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인기다. 인물을 소재로 한 역사드라마는 정권의 상징조작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반대로 과대포장이나 비하라는 왜곡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역사적 인물의 삶 전체를 조명하지 못한 채 결과만을 평가하여 그려내는 우를 범할 때도 있다.
‘불멸의 이순신’은 이순신은 물론, 원균이나 당시 임진왜란에 등장하는 일본 장수들에 대해서도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평가다.
제작진도 기획의도에서 '박제된 영웅, 그 편견과의 일전(一戰)을 감행한다'면서 “드라마 이순신은 성웅이라는 이름 하에 오랫동안 광화문 네거리 동상과 현충사에 박제되었던 영웅 이순신의 외피를 과감히 벗겨 그의 인간적인 면에 천착해 들어가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잡는다”고 밝히고 있다.
또 제작진은 '인물에 대한 평가에 있어 양자택일 혹은 흑백논리를 지양한다'며 “이순신을 영웅화하는 과정에서 그 평가가 심하게 왜곡되었던 맹장 원균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과 명나라의 장수들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해 나간다”고 덧붙였다.
기획의도대로 드라마가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차후 평가가 있을 것이지만 주목되는 것은 제작진이 ‘지난한 삶의 터널을 통과하며 결론적으로 영웅이 되었을 뿐’이라는 시각에서 한 영웅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빼어나거나 못남을 불문하고 인물을 평가할 때 그 기준을 결과에 두는 버릇이 있다. 빼어나면 앞뒤 볼 것 없이 ‘불세출(不世出)’이라 하고, 못나고 타락한 군상(群像)들에 대해서는 ‘천하에 몹쓸’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어떻게?, 왜?’라는 물음과 과정에 대한 파악 작업을 소홀히 한 탓이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서도 결과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한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총체적 조명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를 낳게 될 때까지의 과정과 인간적 고뇌, 투혼 등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역으로 권모술수와 같은 수단의 미화(美化)를 바로 보지 못할 때도 있다.
기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기업’과 ‘실패한 기업’이라는 단 두가지 평가만이 존재한다. 성공과 실패의 속내는 관심 밖이다.
대부분 신생기업들은 성공한 기업을 모델로 삼는다. 성공한 기업을 모델화할 때 보통 결과에만 집착함으로써 그 기업의 현재 모습만을 목표로 삼아 교훈을 삼고자 한다. 이는 성공한 기업의 현재 모습만을 옮겨다 심으면 자신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맹신의 소치다. 시행착오와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을 간과해 버린다면 성공한 기업에서 배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웅이 없듯, 기적처럼 성공한 기업도 없다. ‘기적처럼 성공한’이란 수식은 결과에 대한 미화일 뿐이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광고카피에 불과하다. 물론 기적처럼 성공했을 수도 있지만…
‘(과정을 배제하고 결과만을 기준으로 한) 역사적 평가는 너무 잔인하고 때론 경박한 면도 없지 않다’고 말한 이도 있지만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든 기업에 대한 평가든 과정을 배제한 평가는 정말 경박하다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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