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 심리의 향기 가득한 경기 전 클럽하우스

이윽고 골프장에 들어선다. 한국의 골프장은 예외 없이 CC다. CC는 컨트리클럽(country club)의 약자다. 클럽은 상류사회 단체로서 여가 선용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동호회였다. 예를 들면 요트나 보트, 승마나 크로켓 테니스 같은 스포츠클럽이 만들어진 것이 기원이다. 이것이 교외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컨트리클럽으로 발전하면서 골프와 합쳐졌다.
골프코스만 있는 경우는 Golf Club, 즉 GC로 표기하는 게 정직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골프장은 사실상 GC다. 그런데 왜 모든 골프장들이 CC란 이름을 달고 있을까? 궁색한 논리지만 골프가 유한층의 사치스런 운동이라고 배척의 대상이 되니 컨트리클럽이라 하는 것 같다. 말막음으로 수영장 등 운동시설을 갖춰놓은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골프장에 골프 외의 스포츠를 하러 가는 사람도 없고, 가족을 데리고 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기분 좋게 정문 근무자의 깍듯한 거수경례를 받으며 정문 초소를 통과하여 골프코스 사이 길을 좀 더 달려가면 웅장한 클럽하우스를 만나게 된다. 「클럽하우스(club house)」도 골프장 전용어일 수는 없다. 요트클럽, 테니스클럽 등 모든 클럽의 휴게실이나 만남의 장소가 클럽하우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를 주축으로 컨트리클럽이 된 이후 사전에서도 “플레이어가 식사, 옷 갈아입기, 목욕, 휴식 등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골프장 내의 시설물을 말한다.”는 식으로 골프용어로 분류되었다.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레스토랑에 모인다. 거리도 만만치 않고 정체구간도 여러 곳인데 용하게도 대부분 시간 전에 도착한다. 한 골프장의 통계에 의하면 10명에 0.9명 정도가 늦어 동반자를 불안하게 하는데 이는 유사 모임보다 현저히 적은 수치라고 하니 골프 약속의 위력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골프장마다 「티업 40분 전 클럽하우스 도착」이 매너 좋은 골퍼의 표준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레스토랑에 마주 앉으면 식사든 음료든 시키게 마련이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는 새벽일 나가는 남편에게 새벽밥 지어 내는 아내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새벽운동 가는 남편에게 새벽밥 차려주는 아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드문 세상이 됐다. 남편도 원하지 않는다. 새벽밥은 커녕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곤히 자는 아내 깨워 (체력도 달리는데) 도장 찍어주는 봉사(?)를 하고 간다. 그게 과연 봉사인지 남용인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나서 한 시간 내외 차를 몰아 골프장에 왔으니 시장하기도 할 것인데, 운동하기 직전에 식사를 한다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
레스토랑에 둘러 앉아 있다보면 먹고 싶지 않은 사람도 시키게 된다. 더치페이(Dutch pay) 방식의 계산이 심리를 건드린다. 골프비용은 대개 4인 1조, 즉 팀 단위로 청구서가 발행된다. 그걸 넷으로 나누는 더치페이인데, 동반자들이 모두 식사하는 데 나만 안 하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 시키는 것이다.
“골프 치는 사람이 쩨쩨하게…”가 아니다. 원래가 있는 사람이 쩨쩨한 법이다. 부자란 ‘잔돈은 아끼고 큰돈은 펑펑 잘 쓰는 사람’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그런 것이 시작이다. 작은 돈에 대한 계산이 속내를 은근히 건드리기 시작하며 내기로 발전한다.
“돈 따먹으면 되지 뭐.”
경기 전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사람의 얼굴은 그렇게 상기된다. 약속을 한 순간부터 찰랑거리던 흥분과 걱정이 이때에 절정(?)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곧 시작될 경기에 대한 기대와 희망과 다짐은 가히 백인백색이다. 편안하게 티업을 기다리는 두둑한 배짱은 드물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라던가 “연습장에 한 번도 못 나갔는데…”하며 겉으로는 꼬리를 내리지만 속은 이빨 가는 늑대다. 기량을 숨기며 능청스럽게 (자기에게 유리하게) 내기 분위기를 만드는 「포커페이스(poker face)」 기술은 골프 실력과 정비례로 늘어난다. 내기에 들뜨는 원시적 본능이 둘러앉은 테이블마다 향기로 피어나 훈훈한 열기가 된다. 애써 평소보다 적게 웃고 말을 아끼며 의도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구해보는 소심파가 안쓰럽게 눈에 띈다.   
내기는 세계적인 것이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다분히 선진적인 것일 수도 있다. 기량으로 겨루는 내기는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과는 다르다. 골프에 왕도가 없고, 인간이 정밀한 기계처럼 완벽하지 못해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운칠기삼」의 투전놀이가 아니라 「기칠운삼」의 스포츠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민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는 유난히 내기를 사회악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골프 왕국인 영국이나 미국은 다르다. 내기가 생활화 되어 있고, 자기가 선택한 내기의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데서 책임감과 신사도가 길러지게 한다.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 속 많은 장면이 흥미로운 문제만 만나면 농담처럼 가볍게 5불, 10불, 내기를 하는데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반드시 결과가 나오고 지켜지는 데서도 내기문화를 얼마나 건전하게 계도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이제는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열 명이 모이면 한두 명은 반드시 같이 운동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게 마련인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거북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처세다.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일수록 더 잘 일어난다.”는 검퍼슨의 법칙처럼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한 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멀리 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 한두 명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더욱 결속할 수 있다고 여기면 그날의 골프를 즐길 수 있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1789년 골프의 성지 세인트앤드루스의 마도라스 칼리지를 창설한 교육개혁자(Reformer of Education) 앤드루 벨 박사가 남긴 어록을 음미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골프는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교육이다. 즐겁고 건강한 인생의 생활을 구현하고 실행하는 고귀하고 이상적인 기술이며, 처세술이다. 또 주의력과 정신집중과 평정, 침착을 훈련하고, 형성하는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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