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인프라 넘어 IT 네트워크가 생존에 열쇠

물류를 흔히 네트워크 산업이라고 부른다. 물리적인 인프라에 방점을 둔 표현이지만 앞으로의 물류 산업은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최근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두 가지 통신망 기술이 물류기업 생존에 중요한 기본 전제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막대한 잠재력을 보유한 ‘IoRT’, 보안 경각심 필요 지적도
아마존은 미국 내 물류센터에만 20여만 대의 로봇을 운용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로봇사물인터넷(IoRT)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로봇사물인터넷은 첨단 로봇공학과 IoT가 결합한 새로운 기술 솔루션으로 물류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과학 전문 DB 사이언스다이렉트는 로봇사물인터넷을 IoT와 로봇뿐 아니라 사물웹(Web of Things, WOT), 로봇사물웹(Web of Robotic Things, WoRT)이 결합한 개념으로 정의한다. 사물웹은 모든 사물이 웹으로 연결되는 환경을, 로봇사물웹은 이 사물웹에 로봇이 결합한 환경을 말한다.

출처: ScienceDirect, The Penetration of Internet of Things in Robotics/ 로봇사물인터넷(IoRT)의 포지션
출처: ScienceDirect, The Penetration of Internet of Things in Robotics/ 로봇사물인터넷(IoRT)의 포지션

로봇사물인터넷은 지능형 장치가 이벤트를 모니터하고 여러 소스에서 도출되는 센서 데이터를 통합해 최적 행동 경로(course of action)를 설정하며 물리적 현실에서는 물체(object)를 조작할 수 있다.

핵심 구성요소인 로봇은 내장된 모니터링 및 감지 기능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물체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한다. 이처럼 로봇사물인터넷은 데이터를 공유하고 통신하는 IoT 기능에 더해 물리적 세계에서 움직이면서 물체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IoT 기기와 구별된다.

로봇은 인간 개입을 줄이면서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IoT는 독립적이면서 스마트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 둘이 결합한 로봇사물인터넷은 생산성 측면에서 막대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다. 아마존의 경우에서 보듯 로봇은 공급사슬의 모든 영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을 탑재한 로봇이 인간과 협업해 물건 상자를 포장·이동시키는 등 물류센터 작업에 투입된다면 물류 자동화 속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 또 기존 로봇 시스템의 이상 유무를 자체 판단, 해결하는 유지보수 분야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로봇 기술이 발달하면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데이터의 처리를 위해 네트워크나 클라우드에 연결되는 로봇사물인터넷도 빠르게 보급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 그룹은 로봇사물인터넷의 보급이 활성화되려면 보안에 대한 높은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로봇은 인터넷 연결을 통해 다른 로봇과 공동작업을 하거나 기업 내 IT 시스템 혹은 클라우드에 접속해 원격지에서 저장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방화벽이 구축되어 있더라도 로봇에 따라 보안이 완벽하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 현재 공급되고 있는 다수의 로봇은 오픈소스 프레임워크 방식의 로봇운영체제(Robot Operating System, ROS)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독자 물류망 시대는 가고 ‘PI’ 시대가 온다
물류업계가 겪고 있는 인력부족 문제와 노동환경 악화, 환경오염, 디지털 전환 지연으로 인한 업무 효율성 저하 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커머스 확산으로 택배 물량이 급증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 한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물류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기술이 있다. 바로 인터넷 통신망의 오픈 셰어링(Open Sharing) 특성을 물류업계의 물리적 영역에 적용한 ‘피지컬 인터넷’(Physical Internet, PI)이다.

피지컬 인터넷이 주목 받는 배경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커머스 택배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는 소규모 다빈도 주문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배송 효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가져왔다. 그동안 물류기업들은 독자 물류망을 구축해 왔다. 이는 예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맞지 않는 전략이 됐다. 독자적인 물류망은 적용할 수 있는 공급사슬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 망사용의 공동화가 안 되기 때문에 배송 조건 등의 차이로 물류자원 사용이 비효율적이 되기 쉽다. 특히 독자 물류망은 코로나 팬데믹 같은 돌발 변수와 대규모 자연 재해 등에 취약하다. 물류 거점을 정상적으로 이용하지 못해 공급사슬이 끊겨도 이를 독자 물류망을 통해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터넷 통신망의 오픈 셰어링 특성을 물리적 영역에 적용하는 피지컬 인터넷은 인력, 차량, 시설, 에너지 같은 물류 관련 자원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물류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출처: 노무라종합연구소
출처: 노무라종합연구소

