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복합재난 시대에 맞는 통합 물류행정 필요

9.11 테러 당시 국내 산업은 내수와 수출입 할 것 없이 모두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이때 무역 업계와 물류 업계에서는 자체적으로 비상 대책을 만들어 대응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정부에서 비상체제를 가동해 지원에 나섰지만, 그때까지 경험한 적 없는 외부의 재난 앞에서 상당 기간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때 물류 업계 일각에서는 새로운 글로벌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범정부 차원의 조직과 대응 시나리오(매뉴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후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물류/공급망이 붕괴하면서 기존에 마련된 재난사고 대응 체계가 아닌 물류/공급망 관점의 새로운 재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독립된 재난관리 총괄조정기관 필요성 제기
현재 우리나라에는 재난 안전관리만을 집중적으로 전담하는 조직이 없고,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업무와 함께 재난 안전관리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난 안전관리 조직은 모든 재난 및 위기상황을 관리할 수 있도록 총체성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각각의 발생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고, 재난관리업무 역시 조직이 변경될 때마다 이관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다원화된 재난 안전관리조직 체계에서는 총괄조정기능 미흡 등으로 재난관리의 통합적 기능이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등 새로운 복합재난의 연이은 발생과 세계적인 파장으로 인해 미국의 국토안보부와 연방재난관리청처럼 모든 재난, 위기, 안전을 포괄하여 총괄 조정할 수 있는 강화된 재난 안전조직체계를 우리 현실에 맞게 신설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재난관리 총괄조정기관이 신설된다면 최소한 ‘부’ 단위 조직 이상의 위상을 갖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재난 안전기능을 통합적으로 묶을 수 있는 조직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강화된 중앙정부의 재난관리조직이 중앙집권적으로 현장의 모든 일까지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국가사건관리시스템(National Incident Management System, NIMS)과 국가대응체계(National Response Framework, NRF)에 따라 재난 현장에서의 주된 책임은 지방정부가 지되 중앙정부와 주정부는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재난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재난 대응 업무의 표준화와 통합화를 추진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중앙정부가 재난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초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는 역할이 미흡한 편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초동조치 및 통제를 시행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현장의 독자적인 판단과 대처를 어렵게 하고 중앙의 지시를 기다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지방정부의 독립성이 보장된 국가 체제의 상이성과 단순 비교로 보더라도 국토의 크기가 다르다는 점 등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관계 정립 모델을 무조건 미국의 사례를 따를 수만은 없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물류 산업 특성 고려한 중앙-지방정부 협력체계 만들어야
재난을 100%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재난에 대한 대비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난 대응의 초기조치가 중요하다. 그 역할을 재난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신속하게 일차적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초지방자치단체보다는 중앙정부에서 많은 권한을 갖고 재난을 관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장 상황이 불확실하고 급변할 경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초기 대응을 하는 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재난에 대한 예방과 복구를 할 수 있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기초지방자치단체에게 책임과 권한을 집중하여 현지의 모든 가용 가능한 재난 대응 자원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도록 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하게 함으로써 지휘체계의 명확화와 단순화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역 특성에 맞게 강화된 계획 수립 및 주민홍보, 인접 기초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계약 등을 통해 효율적이고 빠른 재난 대응을 함으로써 인명과 재산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체계가 요구된다. 물류 산업의 특성상 물류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와 해당 물류 시설이 위치한 지방자치단체 간의 상호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운 재난 안전대응조직을 신설할 경우 이런 현실과 관계를 고려한 매뉴얼과 프로세스 정립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물류’ 산업의 개념 재정립부터 출발
지진, 태풍, 테러, 기후변화, 전염병 등 물류 산업을 둘러싸고 전혀 새로운 종류의 복합재난이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물류정책과 조직이 재난 대응에 얼마나 유효할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적절한 대응을 위해 물류 부문에 대한 재난 대응 정책과 체계를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의 '물류'는 정책상 여타 산업군을 지원하는 산업지원 물류에서 생활물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생활물류 시대에서도 물류 자체는 국민의 생활을 ‘지원’한다는 지원물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재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원이 아닌 ‘리딩’ 성격의 물류 개념을 추가하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리딩물류의 개념은 비단 재난 사고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에 대처하는 방편으로도 유효하다. 대규모 재난사고의 빈발과 혁명에 가까운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공급사슬 변화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 물류/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인식의 전환,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과 구현체제의 진화가 불가피하다.

