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32

지난호 기고문에서 ‘표준궤’를 살펴보았는데 표준궤인 1,435mm 보다 폭이 좁은 것이 ‘협궤’다. 이번호는 협궤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협궤. 단기간에 저렴하게 설치할 수 있다
철도 궤간이 좁을수록 단기간에 설치할 수 있다. 따라서 좁을수록 철로 운영비용이 표준궤나 광궤 대비 저렴하다. 철도가 깔리는 19세기 초중반에 협궤는 저렴하다는 장점을 토대로 여러 지역에서 빠르게 발달하였다.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프랑스, 독일, 호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597mm~1,372mm의 협궤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철로 운영 주체들이 지역마다 다르다 보니 철로의 궤간이 달라 지역을 서로 연결하지도 못했다. 저렴한 협궤가 빠르게 퍼져 나갔지만 표준궤나 광궤보다는 운송량이 적고 속도를 낼 수가 없었으며, 장거리를 체계적으로 연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세기에는 협궤가 많이 설치되었다.

협궤는 다음의 경우에 설치하였다.
-땅값이 비싼 도심의 궤도 열차
-산악 지형이나 노반이 불안정한 곳
-육지가 적은 섬나라
-단기간 사용하는 단거리 구간
-식민지에서 강대국들이 식량과 자원을 수탈하려고 할 때

미니 궤
1m가 되지 않는 협궤를 필자는 ‘미니 궤’라고 정했다. 미니 궤는 10여 가지가 넘는데, 597, 600, 603, 610, 750, 760, 762, 800, 891, 900, 917mm 등이 있다. 예전에 보스니아, 이탈리아, 스웨덴의 일부 지역에 깔려있었으며 현재는 놀이기구나 단거리 관광 용도로 설치되었다.

물론 미니 궤는 장거리 철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1930년 수원~여주 간 운행하는 수려선과 1937년 수원~인천을 잇는 수인선에 762mm의 미니 궤가 있었고, 꼬마열차가 운행되었으나 1970년대에 페선되었다.

1m 이상의 협궤는 크게 3가지가 있는데 1,000mm의 ‘미터 궤’, 1,067mm의 ‘케이프(일본) 궤’, 1,372mm의 ‘스코틀랜드 궤’가 있다.

1,000mm의 미터 궤
유럽에서 미터법을 적용하면서 1,000mm가 도량형 통일의 사례가 되었다. 그래서 유럽 강대국들은 자국에는 표준궤를 설치하였지만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 있는 식민지 국가들에게는 미터 궤를 설치했다. 아래 국가들은 두세 종류의 궤를 가진 곳도 있지만, 미터 궤가 주류를 이룬다.

-동남아시아 :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 세네갈, 튀니지, 카메룬, 코트디부아르, 우간다, 케냐
-남미 : 브라질, 볼리비아

1,067mm의 케이프 궤
1862년 1,067mm의 협궤가 노르웨이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노르웨이는 산이 많은데 인구가 적어 비용 절감을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노르웨이는 표준궤로 바꾸었다. 그리고 1873년 케이프 식민지에 1,067mm가 깔렸다. 케이프 식민지는 영국이 지배하였고,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준한다. 해안가와 산지를 연결할 때 표준궤는 폭이 넓어 불편하였다. 이에 1.067mm의 협궤를 깔았으며, 아프리카 남중부의 국가들이 주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1,067mm궤를 케이프 궤라고 부른다.

1872년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구간에도 철로가 개설되었는데 1,067mm를 깔았다. 이후 일본 전역에 1,067mm가 깔렸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자가용보다 철도를 애용하는 국가이기에 협궤가 가장 활발하게 운용되는 대표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신칸센 고속철도는 표준궤를 도입하였다. 폭이 넓을수록 철도 운항이 안정되면서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섬나라들, 일본 궤를 받아들이다
1,067mm의 케이프 궤는 ‘일본 궤’이면서 ‘섬나라 궤’다.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뉴질랜드와 같은 섬나라에도 1,067mm가 깔렸다. 바다로 둘러싸인 호주는 현재 표준궤로 전환하였지만 예전에는 케이프 궤가 깔렸다. 훗카이도 섬 바로 위쪽에 위치한 러시아의 사할린 섬도 일본 궤가 깔려있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사할린 남부를 차지하고 1,067mm를 깔았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소련이 사할린을 차지했지만 협궤는 지금까지 일본식을 사용한다. 러시아는 2004년부터 사할린의 일본 궤를 러시아 궤로 교체하는 중이며 조만간 끝마칠 예정이다.

만주, 광궤->협궤->표준궤의 우여곡절을 겪다
19세기 후반 러시아는 1,524mm의 러시아식 광궤를 만주에 건설하고 있었다. 바이칼호수~만주 남부~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기 위해서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만주에 러시아식 광궤를 일본식 협궤로 변경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1907년 만주에 표준궤를 깔았다. 당시 중국과 한반도에 표준궤가 채택되었기 때문에 동일한 궤로 까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한반도, 일본식 협궤가 궤도 전차에 적용되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우리나라 도심의 노면 궤도 전차에 일본 궤가 적용되었다. 1899년 시작된 서울 전차, 1916년 부산 전차, 1926년 함평 전차, 1927년 동대문~광장동 구간의 경성 전차에 일본 궤가 깔렸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와 궤도 전차용 철로가 없어지면서 일본 궤는 한반도의 도심에서 사라진다.

1.372mm, 스코틀랜드 궤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에서 1,372mm가 깔렸기에 ‘스코틀랜드 궤’라고 부른다. 1903년 일본 도쿄의 궤도 전차가 1,372mm를 받아들여 지금도 도쿄와 그 인근에 약 150km 정도 구간에 깔려있다. 이 구간을 제외하고는 1,372mm의 스코틀랜드 궤를 설치한 곳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1,435mm의 표준궤와 차이가 아주 작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궤를 설치할 바에는 차라리 표준궤를 설치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1846년 영국에서 1,435mm가 표준궤로 지정되면서 스코틀랜드도 표준궤를 깔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래 되지 않아 스코틀랜드에서도 스코틀랜드 궤는 사라졌다.

협궤,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든다.

스코틀랜드, 만주, 궤도열차, 수려선, 수인선, 그리고 사할린처럼 협궤는 추억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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