피지컬 인터넷이 물류 현장에 적용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먼저, 데이터는 패킷으로 분할돼 공유된 복수의 회선·라우터에서 최적 경로를 찾아 송신자로부터 수신자에게 신속하게 전달된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수송 거리를 단축하고 설비 가동률을 높이며 혼재 수송으로 트럭 적재율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효율’이 올라간다. 화주가 ‘무엇을 언제까지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물류업자가 수송수단과 물류센터 등을 공유해 효율적 물류를 실현하는 게 바로 피지컬 인터넷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피지컬 인터넷의 최종 목표는 기본 규칙만 지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적 공동 수송 모델을 완성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많이 시도됐던 공동물류와 비슷한 형태로도 보인다. 때문에 그와 비슷한 핵심 전제가 필요하다. 망을 공동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참여업체 간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를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시도됐던 공동물류의 뚜렷한 성공사례가 아직까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전제이면서 넘어야 하는 가장 큰 산이다.

시스템 측면에선 △물류 시설·차량 공유 △화물 크기 표준화 △배송 정보망 정비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물류 시설과 차량의 공유가 전제돼야 피지컬 인터넷을 구현할 수 있다. 기업들이 자사 타사 구분 없이 가장 효율적인 경로에 위치한 시설·차량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공동화를 완성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과제가 화물 크기를 표준화하는 것이다. 화물 표준화가 트럭 적재율을 향상시키는 핵심 포인트라는 건 물류의 기본 상식이다. 문제는 현실에선 여러 종류의 다양한 화물 크기로 인해 적재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적재율 향상을 위한 표준화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피지컬 인터넷은 책임자 판단이나 지시를 거치지 않고 시스템 자체가 화물별 최적 경로를 운전자에 제시하는 게 목표다. 그래서 IoT·AI 기능이 기본이 된다. 기존 배송 정보망으론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지컬 인터넷 환경에 맞게 이를 정비하는 게 다음 과제다. 배송 경로 관리 시스템이 피지컬 인터넷에 맞게 정비된다면 작업자의 업무 부담은 줄어들고 신속 정확한 배송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참여업체 간의 합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피지컬 인터넷이 가야할 길은 아직 쉽지 않다.

PI 도입, 전략적으로 지원나선 ‘EU·일본’
피지컬 인터넷이 아직은 물류업계 전체의 변혁을 이끌 만큼 광범위하게 도입·활용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방향’으로 가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은 자체 배송망을 확충하고 있지만 일부 배송 거점을 외부 기업에 개방해 물류자산을 공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항공 물류 거점인 신시내티 공항을 DHL(DP DHL)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차로 인해 미국과 독일의 피크타임이 다르다는 데 착안해 상호 유휴 시간에 물류자산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확산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해관계가 상충되거나 입장이 서로 다른 개별기업, 또는 업계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때문에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중장기적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방안이 거론된다.

실제 EU에서는 산·관·학이 2030~40년 실현을 목표로 피지컬 인터넷 로드맵을 수립했다. ‘지속가능 스마트 모빌리티 전략’(2020.12 발표) 안에 포함된 앨리스(ALICE)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정식 프로젝트 명은 ‘유럽 내 협력 통한 물류혁신 연합–유럽 기술 플랫폼’(Alliance for Logistics Innovation through Collaboration in Europe-European Technology Platform)이다. 앨리스 프로젝트에서는 2030~40년 피지컬 인터넷 실현을 목표로 ▲물류 노드(Logistics Node) ▲물류 네트워크 ▲물류 네트워크 시스템 ▲접속 ▲거버넌스(Governance) 분야에서 5년마다 실천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2030년까지 유럽 물류 효율을 2015년 대비 30% 높이는 게 목표다.

일본 정부도 ‘전략적 혁신 창조 프로그램’ 2기(2018~22년) 12개 과제 중 하나로 ‘스마트 물류 서비스’를 추진했는데 그 내용은 야마토운수 등의 기업이 공동물류를 확대하면서 피지컬 인터넷 도입을 실현하도록 측면 지원한다는 것이다. 야마토운수는 인터넷 쇼핑과 택배 사업 등에서 피지컬 인터넷 도입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커머스와 택배 등 소형 화물 수송 분야에서 대기업과 스타트업 주도로 피지컬 인터넷에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이 가득한 미래 경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업 물류의 가치사슬이 고정적 대규모 투자에서 소비자 니즈나 사업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물류업계는 새로운 기술 솔루션을 도입해 복잡한 배송을 디지털화한 뒤 그 정보를 빅데이터로 분석하면서 물류 운영 효율화, 경영의 고도화를 이루는 것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될 것이다. 로봇사물인터넷과 피지컬 인터넷은 그 길로 가는 기본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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