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로 정복하는 골프 (25)

골프가 모든 인종 종교 기후 풍토에 관계없이 구멍과 풀밭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만인 공통의 스포츠인 것은, 그것이 사랑놀이(섹스)와 같기 때문이다. 기복이 있는 그라운드(언듀레이션) 위에서 하는 게임은 골프밖에 없으며, 이것을 골프의 특징으로 여기는 것 역시 섹스와 같은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티샷으로 시작하여 퍼팅으로 끝내기까지의 과정이 그대로 애정 항로다. 여성을 의인화하여 만든 것이 골프 코스이기에 잘 다루면 즐거운 플레이가 되지만 잘못하여 실수를 연발하면 손 댈 수 없이 피곤하고 엉망이 되어 버린다. 과정 하나하나에 진실해야 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 진실과 정성의 적나라함이 그린에서 절정을 만나는데, 그런데 그린에도 머피의 법칙이 있다. ▲브레익(Break)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헷갈릴 땐 꼭 틀린 쪽을 선택한다. ▲가깝다고 가볍게 넣으려하면 미스가 생긴다. ▲쉽다고 여겨지는 퍼트일수록 실패 가능성이 높다. ▲너무 오래 생각하면 어려운 게 불가능한 퍼트로 변한다.

 
어쨌든 최선을 다 하면 그만이다. 결과가 좋으면 기뻐하고 나빴다면 바로 잊으면 된다. 지나간 샷에 집착하는 것은 못난 짓이다. 어떻게 볼을 치느냐 보다 어떻게 홀을 플레이 하느냐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골프는 사각 링에서의 혈투도 아니요 원수와의 쟁패도 아니다. 심리 운동이고 도덕심과의 승부다. 바꾸어 말하면 플레이어가 자신의 정신을 제어하기 위한 싸움이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적이 (알고 보면)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하는 기묘한 운동이다. 몸과 마음의 거리감을 없애고 하나 됨을 이루어야 골프의 베스트는 기록되는 것이다. 

골프에 나타나는 모든 기술적 현상과, 감정, 의지 등의 정신적 상태는 언제나 몸과 마음이란 두 가지 관점에서 포착할 수 있지만, 동시에 따로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성적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측정이나 분석 가능한 기술 세계만이 실제라고 주장하며 연습을 강조하는데 반해 정신력을 우선시하는 쪽에서는 ― 기술은 마음이 이끄는 것으로 보기에 ― 심리를 궁극의 실상이라 말한다. 반취의 견해는 둘 다 아니다. 골프의 기술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양쪽이 똑같이 중요하다.

몸과 마음이 하나이냐 둘이냐의 논란은 골프 이전에도 분분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신체를 전혀 이질(異質)의 것이라고 했지만 스피노자는 물심이 실체의 표리(表裏)라 하여 일원론을 주장했다. 또  R H 로체는 일원론의 곤란을 극복하는 것으로 다원론을 제기했는데 이는 철학자들의 학문의 유희(遊戱)가 아닐까.  
골프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면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스피노자의 일원론으로 만들어가는 마음 착한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은 몸이 숙련되지 않은 탓이요, 마음은 초조 불안한데 몸은 기계처럼 반응하고 돌아가는 것 또한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된 사람의 감정은 얼굴에도 나타나고 가벼운 발걸음에서도 느낀다. 반면 거짓과 욕심으로 짓눌린 사람의 무거운 발걸음과 긴장된 얼굴은 멀리까지 내면의 괴로움을 나타내 보인다. 즐거운 골프, 그날을 정복하는 베스트 골프는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어울린 날에 가능하다. 이는 연습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의 이상적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 

  수행은 현재의 제 모습, 제 기량을 즐기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이 마음먹은 대로 안 가도 절대 클럽이나 공을 타박하지 말아야 한다. 그린에서의 퍼트가 뜻대로 안 됐다고 퍼터로 땅을 치고 던지거나 심지어 꺾어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이 무슨 짓인가. 공이 이 산 저 산 자기 원하는 대로 날아가지 않는다고 ‘재수 없는 공’ 취급하며 숲이나 연못에 던져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또 무슨 짓인가. 대체 그것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제가 잘못 쳐놓고 왜 그것들을 타박하는가. 만약 섹스를 하려는데 그것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성질이야 나겠지만) 부러뜨리거나 잘라버리겠는가? 보약으로 달래거나, 비아그라 처방이라도 하며 위로하려 할 것이다. 골프도 그렇게 하면 된다. 자위적 싸움은 자신 안의 공포를 실체화 시키고 나아가 자기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골프를 정복하는 것은 점수보다 사랑임을 깨달아야 한다. 골프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 하는 것은, 현재를 사랑하고 즐기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쉬운 것을 어려운 일로 만드는 것은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 따라오지 못하는 몸을 마음이 받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돈을 땄다는 것과 골프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은 전연 다르지 않은가. 골프를 통한 인간성의 성숙은 사랑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사랑은 무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랑의 감정을 억지로 가질 수는 없다. 신비주의가 아닌, 이성적인 골프를 해야 된다. 감정에 바탕을 둔 골프는 깊이가 얕기 때문에 위로 크지 못한다. 

  비기너라면 골프를 통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자. 매너와 에티켓은 이웃(동반자)과 어울리는 능력이며 영적인 성숙의 척도이다. 불완전한 것도 열정을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 타인의 골프를 비판하면서 자기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목표가 없거나, 목표에 도달하려는 노력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자기만족일 뿐이다. 골프를 통한 성숙이란 이런 것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즐기는 것이다. 이제금 우리 골프가 몇 타를 쳤느냐는 상관없는 골프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타수보다는 오늘의 골프에 얼마큼 (진실하게) 사랑을 쏟았는지가 더 중요한 골프문화가 되었으면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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