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한 공급사슬 가시성 회복에 특효약으로 떠올라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급사슬이 세계 곳곳에서 무너졌다. ‘초유의 물류대란’ 사태가 곳곳에서 2~3년 동안 지속됐다. 전문가들은 이 사태를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비유했다. 퍼펙트 스톰은 세계 경제가 여러 악재의 복합 작용으로 위기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공급사슬이 붕괴했다는 건 ‘가시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가시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데이터가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딜리버(Deliverr)는 이커머스 배송 기간이 7~10일에서 이틀로 단축되면 판매업체의 매출은 40%, 하루로 줄면 70%나 증가한다고 전했다. 배송 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택배 도착 시간을 예측한다는 것인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공급사슬의 가시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실시간 운영이 핵심
코로나 팬데믹으로 물류대란이 벌어졌다는 건 기업들이 공급사슬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공급사슬 내 상품과 서비스 이동을 정상화하는 방안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AI에 기반한 디지털 트윈 기술이다. AI 디지털 트윈 기술은 물리적 시스템의 데이터를 가상 모델에 적용한 뒤 실제 발생 가능한 상황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해 결과를 제시하기 때문에 공급사슬 교란을 예측하는 차원을 넘어 계획과 운영 등 대응 조치까지 제시할 수 있는 ‘만능열쇠’ 같은 것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가치사슬 전 과정에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컨테이너에 설치된 IoT 센서는 컨테이너 위치와 파손 여부 데이터를 디지털 트윈이 채택된 중앙 네트워크에 전달해 컨테이너의 효율적 재배치를 할 수 있게 한다. 또 특정 시설의 3D 모델을 설정한 뒤 시설 상태와 상품 가용성 정보를 바탕으로 재고 확보와 배송경로, 배송 시간에 대한 최적의 의사결정도 뒷받침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물류에서 디지털 트윈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IoT로 추출된 데이터를 AI를 활용한 가상공간에서 실시간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벌어진 물류대란 속에서도 공급사슬 가시성을 확보해 홍보하는 기업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판매자 대행 상품은 물론, 자체 배달하는 모든 상품에 대해 정확한 예상 도착 시간 정보를 소비자에 전송한다. 페덱스와 DHL 같은 특송 업체들도 AI 기반 디지털 트윈으로 공급사슬 내 상품과 서비스 이동을 정상화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적시 출하(just-in-time shipping) 시스템을 복원하고 효율성과 회복탄력성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을 사용하고 있다. DHL은 재활용 용기 생산기업 스웨덴 테트라팩(Tetra Pak)사와 공동으로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적용된 테트라팩 물류센터를 싱가포르에 설립했다. 이런 움직임은 물류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구글은 자동차 업체 르노의 공급사슬 구축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했다.

구글, 신개념 기술 솔루션 ‘공급사슬 트윈’ 개발
현실에선 불완전하고 서로 일치하지 않는 데이터로 인해 공급사슬 가시성이 제한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소싱 및 계획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공급사슬 전체의 기능을 최적화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디지털 트윈의 연장선상에서 지난해 연말 새롭게 등장한 신개념 기술 솔루션이 있다. 구글이 개발한 공급사슬 트윈(Supply Chain Twin, SCT)이다.

공급사슬 트윈은 기업이 공급업체 상황, 재고, 날씨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교통·물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 물리적 공급사슬을 디지털 트윈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클라우드 기반의 기술 솔루션이다. 공급사슬 트윈은 소싱과 계획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공급사슬 전체의 기능 최적화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공급사슬 전체를 포괄하는 통합된 디지털 트윈’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급사슬 트윈은 실시간 가시성, 이벤트 관리, AI 적용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의 기능을 구현한다. 기업 입장에선 구글의 공급사슬 트윈을 공급사슬 상태를 파악하는 성과 대시보드(Performance Dashboard)로 운영할 수 있는 셈이다. 공급사슬 트윈은 특정 메트릭스를 정의한 뒤 임계값에 도달할 때 경고가 울리도록 한 뒤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협업하는 워크플로우 구축을 돕는다.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 니즈를 예측하고 공급사슬 운영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기업이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 지표를 개발하고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한 예측 모델도 제시하는데 기업은 이를 이용해 맞춤형 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다.

TMS·WMS 통합, 엔드 투 엔드 가시성 제공
구글의 공급사슬 트윈은 공급사슬 펄스(Supply Chain Pulse, SCP) 모듈을 포함한다. SCP 모듈은 구글 워크스페이스에서 대시보드·분석·알림과 공동작업 기능을 구현한다. 기업이 데이터 세트를 파트너와 공유하고 다양한 소스의 데이터로 가공·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SCP 모듈의 기능이다. 제품 정보, 주문 정보, 재고 운영 데이터, 재고 수준, 자재 운송 상태 등 공급업체와 파트너 데이터가 포함된 전사적사업시스템(Enterprise Business System, EBS)도 지원한다. 이와 함께 날씨 등 상황 데이터를 공개 소스에서 가져와 AI 알고리즘을 통해 더욱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해 특정 이벤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도 SCP 모듈의 기능이다.

구글의 공급사슬 트윈 개발은 AI와 디지털 트윈 기술이 물류 및 제조 산업의 효율성을 향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은 구글의 공급사슬 트윈이 전사적자원관리(ERP), 운송관리시스템(TMS), 창고관리시스템(WMS) 같은 기존 기술 시스템 데이터를 통합해 엔드 투 엔드 가시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실증 사례도 있다. 미국 아나플란(Anaplan)사는 구글의 공급사슬 트윈을 이용해 지금까지 구축해 온 마케팅 역량을 결합, 공급사슬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고객 데이터에 최신 분석 기술을 적용하려면 확장성 높은 퍼블릭 클라우드 도입이 필수인데 구글의 공급사슬 트윈이 바로 이 조건에 딱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최적화’와 ‘확장 가능성’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어
디지털 트윈은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분석하기 때문에 기업 프로젝트는 물론 특정 제품과 서비스, 나아가 비즈니스 생태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여러 산업에서 3D 모델링을 활용하고 있지만 디지털 트윈은 실제 물리적 사물과 환경을 사이버 공간에서 1대1 매칭 시킨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 이것보단 한 단계 진화된 형태다. 

