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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외항선 태평양항로 횡단 50주년
물류신문 | webmaster@klnews.co.kr   2002년 11월 18일 (월) 00:00:00
2002년 11월25일은 우리나라 화물선이 태극기를 달고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국 항만에 기항한지 만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6.25 전쟁중이었임에도 불구하고, 6,800톤(G/T)급 '고려'호는 1952년 10월21일 부산항을 떠나 11월25일 미국 서해안 오레곤주의 포트랜드 항구에 기착했다. 원양항로 개척의 효시로 기록되는 역사적인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빠르게 발전하여 세계 8대 해운국으로 성장했다. 원양항로 개설 50년을 맞아 당시의 발자취를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미국 언론들 역사적인 사건으로 대서특필"

미국 서해안 오렌곤주에서 발행되고 있는 오레곤니안(The OREGONIAN) 신문은 1952년 11월27일(木)자 보도를 통해 "한국선박 최초로 미국방문"이란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이 신문은 역사상 최초로 극동해운(사장 南宮鍊) 소속의 1만톤(D/W)급 한국 선박인 고려(高麗)호가 11월25일(화) 밤 늦게 오레곤주의 포트랜드항(港)에 닻을 내렸고 한국에서 싣고 온 1,460톤의 고철(古鐵)을 하역했다고 보도했다.

고려호가 부산을 떠난 것은 이보다 한달 여 이전인 10월 21일이었다. "한국해양항만사"(80년 해운항만청발행)의 기록에 따르면 10월21일은 우리나라 국적선이 태극기를 달고 최초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출항한 기념할만한 날인 셈이다.

6.25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때인 1952년에 우리나라가 1만톤급 화물선 고려호를 소유하고 나아가서 태평양노선을 개척하기까지에는 드라마틱한 역정(歷程)이 있었다. 이 배는 일제말기 부산진 앞바다에서 침몰된 것을 남궁련(南宮鍊)씨가 인양, 수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고려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화물선"

1952년 10월4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적화량 1만톤급이라는 최초의 대형화물선 고려호가 10월3일 상오 11시 부산항 제1부두에 입항했다. 이 선박은 8.15 직전 부산진 앞바다에서 기뢰(機雷)에 부딪쳐 침몰했던 것인데 그 동안 남궁씨의 노력으로 일본 요꼬하마(橫濱)에서 약 2년간에 걸쳐 수리 작업을 끝마치고 이번 조국으로 귀항하게 된 것이다. 고려호는 총톤수 6,819톤 적화량 1만68톤 길이 1백39미터 폭 17미터 높이 10미터로 이와 같은 대형선박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최초의 선박으로 정부요인과 내외귀빈 다수가 출영 하였다."

고려호가 입항한 날은 우연이랄 수도 있지만 바로 개천절을 기념하는 10월3일이었다. 개천절 날에 태극기와 만국기가 해풍을 타고 나부끼는 가운데 고려호는 거대한 선체를 부산부두에 댐으로써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고려호의 대미(對美) 첫 출항은 역사상 최초의 태평양 횡단이라는 기록도 기록이려니와 이 배의 선장 박옥규(해군 참모총장 역임)씨를 비롯한 46명의 선원이 모두 한국사람 이었다는 점에서도 매스컴의 각광을 받았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그 누구도 한국인소유의 대형선박이 한국인 선장과 선원만의 운전으로 태극기를 달고 태평양을 건너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려''호의 태평양횡단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태평양상의 일부변경선(日附變更線)을 지나면서 갑자기 엔진이 고장났다. 이 때문에 시속 13노트의 이 배는 속도를 반감하여 예정보다 훨씬 뒤늦은 11월25일에야 겨우 포트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미국간 해상교역 길 터"

그러나 포트랜드에서의 고려호에 대한 환영열기는 대단했다. 1만 톤급의 거대한 화물선이 한국에서 최초로 도착했다는 소식은 미국 사람들의 관심을 북돋웠다. 고려호는 포트랜드시내 중심부에 자리잡은 제4부두에 정박했고 수많은 미국 조야 인사들의 환영방문을 받았다. 이곳에 있는 동안 고려호는 엔진수리를 완벽하게 마치고 12월9일(화) 낮 샌프란시스코의 스톡슨(Stockson)항에 입항했다.

