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와 '유도'로 과도한 노동환경 개선 못해, 세밀한 현장점검 뒤따라야

최근 잇단 택배기사들의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택배기업을 비롯해 전체 택배산업계에서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들의 최종 과로 방지책을 내 놨다. 과연 현장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우선 정부가 밝힌 택배기사들의 과로방지 대책 핵심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장시간 고강도의 작업시간 개선방안이다. 두 번째는 택배기사들의 건강보호 강화방안이며, 마지막으로 이들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내놓은 방안들은 택배현장에서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사망 사고를 방지하기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대부분 권고사항에 그치기 때문이다.

범 정부차원에서 내 놓은 택배기사 과로방지대책의 핵심을 정리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또 추가로 이번 대책이 연륙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는 무엇이 필요한지 긴급 점검해 봤다.

정부, 고강도 작업 개선위해 노사합의 통해 토요 휴무제·심야배송 제한

12일 정부가 내놓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정부는 택배기사들의 과로 방지를 위해 각 택배기업 별로 노사 협의를 통해 토요일 휴무제 도입과 하루 최대 작업시간을 정해 그 한도 내에서 근무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특히 주간 배송의 경우 밤 10시 이후 택배기사들이 사용하는 배송 앱 차단을 통해 심야 배송 제한하도록 권고하고, 노사 협의를 통해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또한 분류작업에 대한 노사의견 수렴과 함께 표준계약 반영도 적극 도입할 방침이다.

국토부 백승근 교통물류실장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도출할 것”이라며 “적정 작업시간을 얼마나 해야 할지 실태조사를 통해 분석하고 있으며, 택배 기업별 상황도 달라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해 어느 정도로 권고할지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배송기사들의 작업시간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각 택배기업 별로 물량조정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택배기사들의 주요 과로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분류작업의 경우 노사 간 의견수렴을 거쳐 명확화·세분화해 표준계약서에 반영토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 계약 체결을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는 택배기사들의 건강보호 강화를 위해 일반 근로자들과 같이 택배기사에 대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상 건강진단 실시 의무를 대리점주들에게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또 뇌심혈관질환·근골격계 질환 등을 예방하기 위한 직종 맞춤형 건강진단 방안을 마련해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다. 1만 명의 맞춤형 건강진단을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7억 원으로 추산, 내년 예산안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건강진단 결과, 택배기사들에게 뇌심혈관질환 등 건강상의 문제가 우려되는 경우 대리점주가 작업시간 조정 등의 조치를 협의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택배기사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일선 배송기사들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는 원칙적으로 종사자 본인이 직접 제출토록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신청서 처리 전 본인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신청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문제 발송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산재보험 가입 방해, 적용제외 강요행위 등에 대한 처벌조항을 신설하고, 산업안전감독관에게 처벌조항에 대한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아울러 산재보험 적용제외 사유를 질병 부상, 임신 출산 등 불가피한 사유로 축소하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도 추진한다. 하지만 이 역시 택배기업과 대리점주, 배송기사등 추가 비용을 누가 지불할지에 대한 구체적 안이 없어 세부적인 후속 방안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정부는 택배현장에서의 불공정 관행 개선에도 나선다. 택배기사 수수료 저하를 야기하는 홈쇼핑 등 대형화주의 백마진(택배사가 대형 화주에서 지급하는 일종의 리베이트) 관행을 조사해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대리점 등이 택배기사에게 부과하는 위약금 등이 불공정거래에 해당하는 경우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이번 사태의 키인 택배가격 구조 개선도 손 본다. 정부는 적정 택배 수 배송 수수료 제공을 위해서는 가격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해 내년 상반기 중 가격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도시철도 차량기지·공영주차장 등 유휴부지를 활용, 공유형 택배분류장 등 인프라 확충과 택배종사자 보호 강화, 택배산업 육성·지원 확대, 택배업 제도화 등을 위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도 연내 제정, 시급성을 감안해 법 시행 시기를 공포 후 6개월 후로 앞당기기로 했다.

이번 정부 대책안을 발표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은 택배기사의 보호뿐 아니라 택배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택배기사의 과로 방지를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해 택배기사의 작업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김현미 국토부 장관 역시 “택배기사의 처우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분류인력 확충, 설비투자 및 적정 배송수수료 지급 등이 이뤄지기 위해 택배가격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해 내년에 가격구조 개선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부분 대책안 '권고와 유도' 그쳐, 추가 개선비용도 기업 및 대리점주에게?

이번에 내 놓은 범정부 대책안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항목이 권고 사항이어서 택배현장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주 5일 근무제의 경우 택배서비스 1위 기업인 CJ대한통운이 난색을 보이고 대안마련도 당장 쉽지 않아 정부의 권고와 유도로는 시장에 정착시킬 수 있는 대책이 못된다. 특히 22시 이후 배송 앱 차단을 통한 심야배송 제한 대책도 단순히 앱을 차단한다고 해서 배송을 멈추는 것도 아니어서 말 뿐인 탁상행정이란 지적이다. 또 일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해 한도 내 배송을 유도한다고 하지만, 배송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택배서비스 구조에서 이를 강제하지 않을 경우 공염불에 불과해, 현장에서의 과로 방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택배현장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여기다 택배기사들은 분류업무가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면 택배사업자들의 경우 이 업무 역시 배송업무에 포함된다고 일관되게 밝히고 있어 이를 정부가 개입해 명확히 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잇단 사망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정부의 이번 대책의 현실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택배기사들의 건강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책안도 이를 위한 적정한 비용조달 방안 없이 발표돼 실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는냐 다. 모든 비용을 기업이 조달할 수도 없으며, 택배가격에 대한 합리적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나서 정하는 것도 문제 소지가 크다. 여기다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비용 역시 전체 택배산업 배송기사만 6만 명에 달하는데 반해 예산은 1만명, 7억원에 그쳐 너무 작은 규모다. 특히 나머지 비용을 일선 대리점주들에게 부과할 경우 이들의 반발은 불가피 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추가 근로환경 개선 비용이 대리점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경우 일선 배송기사들의 건강보호 강화 대책은 정부의 전형적인 립 서비스로 전락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공정위까지 범 정부적으로 발표된 이번 방안이 택배현장의 과로의 노동환경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택배현장 관계자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마련을 위해 좀 더 세밀한 택배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어야 했는데, 서둘러 발표한 대책으로 정책 실현에 의문이 크다”며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다 면밀한 정부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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