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도시 동경, 고객끄는 아끼하바라

18일 토요일 오후 2시, 일본 도쿄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업무가 종료된 토요일 오후라고는 하지만 도로적체도 없었고 행인의 발길도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 도로시스템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곳에나 고가도로가 하늘을 달리고, 도로교차점에는 지하차도가 신호등을 무색케 만든다. 고도로 계획된 도로체계라는 느낌을 준다.
3백33미터 높이의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공원내에 위치한 도쿄프린스호텔에 여장을 풀고 도심에 위치한 아끼하바라 전자상가를 둘러보았다. 제품의 질은 차치하고 관심을 끈 것은 우리의 용산 전자상가와는 달리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화려하지만 깨끗했고 고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조화돼 있어 구매는 하지 않더라도 쇼핑꺼리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진 곳이었다.
해외 현지생산화가 가속화되면서 중국산과 말레이시아산 등 동남아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이 많기 때문에 순수 일본産 제품을 찾기가 싶지 않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지독할 정도로 경제적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게하는 것은 대부분의 상업거리가 불필요한 전력낭비 막는데 목숨건 것처럼 어두웠다는 사실이다. 미처 깨닫지 못하고 들어 안 얘기지만 일본은 보도블럭 교체작업이 거의 없다고 한다. 대리석 등 충격에 강하고 마모가 잘 안되는 재질을 쓰기 때문에 초기투자는 부담스럽지만 결과적으로는 골재로 찍어낸 것들을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 계획과 투자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날 한진해운 동경지점 신경식 차장과 서철리 과장이 가이드로 나섰다. 쉬어야할 토요일 오후 시간을 할애해준 데대해 오래토록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될 것같다. 물론 일본지역본부장인 홍중화 상무, 동경지점 김연관 과장, 오사카지점의 최영배 지점장, 정동식 과장, 강부형 과장 등 관계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마음이다.

19일 일요일 오전 10시 도쿄타워에서 도쿄시를 한눈에 삼키고 한진해운의 아오미 전용터미널을 방문. 이곳에는 일요일 하역작업이 없다. 머리속에 그려둔 부두와는 달리 깨끗했다. 작업이 없어어도 그랬겠지만 시스템 자체가 터미널의 청결을 유지하게끔 하는 것같다.
한진해운이 2004년 4월까지 10년간 전용으로 임대해 쓰고 있는 아오미-C3 터미널은 쓰레기를 매립해 개발한 곳. 당시 어느누구도 이곳 입주를 선뜻 나서지 않았지만 한진해운이 입주, 성공적으로 운영해나가자 지난해 6월 에버그린이 바로 옆 아오미 C4 터미널에 입주했다고 한다.
이같은 인연으로 동경도에서는 한진해운에 대한 인지도도 높을 뿐 아니라 한진해운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동경지점 관계자의 얘기. 35만평에 포스트 파나막스급 1선석을 갖춘 이곳에서는 지난해 총 21만9천4백74TEU의 컨테이너화물이 취급됐다. 올해는 24만~25만TEU의 취급실적이 기대되고 있다. 다만 일본 내수경기 침체, 경제성장 둔화, 생산설비 해외이전 등으로 물동량이 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한다.
아오미 C3 터미널의 하역능력은 시간당 37~38박스. BCTOC(자성대)의 22박스와 PECT(신선대)의 25박스에 비해 배 가까이 높다. 이처럼 높은 생산성에 대해 이곳 관계자는 시설의 우수성에서 뿐 아니라 일본인들의 협업정신에서도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우리의 경우 중장비운전 면허만 있으면 갠트리 크레인을 운전할 수 있으나 일본의 경우 갠트리 크레인, 트랜스테이너, 트랙터 등 모든 터미널내 장비를 운전할 수 있어야만 한다. 갠트리 크레인 기사가 여유가 생기면 트랙터도 몰고, 트랜스테이너도 조작한다. 협업을 통한 생산성 끌어올리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동경항, 특히 아오미 터미널은 말그대로 친수공간이었다. 아오미 터미널과 해상공원이 연결돼 있다. 그곳에 말끔하게 깔아놓은 산책로와 어린이 위락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인천의 월미도를 상상한다면 곤란하다.
동경항 컨테이너 터미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선박 과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 1층과 전망대를 포함 모두 8층규모의 건물로 배의 발달과정, 선박 건조과정, 배의 기관 등이 잘 설명돼 있고 미래의 선박, 고대 선박모형과 일본의 전통선이 대규모로 전시돼 있다. 지하에는 해양자원개발 개념이 모형화돼 있다.
이곳의 전시물들은 대부분 움직인다. 보턴만 누르면 조작이 가능하게 돼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해양에 대해 관심과 바다를 향한 미래에의 의지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시설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의 바다홍보 현실을 생각할 때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이 자랑해온 신간센에 몸을 싣고 오사카를 향한다. 교토, 나라 등 우리의 문화가 전래돼 그 잔형이 남아 있다는 곳들을 지나 늦은 시각 오사카 시내를 들어섰다. 도쿄와는 사뭇 다른 냄새가 풍긴다. 왁자지껄하고 어수선한데다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우리네 거리와 다를 바가 없는 곳. 그곳에서 도쿄가 각인시킨 [일본의 차가움]을 떨칠 수 있었다.
