국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17~23% 수준으로 우리 경제의 30%대에 비해 훨씬 낮다. 미 국과 일본이 각각 명목소득 1만 달러 수준을 달성했던 시기(미국 77년 22.8%, 일본 80년 28.2%)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 역시 한국(2003년 3분기 28.6%, 명목 기준)보다 낮다.

제조업 고용 비중 거의 변화 없어

다음 고용기준으로 최근 수년동안의 탈산업화 현상을 평가해보자. 80년대 후반 한때 제조업 부문의 고용자는 전체 고용자의 30% 정도까지 육박했으나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98년부터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후 2003년까지 19%를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 고 있어 일부 경제단체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최근 수년동안 제조업 부문 고용 흡수력이 상대적으로 급격 히 악화했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반면 서비스 부문의 고용 비중은 70년대 후반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 2000년에 70%를 돌파했고 2003년 4분기엔 72%를 넘어섰다.

실질 부가가치와 고용, 두 가지 지표의 변화를 종합해보면 한국경제의 탈공업화는 부가가치 측면에선 아 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고용 측면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진행돼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불거 진 제조업 공동화 주장처럼 제조업 고용이 지난 수년간 위축됐다고 진단하는 것도 성급하다.

탈공업화 현상을 더 적극적으로 제조업 공동화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제조업 부문의 경쟁력 상실이나 해외 이전 등의 요인으로 국내 산업기반이 타격을 받게 됨을 입증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제조업 노동생산성 급격한 상승세
제조업의 경우 97년 1분기에 669 만원(불변가격 기준)이었으나 매 분기마다 상승세를 보여 2003년 3분기엔 1092만원까지 올랐다. 반면 서비 스 부문의 지표는 같은 기간 410만원에서 불과 60만원 오르는 데 그쳐 생산성 격차는 2배 이상 벌어졌다. 제조업 부문의 고부가가치화와 함께 같은 기간 무역수지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보였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경쟁력이 상실됐다고 보기 어렵다.

제조업 부문의 노동생산성이 상대적으로 향상됐다는 것은 보다 적은 고용인원으로 비슷한 산출량을 내거 나, 동일한 인원으로 보다 많은 산출량을 낼 수 있다는 의미. 97년부터 2003년까지 제조업 부문의 고용 비 중이 크게 하락하지 않았던 만큼 이는 제조업 부문의 부가가치가 크게 늘어났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한 편 상대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뒤지는 서비스 부문의 고용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우리 경제 전 체적으로 제조업, 서비스 부문의 부가가치 비중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위기가 진정된 이후 본격화된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의 절반은 제조업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 다.제조업 분야에서도 전자통신장비 석유화학 섬유의복 등에서 해외 직접투자 비중이 높 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산업에서 국내 부가가치나 고용수준에 변화가 생겼을까.

해외 직접투자, 국내 제조업에 별 영향 없어

전자통신 산업의 경우 97~2002년 동안 해외 직접투자액과 국내 부가가치 및 월평균 종사자 수간의 상관관 계를 분석한 결과 그 관련성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해외 투자비중이 높은 석유 화학 산업도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산업자원부가 지난해 갤럽과 함께 해외투자 기업을 표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외투자 이후 국내공장을 폐쇄한 사례는 12.3%에 불과했다. 공장폐쇄를 결정한 기업들 역시 신발가죽 섬유의복 등 국내에 잔류했다 면 경쟁력 약화 및 시장퇴출이 예상되는 기업들이었다. 반면 수송기계 기계장비 전자통신 석유화학 등 제 조업은 해외투자 이후에도 국내공장에서 생산을 지속한다는 답변이 90%를 넘었다.

또 해외투자가 국내 모기업에 미친 영향을 묻는 설문에 대해서도 ‘국내 생산이 늘었다’는 답변(36.9%)이 ‘줄었거나 중단했다’는 답변(21.1%)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해외 직접투자가 국내 제조업의 공동 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짐을 말해준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최근 확산하는 제조업 공동화 우려는 상당부분 과장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 다. 우리 경제의 제조업 고용 비중은 성장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왔지만 노동생산성 증가가 괄목했다 는 점을 감안할 때 경쟁력 약화 등에 따른 공동화가 나타났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로 시기를 좁혀본다면 제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나 고용 비중이 하락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다.

최근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산업 각 부문의 고용흡수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제조업 부문의 미세한 고용비중 감소가 경기 탓인지 탈공업화의 영향인지 구분해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의 부침 이 심할 때 서비스업에 비해 제조업의 고용 비중이 더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제조업의 국가경제 기여도가 이처럼 약화되지 않았다면 왜 최근 부쩍 공동화 우려가 팽배해졌을까. 90년대 후반 들어 제조업 부문 내에서도 석유화학 기계장비 전자통신 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의 부가가치 총액이 음식료 가죽신발 등 경공업 분야 부가가치 총액과 격차를 계속 벌리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97년 중공업 부문의 부가가치는 133조로서 경공업 부문 부가가치 47조5000억원의 2.8배였으나 2002년 에는 중공업 부가가치가 182조9000억원으로 59조3000억원에 그친 경공업 분야의 3배를 넘어섰다.

노동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공업 분야 종사자는 97~2002년 사이 1만9000명이 줄어든(99만3000명에 서 97만4000명) 반면 중공업 종사자는 같은 기간 170만 명에서 2만 명이 더 늘었다. 제조업 전체의 고용인 력의 변화가 거의 없는 가운데 제조업 내에서 노동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인력의 이동이 일어난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제조업이 보다 부가가치를 많이 내는 쪽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조 업 내 핵심 산업의 ‘자리바꿈’은 부가가치 뿐 아니라 자산규모, 종사자 수 등의 변화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조조정에 최근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고용불안정 등이 매우 심해져 공동화 우려를 키웠다는 추 론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고임금 등 고비용 구조, 정치사회적 혼란, 반기업적 시장환경 등이 개선되지 않고 정치 적 리더십마저 회복되지 못한다면 기업들의 투자의욕 부진으로 이어져 공동화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 다. 또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첨단기술 장벽에 막혀 고부가가치화가 정체될 경우 국내 제조업 기 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일본 공동화 우려는 기우로 끝나가고 있어

일본도 80년대 중반부터 3차례에 걸쳐 해외 직접투자가 급증하는 소위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 장기 불황 기의 해외투자 증가는 일본 사회에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켰으나 2000년대 들어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점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제조업의 경쟁력과 국가적 기여도가 더욱 높아진 것이다.

최근의 제조업 공동화 우려는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근거가 희박한 우려보 다는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효율적인 국제 분업체계 구축, 기술혁신을 위한 국가적 지원체제 구축, 고용창 출 효과가 높은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화 등으로 탈산업화의 충격을 줄여가는 지혜가 더 아쉽다.

박래정,양희승 주간경제 769호 200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