재난 대응은 모든 주체가 참여하는 ‘거버넌스’적 접근 필요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물류 정책은 정부 주도의 법과 계획에 의존하는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물류 정책 패러다임은 물류 부문의 다양한 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공공과 민간의 발전적인 균형과 조화를 요구한다. 민간기업의 비즈니스 연속성 관리를 공공부문 재난 대응 체계에 접목하는 움직임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민간부문이 새로운 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데 참여 주체로 들어와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를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한국교통연구원은 기본연구 보고서 ‘물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한 물류정책 거버넌스 발전 방안 연구’(2016.11)에서 ‘거버넌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거버넌스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와 관련되는 활동에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여 각각의 이해 수용, 갈등 조정, 자원 통제 등을 통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필요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이 가능하도록 구상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물류 정책 거버넌스는 물류 정책 시스템의 주요 참여 주체(중앙 및 지방정부, 시장(기업), 학계 및 연구계, 공공기관(공단/공사 등), 시민사회 등)가 물류 정책 수립과 시행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물류 정책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거버넌스 적 참여는 단순히 새로운 물류 정책 수립 과장에만 필요한게 아니라 재난 대응에 필요한 비상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사전 작업과 실행 단계에서도 필요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의 보고서는 상호작용하는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거버넌스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이유로 물류 정책 거버넌스는 지향하는 목표나 가치에 관련되는 이해관계자를 선택이나 배제 없이 포괄적으로 참여시켜야 하며, 이해관계자들은 해당 거버넌스에 쉽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물류 정책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는 자신이 속하는 이해집단의 의견을 정확하게 대표할 수 있어야 하고 거버넌스 상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개진된 의견에 대한 개방적인 의견 청취와 수렴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물류 정책 거버넌스의 집행조직은 중앙정부의 물류 주무 부처 또는 물류부서, 지방정부의 물류전담부서, 물류 정책의 조정·심의를 담당하는 위원회나 협의체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산업별 민간협회 단체와 관련 연구기관 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물류/글로벌 공급망의 재난 대응 비상 체계 구축에서도 이러한 물류 정책 거버넌스의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국가물류정책위원회 산하에 ‘물류재난대응분과’ 신설 제안
물류정책기본법은 국토교통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물류정책위원회’를 두어 국가 물류 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가물류정책위원회의 조직 구성과 운영은 정책 거버넌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원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되고, 이 밖에 관계부처의 공무원, 물류 부문 전문가 22인 이내로 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주무 부처-연관부처-민간으로 연결되어 협력하는 구조다. 위원의 구성을 상세히 살펴보면 기획재정부,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9개 중앙부처와 국가정보원, 관세청, 중소기업청 등 3개 중앙정부기관의 고위공무원(부처별 1인)으로 전체 12인의 위원을 위촉하게 된다. 이밖에 물류 관련 분야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10명 이내를 국토교통부 장관이 위촉하여 전체 위원회를 구성한다. 이밖에 물류 정책에 관한 중요사항을 조사하거나 연구해야 하는 경우에 5명 이내의 비상근 전문위원을 둘 수 있다.

