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별로 살펴보는 관세전쟁의 위협

관세전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물류기업 관계자 중 일부는 아직 우리나라가 미·중, 미·EU처럼 특정 국가와 심각한 수준의 무역갈등을 빚고 있지 않다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주변 국가들도 영향을 받고, 그 가운데 피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불과 얼마 전까지 중국과 사드(THAAD)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당시 중국은 관세보복 카드를 꺼내진 않았지만 관광을 불허하는 등의 방식으로 우리나라를 압박했다. 물류업계 역시 통관 지연 등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봤다.

무역갈등이 증폭되어 관세전쟁을 일으켰을 때 물류기업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관세 인상 앞두고 ‘물량 밀어내기’ 피해 극심
미·중 관세전쟁이 심화되자 해당 국가에 국제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기업 A사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다음달에 관세가 25%나 오른다는 소식을 접한 화주기업들이 더 빨리 보내줄 수 없겠냐고 요청한 것. A사는 화주기업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지만, 당장 물건을 실을 화물선을 구할 수 없어 한숨만 쉬었다.

관세보복 대상 품목을 취급하는 물류기업들이 겪는 가장 흔한 사례다. 화주기업은 임의로 수출·수입 시기를 늦출 수 없고, 인상된 관세도 대부분 손해로 받아들여야 한다. 때문에 관세가 오르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물량을 보내는 편이 금전적인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더군다나 10월부터 전 세계 유통가는 블랙프라이데이, 광군절과 같은 이벤트에 연말 성수기까지 겹치기 때문에 빡빡한 선적 스케줄에서 적재 공간을 추가로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10월 30일까지 해상운임(SCFI, BDI, WS 등)은 성수기 못지않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8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보복 발표가 있을 때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적재 공간이 줄어들자 국내 물류기업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고 있다. 중국에서 출발해 미국으로 도착하는 화물 중 상당수는 부산항에 입항해 국내 화물을 선적하는데, 남는 공간이 없어 배송이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극심한 해운불황 탓에 선사들은 선복 공급량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갑작스럽게 물량이 증가해도 커버할 선복이 없다.

또한 중국 화주들이 적재공간을 구하기 위해 높은 운임을 기꺼이 지출하고 있고, 선사들도 남는 공간 대부분을 중국·미국 물량 위주로 선적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물류기업들은 선사에 중국만큼 많은 운임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선적 스케줄을 정하면서 화주기업의 물류비 절감 요구에 최소한의 운임만 설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로 변경·그레이 통관 요구하기
통관과 관세부과를 회피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운송경로를 변경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국과 B국이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직접 운송하는 것보다 C국으로 우회해서 운송하면 통관 규제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중국의 사드 보복 당시에도 통관에 어려움을 겪은 물류기업들은 베트남 등 인근 국가로 우회하는 경로를 이용해 운송하기도 했다. 우회하는 국가 내 물류센터에 일정기간 보관해두었다가 운송하는 등 우회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화주기업들도 통관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국가에 직접 운송하는 대신 경로를 우회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흔한 일”이라며 “상황이 장기화되면 아예 인근 국가로 생산공장을 옮기거나 협력사를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물류기업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이 될 수 있다. 경로 변경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선 이미 선계약한 운송 스케줄이 다 틀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화주기업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어서 새로 운송 스케줄을 잡고, 틀어진 경로에는 급하게 영업을 해서 물량을 채워 넣기도 한다. 덕분에 애초에 받으려는 운임은 수익성이 저하되고, 급하게 영업한 물량은 제대로 운임을 받지도 못한다. 누구는 어쨌든 매출은 오르니 그나마 나은 것 아니냐고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회 경로는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피해로 이어진다. 보통 배송이 급한 화물은 비싼 운임을 감수하고 항공화물 컨테이너에 실어 보낸다. 그런데 최근 중국 화주기업들은 관세보복 영향에 따른 선복 부족으로 항공화물 물동량을 늘리고 있다. 문제는 중국 화물기의 적재 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부는 인천공항에서 환적해 미국으로 보내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 여파로 국내 물류기업은 항공운송에서도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했으며, 한때 항공요율이 kg당 2,000원 이상 올라가기도 했다.

엄연한 편법이고 위험부담도 있지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레이(Grey) 통관을 요구하는 화주기업들도 적지 않다. 규모가 영세한 물류기업들은 화주의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레이 통관을 강행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관세전쟁이 심화되면 어떤 식으로든 우회경로가 성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운임 인상은 모르는 척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고생 끝에 화물운송을 마쳤더라도 속상한 마음을 누를 수 없다. 운임을 제대로 올려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중 관세전쟁의 애로사항을 묻자 많은 물류기업들은 화주기업들이 고통을 분담하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항변했다. 물류기업들이 어렵게 화물운송을 끝마쳤지만, 상당수 화주기업들은 추가로 지출한 운임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해운운임은 트럼프와 중국 정부가 관세보복을 내비칠 때마다 밀려드는 물량에 출렁거리는 상황이고, 인근 국가로 경로를 변경하는 것도 현지 협력사가 없다면 상당한 비용이 추가된다. 물론 협력사가 있더라도 비용 인상은 피할 수 없다. 비용으로 잡히지 않는 직원들의 피로도 빼놓을 수 없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미·중 관세전쟁의 여파는 화주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류기업들도 관세전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전에 계약한 운임만 받을 것을 강요하고,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물류기업에 물량을 줄 수 밖에 없다는 말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심지어 이런 변수에 대처하는 것이 물류기업의 역량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자신들도 이름난 대기업들을 손가락질하고 말로만 상생한다고 외칠 때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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