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31

 

‘궤간(철로 궤도의 폭)’은 철로의 상부 안쪽의 폭을 잰 거리다. 만약 모든 국가가 하나의 궤간을 설치하였다면 세상은 보다 더 많은 철도 교류를 했겠지만 각 지역이나 나라, 운영주체마다 서로 다른 규격의 궤간을 설치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표준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8개의 궤간
전 세계에는 8개 규격의 궤간이 있다.
1,000mm 미터 궤, 1,067mm 케이프(일본) 궤, 1,372mm 스코틀랜드 궤, 1,435mm 표준 궤
1,520mm 러시아 궤, 1,600mm 아일랜드 궤, 1,668mm 이베리아(스페인) 궤 1,676mm 인도 궤

폭이 좁게는 1m이고 가장 넓은 것은 1.67m다. 과거에는 2m가 넘는 궤간도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다. 중간의 1,435mm가 ‘표준궤’로 지정되어 있다. 표준궤보다 좁은 궤를 ‘협궤’라고 하는데 세 가지 종류가 있고, 표준궤보다 넓은 궤를 ‘광궤’라고 하는데. 네 가지 종류가 있다.

1m가 되지 않는 소폭의 궤도 약 열한 가지 정도가 있는데 통상적으로 단거리 운송용이거나 소규모 철도 운영업자에 의하여 운영되므로 일반적인 궤간의 범주에 넣는 것은 무리다.

이에 필자는 1m가 안 되는 궤간은 ‘미니 궤’로 간주하고, 이번 호에서는 일반적인 철도의 궤간의 범주에 넣지 않았다.

1,435mm, 영국의 표준이 되다
18세기 초중반 영국에 철도가 깔리기 시작하였고, 각 지역마다 여러 궤간이 놓였다. 영국 북부에는 1,372mm, 영국 중서부에는 1,435mm. 영국 남부에는 무려 2,134mm나 되는 궤간의 철도가 깔렸다.

이후 영국에서는 각 지방을 연결하기 위해 같은 규격의 궤로 연결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궤간은 넓으면 넓을수록 안정성이 확보되기 때문에 2,134mm를 표준으로 정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이미 당시에는 1,435mm가 주류였다. 그리고 1846년 영국의 표준으로 1,435mm가 지정되었다. 1,435mm가 점차적으로 영국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다른 궤들도 표준궤로 변해갔다.

1,435mm의 궤를 ‘표준궤’ 또는 ‘스티븐슨 궤’라고 부르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로마 시대에 두 마리의 말이 끌던 마차의 폭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에서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스티븐슨, 그가 사용하던 지팡이의 길이에 맞춰서 인부들에게 철로를 깔게 했다는 설이다.

표준궤, 세계로 퍼져나가다
미국도 영국처럼 지역마다 다양한 규격의 궤가 깔렸다. 북부에는 1,435mm, 남부에는 1,524mm가 주로 깔렸다. 유럽·미국 철도기술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는 미국 남부 광궤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함에 따라 북부의 1,435mm 규격이 대세가 되었고, 미국에서도 표준 규격이 된다.

영국, 미국에 이어 독일, 프랑스, 캐나다, 호주, 멕시코, 중국, 한반도에도 표준궤가 놓였다. 표준궤는 전 세계 60% 이상의 나라에 깔렸다. 이로써 표준궤는 표준 규격의 궤간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긴 궤간이 되었다.

 △궤간에 따라 전 세계 철도 궤간을 나타낸 지도. 하늘색이 표준궤다(출처 : 위키피디아 Canuckguy/commons.wikimedia.org/wiki/File:Rail_gauge_world.svg?uselang=ko#file(CC BY-SA 3.0))

유라시아 : 1435~1520~1435
한반도, 중국 등 동북아시아와 런던 등 유럽은 표준궤를 채택했다. 그런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벨라루스까지 이어지는 노선에는 표준궤가 깔리지 않았다. 표준궤보다 8.5cm가 더 넓은 1,520mm가 깔렸는데,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17개 국가가 해당된다.

바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핀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몽골이다.

그리고 폴란드 남부의 ‘카토비체~리보프’ 지역을 잇는 400km 구간과 북한의 북동부인 나진~핫산의 50km 구간에도 러시아 궤가 깔려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인 유럽연합과 중국, 한반도에는 1,435mm의 표준궤가 깔렸는데. 중앙에 위치한 드넓은 유라시아의 중앙에 하필이면 1,520mm의 광궤가 깔렸다. 즉, 유라시아 대륙은 1435~1520~1435로 서로 연결되면서도 분리되어 있다. 1,435mm의 표준궤는 서로 양쪽으로 분리되었지만 1,520mm는 중앙에 모여 있다. 따라서 1,520mm의 상호 연결접착력은 크고 운송 파급력도 크다. 부산~시베리아~모스크바~베를린~런던이 만약 하나의 철로 궤였다면 부산에서 런던까지 천천히 가도 15일이면 갈 수 있는데 말이다.

동남아시아 : 1435~1000
베트남은 국경선의 남북 길이가 1,600km에 달할 정도로 길쭉하다. 중국과 베트남이 같은 궤간으로 연결되었다면 아시아 철도 교류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중국은 표준궤가 깔렸고, 베트남은 표준궤가 설치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1,000mm의 ‘미터 궤’다.