이때의 광경을 샌프란시스코의 신문들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국기선 고려호, 이 나라에 최초로 온 한국상선이 샌프란시스코에 닻을 내렸다. 샌프란시스코의 해사위원회는 전통적인 세레모니를 통해 대대적인 환영을 했다. 미국에 처녀출항 하는 선박에 베푸는 행사에는 이곳 상공회의소 임원들도 참여했으며 고려호 선상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이 행사에는 주영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와 선주인 극동해운 남궁련 사장이 참여했고 때마침 한미재단(韓美財團)의 초청으로 미국을 순회공연하고 있던 한국의 어린이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여 인기를 끌었다."

고려호는 그로부터 1주일 뒤인 12월16일 9,500톤의 소맥(小麥)과 구호물자를 싣고 한국으로 출항했다.

남궁련씨의 고려호에 대한 꿈 같은 설계는 8.15 해방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부산진 앞바다에 침몰된 대형화물선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불하받게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 6.25 전쟁이 터짐으로써 그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듯 싶었다. 하지만 남궁련씨는 그의 굳은 의지를 접을 수 없었다. 남궁련씨는 1만톤급의 선박을 갖는다면 우리나라가 해양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당시 1만 톤급 이상의 선박을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 영국을 비롯한 수개 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비록 나라가 전쟁의 어려움 속에 있었지만 남궁련씨는 이런 그의 소신을 정부요로에 개진하면서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당시 고려호 수리현장을 찾았던 합동통신의 노석찬(盧錫瓚)기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기사를 썼다.

"나는 남궁련 사장의 안내로 쓰루미조선소에서 개수(改修)되고 있는 1만 톤급의 화물선을 보러 갔다. 머지 않아 진수(進水) 취항하게 될 이 선박 고려호는 선체의 크기와 더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동란중임에도 불구하고 1만 톤급의 대형화물선을 갖는 나라가 되었다. 이 배는 전시(戰時)에는 전쟁물자를 그리고 총성이 멎고 평화가 다시 찾아 오면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재건 부흥시키는데 필요한 물자를 세계 각처에서 실어 나올 것이다.

이 배는 원래 일본화물선으로 2차 세계대전 중 우리나라 해안에서 침몰한 것인데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연합국사령부는 지시문서를 통해 1945년 8월15일 현재 한국수역에 있던 모든 배는 한국 배로 고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연안에 있던 이 배는 한국의 배가 되었고 남궁련씨가 인양하여 일본까지 끌고 가서 개수하게 된 것이다."

"대양주와 유럽노선 등 원양항로 잇따라 개척"

이 기사를 본 AP통신은 월드와이드네트워크(Worldwide Network)를 통해 타전했다. 이에 따라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일간지와 ''미국의 소리방송''(Voice of America)에도 보도되었다. 고려호는 비단 최초로 미국에 간 한국의 선박일 뿐만 아니라 대양주(大洋洲) 노선과 유럽노선을 개척한 최초의 한국선박이다.

1953년에 접어들어 고려호는 홍콩에도 첫 출항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성도일보(星島日報)는 4월15일자 신문에서 2차대전후 최초의 한국화물선 고려호가 14일 홍콩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성도일보는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착한 고려호는 미국과 호주에서 곡물을 싣고 홍콩에서 하역했다"고 쓰고 있다.

" 한국해양항만사"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호가 최초로 호주항로를 개척하고 필리핀 마닐라와 독일의 함부르크로 처녀 운행한 것이 모두 1953년도의 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호주와 유럽에 태극리를 휘날리며 우리나라 국적선이 뱃길을 연 최초의 기록인 셈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고려''호를 진수 시킨 남궁련씨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태극마크를 단 우리나라 선박을 미국과 유럽 그리고 대양주에 가게 한 장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궁련 씨가 경영하던 극동해운은 지난 1970년 후반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장기해운불황의 여파로 문을 닫는 비운을 맞았다. 하지만 해운입국을 향한 그의 집념은 오늘날 우리나라 해운이 세계 8대 해운국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자료 : 선주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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