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대응하고 신사업에 투자…‘IMF, 금융위기 넘기면서 학습효과’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전 세계적인 저성장과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아진 국내 기업에게 코로나바이러스는 더 큰 위기로 다가왔다. 전 세계 실물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동시에 불확실성을 확대해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위기감을 느낀 많은 기업이 현재 상황을 중·장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유휴 자산을 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유동성 확보를 통해 ‘선택과 집중’에 나설 계획이다.

어려운 대내·외적 환경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물류업계도 적극적으로 자산 매각에 나서는 등 경제위기와 이후 펼쳐질 ‘뉴노멀’ 시대 대응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자산 매각해 재투자에 나서고 있는 ‘택배사들’
최근 A 택배사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택배 터미널 매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매각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매각이 이뤄질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택배 터미널 매각과 관련해 A사 관계자는 “늘어나는 택배 물량을 감당하기에는 기존 부지가 매우 협소하고 최신 설비를 설치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며 “내부적으로 다양한 검토 끝에 매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매각금액의 향후 활용에 대해서는 “택배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재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진은 기업의 역량을 택배·물류산업에 집중해 2023년 택배 시장점유율 20% 이상과 글로벌 SCM 역량 확보한다는 목표를 달성을 위해 지난해부터 자산을 매각해왔다. 지난해 동대구, 서대구 버스터미널을 400억원에 매각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렌터카 사업을 롯데렌탈에 매각하는 등 비핵심자산을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공시를 통해 약 3,000억원 규모의 부산 범일동 부지를 대우건설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매각 사유로는 재무구조 개선과 핵심사업 투자 재원 확보가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매각으로 확보된 자금은 핵심사업에 투자된다. 한진은 지난 6월, 대전시와 협약을 맺고 앞으로 3년간 2850억원을 투자해 메가 허브 물류센터를 짓기로 했다. 이외에도 전국 각 거점 지역에 택배 터미널 신·증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자동화 설비 도입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부산 범일동 부지가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매각되면서 한진의 택배·물류산업 투자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물동량을 흡수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택배사들의 투자는 계속될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이다 보니 유휴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진은 자산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을 핵심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대전에 지어질 메가 허브 물류센터 조감도.

오프라인 줄이고 온라인 늘리는 ‘유통업계’
내수부진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소비 변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유통업계도 적극적인 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는 지난 3월 재무건전성 및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스타필드 부지로 알려진 서울 마곡동 택지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매각으로 이마트는 8천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마트는 마곡동 부지 매각 외에도 지난해부터 13개 점포 토지와 건물을 매각한 뒤 점포 건물을 재임차해 운영하는 등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 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로 이마트의 오프라인 매장들이 힘들었지만 선방한 곳은 쓱닷컴”이라며 “특히 올해 초 오픈한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003호’ 등을 활용한 신선식품 배송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마트가 매각을 통해 확보된 자금으로 온라인 물류센터를 확충, 온라인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손실을 기록한 홈플러스도 올해 3개 내외의 점포의 자산 유동화를 진행할 계획이다. 성장 여력이 낮은 점포라면 과감히 매각하거나 매각 후 임차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 및 신규 사업에 재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유통 공룡 롯데쇼핑도 지난해 부동산투자회사인 롯데리츠에 백화점 4곳과 마트 4곳, 아울렛 2곳을 매각한다. 롯데쇼핑은 롯데리츠와 계약을 맺고 임차료를 지불하며 매장 운영을 계속할 계획이다.

대한항공, HMM도 유동성 확보 나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물류업계 모두가 힘들지만 유독 힘든 산업을 꼽으라고 하면 항공업과 해운업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항공업의 경우 전 세계적인 타격으로 인해 항공사들이 파산을 신청하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각국 정부는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 항공산업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함에 따라 정부 지원 외에도 추가적인 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7일, 이사회를 열고 알짜 사업으로 분류되는 기내식과 기내면세품 사업 매각을 위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배타적 협상권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등을 매각하고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계획대로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적 선사 HMM은 지난달 스페인 알헤시라스 컨테이너터미널(TTIA) 지분을 절반을 589억원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HMM은 이번 매각과 관련해서 “유동성 확보와 전략적 사업파트너와 조인트벤처 운영에 따른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 IMF, 금융위기 당시 현금을 충분히 마련해 두었던 기업은 위기를 잘 버텼고 경제가 회복하던 시기에는 적극적인 투자 확대를 통해 시장 선점, 점유율 확대 등 큰 이익을 누렸다”며 앞선 위기를 지나오면서 학습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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