국가물류정책위원회는 물류정책분과위원회, 물류시설분과위원회, 국제물류분과위원회의 3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있다. 물류정책분과위원회는 중장기 물류 정책의 수립과 조정, 물류 산업이나 물류 기업의 육성과 지원, 물류 인력 양성 등에 관한 사항을 다룬다. 물류시설분과위원회는 물류 공동화, 표준화, 정보화 및 자동화, 물류 시설, 장비 및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사항을 다룬다. 국제물류분과위원회는 국제물류협력체계 구축, 국내 물류 기업의 해외 진출, 해외 물류 기업의 유치, 환적화물 유지, 해외 물류 시설 투자 등 국제물류의 촉진과 지원에 관한 사항을 맡는다.

재난 대응 관련 분과위원회가 신설된다면 다양한 종류의 재해·재난 발생 예방, 대책, 실행, 교육 등을 다루게 한다. 앞으로 재난 대응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는 전제하에 여기에 재난 대응 관련 분과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을 검토해 볼 만하다. 국가 물류 정책위원회 말고도 국가 물류 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하는 조직으로 시·도지사 소속의 지역물류정책위원회가 있다. 이 역시 우리나라 물류 정책 거버넌스의 대표적인 활용사례에 속한다. 이 지역물류정책위원회 산하에도 재난 관련 대응 조직을 편재해 정책의 연계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렇게 국가물류정책위원회와 지역물류정책위원회에서 수립된 물류/글로벌 공급망 재난 대응 체계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재난 발생 시 가동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편입되도록 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류 재난 전담하는 단일부처 신설 검토할 때
국회입법조사처의 현안 분석 자료 ‘국가 재난대응 지휘체계의 한계점과 개선 방안’(김하중 국회입법조사처장, 2019.12)는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 운영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대책본부장을 국무총리로 상시화하고 하고 수습본부장은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으로 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여 중앙대책본부가 구성되어야 할 경우, 각 부처를 통합 조정하고 지휘하기 위해서는 국무총리의 권한 수준이 적절하므로 국무총리가 중앙대책본부장이 되어 각 부처의 역할을 총괄·조정하여 사고수습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이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은 중앙대책본부의 간사 역할을 맡아 국무총리를 뒷받침하는 것이 재난 대응에 좀 더 효과적이란 주장이다.

이 대안에 근거하면 물류/글로벌 공급망에 치명적인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수습본부장을 국내 교통물류 중심 재난의 경우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해외 및 항만물류 재난의 경우는 해양수산 부장관이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을 맡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류/글로벌 공급망 관련 대형 재난에 대응하는 정책 수립과 조직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거버넌스 적인 참여와 협력이 절대적이다. 이는 물류 정책의 속성과도 연관 있다. 물류 정책은 여러 부처에서 나누어 담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여러 부처와 기관, 단체, 전문가들의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 정책의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급속하게 물류 환경이 바뀌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기존 물류 주무 부처만의 주도로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기존 조직의 개편과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대형 복합재난이 연이어 발생하고, 국내 물류망과 글로벌 공급망이 수시로 붕괴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설득력이 있다. 또한, 육상, 항만·해운, 항공 등의 정책기능은 장기적으로 단일부처에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는 만큼, 같은 맥락에서 물류 재난조직 역시 단일화된 부처에서 맡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현재 국가물류정책위원회와 지역물류정책위원회를 두고 있으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물류 정책 협력 채널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형 재난 발생 시 신속한 물류 인프라 복구와 물류망 재가동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체계를 개편,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 간 협력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같이 현존하는 재난 상황과 미래에 발생할 복합재난에 사전대비하기 위해서는 물류 주무 부처(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의 물류부서와 유관부처의 물류 관련 부서, 그리고 외교부와 기상청 등으로 구성된 정례 협의체를 구성해 지진 등 국내 재난 및 해외 재난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정책대안을 수립·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 등 여러 부처에 분리된 물류 관련 부서를 새로 한 개의 조직으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 대비한 조직을 신설하는 것은 물류 산업의 중요성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필요해 보인다. 다만 조직 형태에 대해서는 앞으로 관련 정부 기관과 연구기관, 민간협회 단체 등이 참여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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