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 13

“어느덧 100년을 달려온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이제 육상 교통의 중심을 넘어 유라시아 공동체 건설의 상징이자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내가 자란 한반도 남쪽 끝 부산까지 다다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1일 모스크바,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하원에서의 연설문 일부분이다. 북이 개방되어 남북철로가 연결된다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부산까지 다다를 수 있을까?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유라시아의 간선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way)는 시베리아를 지나가는 철도다. 가장 좁은 의미로는 ‘바이칼 호수에서부터 우랄 산맥까지’ 약 3,500Km의 시베리아 지역을 지나가는 철도다. 동쪽으로는 극동 연해주, 서쪽으로는 모스크바, 남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철로가 중앙의 시베리아에서 만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모스크바’에 이르는 약 9,300km를 통과하는 러시아 횡단철도로서 중간에 약 900여개의 역을 지나간다.

모스크바를 지나 벨라루스-폴란드의 국경이나 우크라이나-헝가리 국경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확대 해석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유라시아 횡단열차가 된다. 따라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유일한 장거리 철도망으로서 ‘시베리아 횡단’, ‘러시아 횡단’, ‘유라시아 횡단’의 특징을 가진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간선이다.

광궤는 세계 8대 불가사의다
1,435mm의 영국식 철도폭이 표준궤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면적으로나 물동량으로 보았을 때 유라시아에서의 철도 표준은 다름 아닌 1,520mm의 러시아식 광궤다.

구소련의 15개국과 몽골, 핀란드가 1,520mm폭의 광궤를 선택하였다. 심지어 독일, 폴란드, 터키, 불가리아, 북한은 일부 항구나 지역에 광궤를 깔았다. 광궤는 무려 22개 국가에 걸쳐서 약 19,300개의 역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셈이다. 이처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중심으로 한 광궤 철도는 ‘불가사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궤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을 차지하면서 뼈대를 형성하고 표준궤는 중국, 유럽연합, 이란, 터키, 한반도 등 유라시아 대륙의 외곽을 차지한다. 즉, 광궤 철도는 유라시아 철도 노선의 뼈대다.

동북아시아의 지선 철도는 3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라는 간선 철도망에 연결되는 지선 철도는 동북아시아에 총 3개가 있다. 바로 만주 종단철도, 몽골 종단철도, 중국 횡단철도다. 3개의 지선들은 각각 만주 북부, 바이칼 호수, 우랄 산맥 인근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연결되는데, 공통점은 바로 중국 경유라는 점이다.

만주 종단철도는 ‘만주리-자바이칼스크’, 몽골 종단철도는 ‘에렌-자민우드’, 중국 횡단철도는 ‘도스틱-알라산코우’에서 표준궤와 광궤가 변경된다. 궤 변경지점이 물류의 핵심지역이지만, 바로 여기서 비용과 시간을 모두 잡아먹기에, 철도 운송이 해상 운송과 경쟁하기에 어렵게 만든다. 중국은 남, 북과 같은 표준궤 철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북철도가 중국을 경유하여 유라시아 횡단철도에 연결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을 경유하여 러시아로 가는 것은 국경을 한 군데 더 거쳐야하므로 비효율적이다.

한반도-중국 간 철도 노선은 여객 열차나 만주-한반도 간 화물 운송에 적합하다. 즉, 남북 철도가 중국을 통하여 시베리아 횡단에 이어진다면 남북 철도는 중국 지선에 부속된다.

한반도 종단철도는 동북아의 4번째 지선이다
남북 철도가 러시아 방향을 통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이어진다면, 한반도 종단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연결되는 4번째 지선이 된다. 그리고 3개의 중국 경유 지선들과 경쟁할 수 있다.

2014년 하산 국경에서 나진 항구까지 54km의 구간에 러시아 철도청에서 광궤를 깔았기 때문에 한반도 종단은 나진에서 궤를 변경할 수 있다. ‘나진-하산’ 구간을 이용하면, 한반도 종단철도는 동북아시아의 4번째 지선으로서 만주 종단철도, 몽골 종단철도, 중국 횡단철도와 경쟁해야 한다. 심지어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시발점으로 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도 경쟁해야 하는데. 이는 그다지 쉽지 않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대신에 나진을 발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나진에서 궤를 바꾸는 방식은 비용과 시간을 단축하는 데 한계가 크고 블라디보스토크와의 경쟁에서 뒤질 수 있다.
광궤가 한반도에 깔리지 않는다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반도에 ‘표준궤만’ 깔린 구조로는 한반도 종단철도가 발전하는데 그 한계가 적지 않다.

‘광궤’가 한반도에 깔리지 않는다면 중국, 일본, 동남아의 화물들은 현재처럼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나 중국 항구를 사용할 것이다. 심지어 수도권에 있는 화물들도 남북철도를 통하여 운송하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광궤가 깔리지 않는다면 컨테이너용 화차만 오가게 되고, 석탄-목재용이나 곡물용, 차량용, 냉동-냉장-보온형, 대형 화차 등 유라시아의 일반 화차들이 한반도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한반도 종단철도는 유라시아 횡단간선이 될 수 있을까?
광궤가 설치된다면 부산에서 모스크바까지 12일, 폴란드까지 14일, 베를린까지 16일이면 도착한다. 무려 7일을 앞당길 수 있으며 궤변경 비용도 컨테이너당 $500 이상 절감할 수 있다.

광궤가 동해선을 따라 부산까지 깔리는 것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부산에 다다르는 것이다. 물론 광궤를 한반도에 설치하자는 의견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해안을 따라서 약 1,200km의 표준궤 옆에 단선의 광궤를 병행 설치하는 것이 그다지 비용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궤 간 가변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상용화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북의 개방이 늦어진다면 레일페리를 통하여 속초와 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을 운항하는 광궤 레일페리를 운영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한반도 종단철도는 동북아시아의 지선에 머무르기 보다는 유라시아의 간선이 되었으면 한다. 100년 전 완성된 시베리아 횡단은 러시아를 먹여 살리고 있듯이, 중국 향 고속철과 러시아 향 광궤 열차는 향후 수백 년 동안 한민족을 먹여 살릴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나진, 속초, 그리고 부산에까지 다다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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