물류 산업에서 디지털 트윈을 주목하는 이유는 ‘최적화’ 때문이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리적 사물과 환경을 사이버 공간에 수평 이동시킨 뒤 실제 발생 가능 상황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한다. 이를 통해 예정된 프로젝트의 결과를 사전 예측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물류 최적화를 구현할 차세대 첨단기술로 디지털 트윈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DHL은 디지털 트윈을 가치 창출 핵심기술로 여기는 대표적 업체 가운데 하나다. 싱가포르에 만든 테트라 팩(Tetra Pak) 물류센터가 좋은 예다. 이 물류센터에 적용된 디지털 트윈 기술은 안전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 발생하는 이상 혹은 특이 상황 등 물류 설비 상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경영진은 탄력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물류센터에서 는 수집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품 보안을 강화하고 보관 위치를 최적화한다. 센서가 인터넷과 연결돼 콜드체인 물류의 온도 관리 효율성도 높여준다. DHL의 테트라 팩 물류센터처럼 디지털 트윈을 적용한 스마트 물류센터를 만든다면 기존보다 훨씬 더 민첩하고 비용 효과적이며 확장 가능한 공급사슬을 구축할 수 있다.

물류 디지털 기술, IaaS에서 PaaS로 전환
물류와 공급사슬 효율성을 위해 디지털 트윈을 플랫폼으로 구축하는 기술 사업은 글로벌 기업들에겐 새로운 시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MS는 물류센터 등 건물 관리를 위한 온톨로지(Ontology) 솔루션을, 구글은 물류·제조에 특화된 디지털 트윈 기술을, 아마존은 장비와 생산 설비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트윈을 단순화한 IoT 트윈메이커(IoT TwinMaker)와 플리트와이즈(FleetWise) 서비스를 출시했다. 기술 사업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물류 디지털 트윈도 진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트윈이 ‘서비스로서의 인프라(Infrastructure as a Service, IaaS)’에서 ‘서비스로서의 플랫폼(Platform as a Service, PaaS)’으로 전환된다고 전망한다. 그 이유는 기술기업 사이에는 디지털 트윈 도입 장벽을 낮추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입 장벽을 낮춰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트윈을 구축할 때 생기는 어려움 중 하나가 현실 대상을 모델화하고 통신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술 전문가들은 디지털 트윈 구성요소의 표준화와 모듈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PaaS는 기업 클라우드 플랫폼과 관계없이 디지털 트윈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기 때문에 PaaS가 디지털 트윈의 대세가 된다는 것이다. IaaS는 제삼자가 스토리지 등 인프라 서비스를 클라우드에서 제공한다. 사용자는 운영체제·데이터·애플리케이션·미들웨어·런타임을, 제공업체는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네트워크·서버·가상화 및 스토리지 관리와 액세스를 담당한다. 구성요소의 확장 또는 축소가 가능한 유연성과 상대적으로 관리·유지비가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PaaS는 제공업체가 자체 인프라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호스팅하고 사용자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실행·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용자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또는 하드웨어 유지관리 같은 번거로움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 트윈 도입 환경을 만드는 ‘옴니버스 플랫폼’

물류에 디지털 트윈이 적용되려면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AI가 활용되고 시뮬레이션을 통한 예측 분석이 가능한 환경 조성이 먼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전제 조건을 충족하는 솔루션으로 옴니버스 플랫폼을 예로 든다. 세계적으론 엔비디아(NVIDIA)사의 플랫폼이 유명하다. 이 회사의 옴니버스 플랫폼은 정확한 복제본을 만든 뒤 이를 가지고 가상 시스템에서 테스트할 때 레이아웃 변경, 소프트웨어 최적화 및 업그레이드, 시스템 오류 방지 등을 지원한다. 또 현실 시스템과 디지털 트윈 모델이 정확한 지점에서 동기화되도록 다양한 ‘가정(what-if)’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데 이를 통해 물류 예측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옴니버스 플랫폼은 개방형 표준을 기반으로 구축하기 때문에 3차원 설계와 CAD 애플리케이션을 연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IoT·데이터 시스템·산업 자동화 도구로도 확장할 수 있다. 엔비디아의 플랫폼은 로봇 플랫폼 아이작(Isaac), 비디오 분석 앱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물류 최적화 엔진 쿠옵트(cuOpt), 인공신경망 모듈러스(Modulus) 등의 솔루션과 결합해 AI 활용을 극대화하도록 돕는다.

많은 유명 기업들이 최근 들어 옴니버스 플랫폼을 사용한 디지털 트윈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마존은 AI 기반 옴니버스 플랫폼으로 디지털 트윈을 구축해 200여 개에 달하는 풀필먼트 센터 설계와 물류 흐름 최적화에 이용하고 있다. 아마존 풀필먼트 센터에서는 50여만 대의 창고 로봇이 선반 아래로 들어가 출고 상품을 선반 통째로 작업자가 위치한 지점까지 운반하는 등 지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펩시 역시 AI 기반 옴니버스 플랫폼으로 디지털 트윈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비디오 분석 앱(메트로폴리스)을 접목해 물류 처리량을 개선하고 가동 중단 시간을 줄여 에너지 소비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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