프랑스는 자국 본토에는 표준궤를 설치했지만, 아시아 식민지에는 간단히 1,000mm의 미터 궤를 깔았다. 미터 궤는 폭이 좁다보니 속도는 안 나지만,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등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내륙 지역에는 미터 궤가 깔렸다.

2019년 2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할 때 그는 전용 열차를 사용하였다. 북한을 떠나 중국을 거친 김 위원장은 중국-베트남 국경역에 내려서 승용차로 갈아탔다. 북한과 중국은 표준궤지만 베트남은 미터 궤라서 국경에서 갈아탄 것이다. 만약 중국과 동일하게 동남아시아 본토에 표준궤가 깔렸다면, ‘한반도~중국~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을 연결하는 아시아 철도물류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1,435mm, 동남아시아는 1,000mm로 서로 연결되면서 분리되어 있다.

서남아시아 : 1435~1676
유럽연합-터키-이란 구간에는 표준궤가 깔렸다. 그런데 파키스탄~인도 구간에는 1,676mm의 인도식 광궤가 주로 깔렸다. 영국은 본국에 표준궤를 설치했지만 정작 식민지였던 인도 지역에는 폭이 가장 넓은 궤를 깔았다.

인도는 땅이 넓은데다 대량의 인도 면화와 차 등을 신속하게 운송하기 위해서는 폭이 넓을수록 실용적이었다. 즉, 이란의 1,435mm와 파키스탄의 1,676mm가 서로 연결되면서 분리된다.
만약 파키스탄과 인도마저 표준궤였다면 ‘유럽연합~터키~이란~파키스탄~인도‘는 표준궤 하나로 유럽과 서남아시아를 횡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미 : 1676~1000, 표준궤가 밀리다
남미의 정중앙에는 세계 5위의 영토를 보유한 브라질이 위치해 있다. 브라질 남쪽에는 우루과이와 세계 8위 영토국인 아르헨티나가 있다.

브라질은 1854년 철로를 까는 초창기에 1,600mm의 ‘아일랜드 궤’를 깔기도 하였고 일부 구간에서는 1,435mm의 표준궤도 깔렸지만, 대부분의 철로는 1,000mm의 미터 궤를 놓았다. 약 30,000km의 철로 중 무려 24,000km가 1,000mm의 미터 궤다.

아르헨티나도 인도 궤, 표준궤, 미터 궤를 모두 가졌지만 인도 궤가 주류다. 남미를 대표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표준궤로 전 지역이 단일화가 되었다면 남미의 교통망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유럽연합 : 1,668~1435~1520
스페인의 철로는 약 16,050km가 깔려있는데, 여러 개의 공기업들과 사기업들이 철로를 운영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스페인은 표준궤와 스페인 광궤, 미터 협궤의 총 3개의 궤를 모두 가지고 있다. 11,829km나 깔려 있는 1,668mm의 이베리아 광궤가 있고, 일부 구간에 표준 궤 1.435mm와 미터 궤 1,000mm가 있다.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나라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기에 1,668mm를 ‘이베리아 궤’ 또는 ‘스페인 궤’라고 부를 수 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표준궤다. 하지만 스페인은 프랑스와 동일하게 표준궤로 연결되는 것을 꺼려하여 이베리아 광궤를 깔았고 러시아는 독일과 동일한 표준궤로 연결되는 것을 꺼려하여 러시아 광궤를 깔았다는 의견도 많다. 즉, 유럽은 이렇게 스페인 궤~표준궤~러시아 궤로 서로 연결되면서도 분리되어 있다.

일본과 스페인, 고속철도에 표준궤를 적용하다
1,067mm의 협궤가 깔린 일본이지만 고속철도인 신칸센에는 1,435mm의 표준궤를 적용하였다. 아무래도 협궤보다는 표준궤가 대량으로 신속한 운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광궤가 설치된 스페인도 고속철도에는 표준궤를 적용하였다.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과 신속하게 연결하기 위해선 동일한 규격인 표준궤로 연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단절된 표준궤
1872년 일본은 협궤를 받아들였고, 1876년 중국은 표준궤를 받아들였다. 한반도는 어떠했을까?

1896년 미국은 경인선 부설권을 땄지만 자금난으로 완공시키지 못했다. 이에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잡은 일본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을 각각 1899년, 1905년, 1909년에 완공하였다. 일본은 한반도에 1,067mm의 일본식 협궤가 아닌 1,435mm의 표준궤를 깔았다. 중국 만주에 표준궤가 이미 깔려 있었기 때문에 ‘부산~서울~평양~신의주~만주’ 구간을 표준궤로 연결함으로써 대륙으로 이동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물론 당시 러시아는 1,520mm의 러시아식 광궤를 만주와 한반도에 설치하여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만약 친러 정책을 펼쳤던 고종이나 친러파에 속했던 민비가 계속해서 집권하고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만주와 한반도는 러시아와 동일한 광궤로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반도는 중국의 표준궤로 동일하게 연결되어 있고, 러시아의 광궤와 맞닿는다. 하지만 한반도는 휴전선으로 인하여 같은 표준궤라도 단절되어 있다.

철도는 길이가 5,000km 정도는 되어야 상업적인 운송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유럽연합, 유라시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남미가 모두 하나의 궤간으로 연결되었다면 세상은 보다 덜 분리된 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표준궤, 세상을 연결하면서 분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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