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로 정복하는 골프 (19)

만감이 교차하는 티잉 그라운드(Teeing groud). 눈앞에 천국의 정원처럼 아름답고 시원하게 다듬어진 자연을 대하는 순간 세상살이의 부대낌은 모두 날아간다. 일상과는 주파수가 전연 다른 기분이 고조되는 순간. 어떤 급한 일을 두고 왔어도 이 순간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잊어버리게 된다. 골프 유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와도 이 순간 골프를 중단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천하절색의 미녀가 옷을 벗고 손짓해도 ‘기다려. 골프 끝나고….’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간다.   

티그라운드에 올라가기 직전, 캐디는 팀원을 소집(?)하여 자기소개를 한 뒤 준비운동으로 목, 어깨, 팔, 허리, 다리, 발목 근육을 풀도록 한다. 방법은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스트레칭은 필수이다. 골프에는 유연성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골프는 양손타법을 기본기술로 하는 흥미진진한 경기로 스윙을 바르게만 할 수 있으면 그 어떤 스포츠 보다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격렬한 스포츠는 아니지만 전체 길이 5,000∼6,300m, 폭 100∼180m의 필드를 누비며 몸을 심하게 좌우로 회전시키기 때문에 워밍업을 하지 않고 갑자기 경기에 들어가면 부상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근육을 접질리거나 심한 때는 늑골에 금이 가기도 한다. 상당수의 골퍼가 손이나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데, 이는 준비운동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된다. 반드시 경기 전에 스트레칭으로 관절의 가동력을 최대화하여 근육의 힘과 조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스트레칭 동작은 심장에서 먼 부위부터 시작하되 앞면근육을 먼저 풀고 뒷면근육을 풀어주는 게 좋다. 스트레칭을 마치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이다.

티그라운드에 올라서는 것은 경마의 기수가 출발시간이 되어 말을 타고 스타트라인 박스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 돌아설 출구는 없다. 순서대로 한 사람씩 올라가게 되어 있다. 첫 홀에 마련된 추첨용 막대기를 뽑아 드라이버 치는 순서를 정한다. 작은 번호를 뽑은 사람이 먼저다. 일행 중 한 명이 나서서 ‘자 하나씩 뽑으세요.’ 하고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캐디가 막대기를 나누는데 대개는 서로 먼저 뽑지 않으려고 양보(?)한다. 상대를 예우해서가 아니다. 먼저 치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1번을 쥔 사람의 일성(一聲)은 결코 반가운 표현이 아니다. 

“아이쿠! 내가 먼저야?”
“이런 이런, 나보고 첫 홀 오너(honor) 하라고?…”

운명을 받아들이듯 무겁게 티그라운드에 올라서서 코스 전경을 본다. 깃발 펄럭이는 그린을 확인하고 방향목(方向木)을 보며 스루더그린(Through the green)의 어느 지점으로 1타를 보내는 게 좋을지 살피고, 빨래줄 샷을 머리 속에 그리며 티를 꽂는다. (티의 높이는 101.6mm 이하여야 하며 플레이 방향을 가리키거나 공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디자인되거나 제조된 것은 안 된다.) 공을 올려놓고 페어웨이를 본다. 앞 팀의 세컨 샷이 끝나려면 1, 2분 기다려야 한다. 만약 이때까지 내기 방식이나 핸디캡 조절을 못했다면 여기서 벼랑 끝(?) 절충이 이루어진다.

오늘 그냥 치는 거야? 누군가 아쉬움을 담아 말하면 기다렸다는 듯 반응이 나온다. 왜 그냥 쳐. 뭘 해도 해야지. 그래. 스킨이라도 하자고. 에이, 할 거면 스트로크가 낫지. 핸디를 나인에 6개씩만 주라구. 좋아 6개씩 줄게. 당신은 4개. 하고 그중 잘 치는 사람이 조율하면 그에 따라 하위는 재빨리 교통정리(?)가 된다. 핸디를 주는 쪽은 단서를 단다. “대신 땅, 땅(배판선언) 치기 있는 거야.” 

골프를 잘 치려면 먼저 티를 꽂는 위치와 티샷의 방향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티마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으면서 페어웨이의 모습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페어웨이의 위험요소들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찾는 것인데, 보통은 위험지역이 있는 한쪽 끝이 최적의 위치이다. 자전거를 탈 때 오른쪽으로 기울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 듯, 오른쪽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티마크의 오른쪽 끝에 서서 페어웨이 왼쪽을 향해 치는 것이 방법이다.

티샷의 방향을 잡을 때 또 하나 고려해야 할 변수는 티그라운드의 디자인과 구질의 관계다. 유명한 골프코스디자이너인 로버트 존스 주니어(Robert Trent Jones, Jr.)는 위치, 경사, 고도라는 세 가지로 티샷의 구질에 영향을 주도록 티그라운드를 설계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페어웨이의 바람에 대한 정보를 감추고자 하면 티그라운드를 나무에 둘러싸이게 한다. 그런 곳에서 무턱대고 샷을 하면 슬라이스나 훅이 아님에도 바람 때문에 공이 휠 수가 있다. 티그라운드에 경사(slope)가 있는 경우는 경사의 방향으로 공이 휜다. 오른쪽이 낮으면 오른쪽으로, 왼쪽이 낮으면 왼쪽으로 휜다. 또 오르막이면 탄도가 높고, 내리막이면 탄도가 낮아야 한다. 고도(elevation)는 티그라운드와 페어웨이의 높낮이 차이이다. 낮은 티그라운드에서 높은 페어웨이로 샷을 하는 경우, 낮은 탄도의 샷은 오르막에 걸려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기 힘든다. 그런 경우엔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를 잡는 것이 충분한 탄도를 통해 필요한 거리를 확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동반자 중에는 골프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다. 필드에서 이것저것 (귀찮게) 묻는 사람도 있고 (역시 귀찮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웃코스 첫 홀 티그라운드에서만은 모두 숨을 죽이고 각자의 티샷을 주시한다. 무엇을 원할까. 누구나 내 공은 빨랫줄처럼 곧고 시원하게 뻗어 나가주길 바란다. 그러나 남의 공은?… 어드레스 때 불안정한 자세로 잔뜩 팔을 비틀고 클럽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눈웃음치며 속으로 즐긴다. 그래, 그래. 그래야 쪼루(topping)가 나든지 훅이 나지… 그러다가 그 공이 주욱―. 잘 벋어나가면 속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감탄인지 비명인지를 지른다. “어어, 잔뜩 내숭떨더니…. 이야! 뷰티플 샷.”    

첫 홀 티그라운드는 18홀 드라마의 프랙탈(Fractal)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티 오프(tee off) 할 때면 노련한 캐디는 골퍼 개개인의 성향을 다 파악한다. 누가 그날의 리더인지, 누구로 인해 이 게임이 좋은 게임이 될지, 아니면 그렇고 그런 게임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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