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공학박사, 기술사) 조교수

2008년 1월 이천 냉동 물류창고 화재로 인해 40명이, 같은 해 12월 다른 물류창고 화재사고로 8명이, 올해 2020년 4월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화재로 인해 38명이 사망하였다. 또한 7월에는 용인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5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지난 9월 5일에도 부산의 한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창고시설 화재는 358건, 인명피해는 67명 (사망 38명, 부상 29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물류창고 화재 사고들은 내부 리모델링 작업, 운영 중 유지보수 작업 또는 신축공사 작업 단계 등으로 사고 발생 단계는 서로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자재 측면에서 가연성 단열재를 사용한 샌드위치 패널 또는 내부 단열재 충전을 위한 우레탄폼이 사용되었다는 점과 작업 측면에서 물류창고 내부에서 용접작업이 있었다는 점이 공통된 사항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의 물류창고 시설의 공통된 특징을 살펴보면, 1)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의 기후와 냉장/냉동보관이 요구될 수 있는 물류창고 특성상 외벽과 내부칸막이에 단열성능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샌드위치 패널을 적용하고 있으며, 2) 샌드위치 패널로 처리가 되지 않은 내부 단열구간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가장 사용하기 용이한 우레탄폼을 충전하는 작업을 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3) 신축공사의 경우, 공사 일정상 설비배관이나 엘리베이터 설치 등 용접작업들이 내부 마감공사와 병행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리모델링이나 유지보수 작업 중에도 용접작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가연성 단열재와 용접작업 외에 유지관리 단계에서 송풍팬, 냉각기, 배관, 동파방지 열선 등의 노후화, 합선, 과열 등에 의한 화재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물류창고 화재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인 대책을 생각한다면, 가연성 단열재 적용과 시공 및 보수작업시 용접작업이 핵심적인 사고 원인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류창고의 화재방지 대책을 논하기 전에 큰 틀에서 보면, 결과물을 보고 소비자가 구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선생산 후판매의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은 선주문 후생산의 생산체계를 갖고 있다. 이로 인해 건설공사의 기획 및 설계단계에서는 최종 목적물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운 동시에, 설계가 확정된 시공 및 유지관리 단계에서는 뒤늦게 발견한 문제점을 변경하기는 매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유사 프로젝트의 시공 및 유지관리 단계에서 발견한 문제점이나 위험요인들을 새로운 프로젝트의 기획 및 설계단계에서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는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개념은 물류창고 시설의 화재사고 방지 대책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는 건설업의 안전관리에서 주로 인용되는 안전관리의 위계(Hierarchy of Controls,HOCs)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안전관리의 위계란 잠재적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기본적인 틀이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 (National Institute for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NIOSH)에서는 위험요인의 관리에 있어 아래와 같은 우선순위를 정의하고 있다. 1) 위험요인을 물리적으로 제거 (Elimination), 2) 위험요인을 덜 위험한 수준으로 대체 (Substitution), 3) 접근금지 구역과 같이 위험요인과 근로자를 이격 (Engineering Controls), 4) 작업방식이나 환경을 덜 위험하게 개선 (Administrative Controls), 5) 개인보호구 착용을 통한 근로자 보호 (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즉, 동일한 위험요인에 있어 가능한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을 안전관리의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며, 작업방식 개선이나 근로자의 보호구 착용은 상위 안전조치들을 다 검토한 다음에 가장 마지막 단계에 현장에서 실시해야하는 안전관리 활동이라는 뜻이다.

건설업의 특성상 위험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거나 대체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시공단계가 아니라 설계단계에서부터 선제적인 안전관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획, 설계단계의 주요 수행 주체인 발주자와 설계자가 이를 주도해야만 한다. 이러한 선제적 안전관리의 개념을 건설업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례는 영국의 CDM(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 제도라고 할 수 있다. CDM 제도는 발주자의 주도와 설계자의 협력하에 설계와 착공 전 단계에서 시공 및 유지관리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인을 구체화하고,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소방과 관련된 세부지침을 보면, 목재나 샌드위치 패널을 적용한 건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화재위험을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해 기획 및 설계단계에서부터 고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류창고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재사고를 선제적으로 방지하고,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데로 가연성 단열재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현장에서의 용접작업을 지양할 수 있는 방안을 설계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위에서 언급한 HOCs나 CDM의 개념으로 우선 순위별로 적용해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위험요인의 물리적 제거 측면에서 샌드위치패널 제작 시 그라스울 또는 락울과 같은 불연 단열재 적용을 의무화해야한다. 단열성능 저하와 단가 상승 등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면 최소한 준불연 단열재까지는 의무화해야한다.

둘째, 위험요인의 대체 측면에서 건물의 구조체 및 마감재와 설비작업에 있어 선조립 공법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야 한다. 현장작업 중심의 시공 또는 보강공사를 진행한다면, 앞서 언급한 사고 사례와 같이 현장에서의 우레탄폼 충전과 용접작업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설계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사전검토를 통해 가능한 현장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선조립 모듈화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구조체+단열재, 마감재+단열재, 설비+공조배관의 일체화 등 복합공정의 일체화를 통해 현장 작업을 최소화해야한다. 그리고 선조립 모듈간의 접합은 커플러, 볼팅과 같은 기계적 이음을 통해 현장에서의 용접 작업을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셋째, 위험요인을 근로자와 이격시키는 방안으로는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득이한 화기작업이나 가연성 자재 사용에 있어서는 작업허가제(PTW:Permit To Work)를 통해 작업 전 안전대책을 확인해야 한다.

넷째, 작업환경 개선 측면에서 화기 작업 시에는 철저한 가설 환기, 타 작업 중단 등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다섯째, 근로자 안전관리 측면에서 화재감시자, 소화기 배치 등 시공이나 보수작업 중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위에 언급한 대책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책이 물류창고의 화재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선제적 안전관리 방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시공이나 유지관리 단계가 아니라 기획 및 설계단계에서부터 고려되어야 하는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중 첫 번째 대책은 현재 제도적으로 개선대책이 수립되고 있으며, 샌드위치패널 제조업과 연계된 법적 규제의 영역이므로 현실적으로 개별 물류창고 프로젝트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두 번째 대책은 물류창고의 기획 및 설계단계에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항목이며, 현실적으로 개별 프로젝트에서 발주자와 설계자가 고려해야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화재사고 방지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류창고 건설이나 보수보강 등에 있어 선조립 공법을 적용한다면, 기존의 현장중심의 재래식 공법에 비해 초기 비용은 증가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건설업 사고사망자 1인 당 20억 전후의 손실(근로손실, 영업손실, 보상손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한번 발생 시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이 발생하는 화재사고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설계단계에서부터 근본적인 안전관리 대책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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