20일 오전 9시 30분 우리를 태우고 부산으로 향할 5천3백TEU급 초대형 풀컨테이너선 [한진 베이징]호의 출항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한진해운의 전용터미널 OC(오사카 컨테이너)-1 터미널이 위치한 오사카 남항은 4반세기전 매립해 만든 인공섬에 개발된 부두다. 92년 2월 20일 개장당시 부두길이 3백미터였던 한진전용터미널은 선박의 대형화에 발맞춰 3백50미터로 접안길이를 늘렸다고 한다.
이곳 오사카지점의 최영배 지점장은 부임후 터미널의 시설확충에 힘써왔음을 강조한다. 인접한 OC-2 터미널의 안벽 및 갠트리크레인을 사용할 수 있는 교섭에 성공한데다 오사카 부두공사와 협의, 현재 1백80대인 냉동컨테이너 장치능력을 2백대 더 늘리게 됐다는 것. 물론 공사비 3억엔은 오사카 부두공사가 부담하는 조건이다. 이에따라 선박 2척의 동시접안이 가능해졌고 일본의 육류 및 채소류 등 냉장.냉동화물 수요증가에 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됐다.
지난 95년 고베지진의 영향으로 20피트짜리 4만개, 40피트짜리 6만9천개를 처리한 OC-1 터미널의 지난해 취급실적은 고베지진 거품이 다소 빠진 3만7천개와 6만5천개. 이곳 관계자는 오사카 터미널 취급물량이 더이상 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고베, 나고야 추가 기항으로 전체적으로는 간사이지역 취급실적이 10%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20일 12시 [한진 베이징]호 승선. 배정받은 승선교육자 침실은 침대, 책상, 샤워실이 갖추어진 4평남짓한 방으로 깨끗했다. 이 배는 한진해운이 세계 최초로 운항중인 세계 최대형 5천3백TEU급 교육선. 해양계 대학생과 육상직원들의 승선교육을 위해 원격조정 장비, 레이더 등 시뮬레이션 장비와 함께 20여명의 실습생을 교육시킬 수 있는 2개의 강의실도 별도 설치한 선박이다. [한진 베이징]호 외에도 한진해운은 4천TEU급 2척을 포함 모두 3척의 교육선을 운항하고 있다.
[한진 베이징]호는 최대출력 7만5천마력의 엔진을 장착하고 26노트의 속력으로 운항되는 세계 최대형, 최고속 선박. 이 선박은 또 연료절약형 엔진과 자동항법장치, 원격조정 CCTV 등 첨단 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조타실의 1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경제선형임을 자랑한다. 노희삭 선장(55년생)을 비롯 총 19명의 선원은 세계 최고의 컨테이너선을 운항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오후 1시. 거대한 [한진 베이징]호가 2척의 터그보트에 의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도선사가 두명 승선한다. 이.접안할 때와 외항으로 나올 때까지 수로를 인도하는 도선사가 따로 있다. 달리는 배에서 승하선하는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한도선 1항사(61년생)로부터 배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깔끔하게 인테리어된 선장실, 대형 TV와 오디오, 비디오 시설이 갖추어진 사관 및 선원 휴게실, 샤워실, 사우나실, 체육시설, 빈 공간을 이용해 만들어놓은 소형 골프연습장 등.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는 않을 것같다. 브릿지의 첨단 시설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훌륭했다.
저녁식사후 선원들과의 간담회. 형식적 자리로부터 자연스럽고 떠들석한 자리로의 탈바꿈이 재미있다.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大選, 정치판, 월드컵 축구대회 등 다향한 주제가 질서없이 오고간다. 선원들의 처우문제, 가족과의 격리생활 대목에서는 마음속으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내일(21일) 오후 8시께 하선해 가족들과 얼굴한번 비비고 손한번 잡아보고는 자정까지 귀선해야 한다. [한진 베이징]호는 22일 새벽 4시 홍콩을 향해야 했다. 출항 4시간전에 귀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유희(43년생) 통신장은 집이 서울. 비행기로 부산에 내려온 가족들을 부산 모처에서 만나 안부 인사나눔으로 마음을 달래야 할 것이다. 강유희 통신장은 승선교육자들과 한마디라도 더 대화를 나누고 조금이라도 더 자리를 같이 하고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망망한 바다. 밤의 바다는 무서움 그것이었다. 아침 바다는 상큼했고 정오의 바다는 한가했다. 일본 남단을 돌아 대마도를 끼고 달리던 [한진 베이징]호 휴게실의 TV가 우리나라 방송을 잡은 것은 오후 4시경. 브릿지가 긴장속에서 바빠졌다. 오륙도가 눈에 들어오고 신선대, 내년에 개장할 4단계부두가 완연하다.
접안시간이 다소 늦어져 멀리 외항에서부터 부산항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한진 베이징]호 접안과정이 가져다준 긴박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지만.
하룻정을 나눈 선원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우리는 김포공항행 비행기 시간에 쫓겼고 선원들은 30분 앞으로 다가선 국제안전기준 인증서 수여식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진 베이징]호를 향해 계속 고개가 돌아간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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