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탄생과 소멸은 부정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해 어떠한 것도 이를 피해갈 수 없다. 특히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기업을 포함해 새로운 제품이든 서비스든 시장 내·외부 환경에 따라 탄생과 소멸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물류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탄생했다 사라졌으며 수많은 서비스들이 만들어졌다 사라졌다. 그 명멸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아직 이른감이 없진 않지만 창간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다.(무순)

대표 국적선사의 몰락 ‘한진해운’
2016년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사채권자집회를 열어 각각 358억 원과 1,900억 원의 회사채 만기 연장에 성공하는 등 순차적인 자구 노력을 진행하던 한진해운이 2016년 8월 법정관리에 돌입하면서 해운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적 선사이자 세계 7위의 해운선사인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한진해운이 소유한 선박이 압류되고 용선중인 선박들이 운항을 중지하는 등 예상했던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또한 일부 항만에서는 한진해운 소속 선박들의 입항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화주와 포워더 등 관련 업계는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게 됐다.

해수부와 선주협회, 항만공사, 해상노조연맹 등이 참여하는 비상대응반이 구성됐으며 비상대책회의가 소집됐다. 또한 해운 단체들도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들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40여년간 쌓아온 세계 해운네트워크를 잃을 뿐만 아니라 부산항 환적 화물이 60%까지 급감할 수 있는 등 관련 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 했다. 한진해운 측도 1,300명이었던 직원을 50명으로 줄이는 등 회생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진해운은 2017년 2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빠르게 식어버린 ‘냉동컨 화차’
1995년부터 추진해오던 냉동·냉장 전용 컨테이너열차의 운행이 1997년 11월 운행을 개시했다.

주로 농수축산물이나 의약품, 냉동식품 등을 수송하는 이 냉동컨테이너 전용열차는 총 70량, 전원 공급 장치인 POWER PACK 2대로 이루어져 30량씩 편성됐다. 운영은 경인 ICD에서 맡고 당시 한진(19량), 삼익종합운수(16량), 현대상선(12량), 대한통운(9량), 고려종합운수(9량), 세방기업(5량) 등 6개사가 참여했다. 6개사가 투자한 금액은 총 52억 5천만 원이었으며 의왕ICD 제2터미널과 부산신선대 철도 야드로 1일 1왕복 하는 노선이었다.

당시 냉동컨 화차를 통해 수도권 냉동·냉장 수출입 식품의 신선도, 안정성을 확보하고 신규화물 수송으로 수입 증대, 물류비 절감, 도로체증 완화 등의 효과를 기대했지만 물동량이 기대치에 못 미치고 효율성도 떨어져 시장에서 사라져버렸다.

모기업과 함께 사라진 ‘코렉스마트’
물류기업의 첫 대형 유통마트이자 창고형 할인점인 대한통운 코렉스마트는 1995년 전북 군산 1호점 개점을 시작으로 1998년까지 17개 점포를 개설하고 운영하며 규모를 계속 키워가고 있었다.

당시 대한통운은 유통 사업을 제2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는 비전도 제시했었다. 또한 전국에서 17번째이자 수도권 2호점인 강서점을 오픈하면서 향후 당산점과 수원점을 계속해서 개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1999년 코렉스마트에서 대한통운마트로 사명을 변경하며 사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1년 모기업이었던 동아그룹이 해체되면서 전국매장이 폐장되거나 타사에 매각되었다.

저항에 부딪쳐 퇴출된 ‘컨테이너세’
컨테이너세는 1992년부터 항만배후도로를 이용하는 컨테이너 차량에 대해 징수하는 지방세로 항만 배후도로 건설 등 운송시설 확충을 목적으로 한 일종의 교통 유발금이었다.

시작은 부산항이었지만 1997년 인천시와 울산시가 컨테이너에 대한 지역개발세 명목으로 1998년부터 징수한다고 밝혔고 전라남도도 컨테이너세를 징수하기로 했으나 광양항의 활성화를 위해 99년까지 유보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화주는 물론 외항업계를 포함한 관련업계, 상의, 무역협회까지도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부과되는 컨테이너세는 물류비의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폐지를 요구했다.

결국 2005년 정부는 당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주제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개최하고 ‘해운항만물류 서비스 경쟁력 방안’을 발표, 컨테이너세 폐지를 결정했다. 실제로 컨테이너세는 2007년 1월부터 폐지됐다. 오랜 시간 컨테이너세를 부과해온 부산항과 이를 적용해 지방세수를 늘리려던 지역들의 컨테이너세 부과는 결국 업계의 저항에 백기를 들었다.

부활하나? ‘LNG 화물차’
2007년 LNG 화물차를 상업 생산할 수 있는 근거기준이 마련됐다.

산업자원부가 가스안전기술심의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의 연료장치의 제조·검사 기준을 마련해 고시했다. 이에 국토해양부는 2008년 경유화물차를 LNG화물차로 전환하는 사업을 본격화 했다. 정부는 LNG화물차 시범사업 대상차량을 11톤 이상의 트랙터 및 카고 트럭으로 한정하고 500대 가량의 경유 화물자동차를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09년에는 2,000대까지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2009년 9월까지 진행까지 진행된 시범사업에는 대한통운, 한진 등 20개 미만 업체의 약 45대가량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본 사업의 추진방향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국토해양부는 9월중 본 사업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업계 관계자들은 본 사업을 늦추더라도 신중한 검토와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 현업에 대한 이해 부족, 기술력 부족, 충전인프라 부족, 구체적인 계획의 부재 등의 문제에 가로막혀 실패로 결말이 났다. 하지만 최근 잊혀졌던 LNG 화물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환경부는 2018년 상반기까지 LNG 화물차 시범사업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계획을 수립한 후 2019년부터 단계별 보급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바뀌지 않은 화물자동차 업계의 현실 보다는 기술과 인프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잊혀진 기술로 남게 될지, 부활한 사업으로 자리를 잡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라진 ‘비디오 대여점’, 함께 사라진 ‘배송망’
택배와 물류사업에 배송망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때문에 택배, 물류기업들은 각 지역마다 영업소 등을 갖추고 택배나 화물을 배송하고 있다. 이 중 기존의 인프라를 잘 활용한 서비스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편의점을 활용한 택배가 좋은 예. 하지만 잘 조성된 인프라를 활용하려다 외부 시장 환경의 변화로 인해 시장에서 사라진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디오 대여점을 배송 또는 집하 포인트로 활용하려고 했던 사례다. 이러한 시도는 비디오 대여점의 몰락이 원인이었다. 최초 시작은 2000년 한국인터넷 유통이 비디오 대여점을 이용한 택배사업에 뛰어들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비디오, DVD, 도서 등을 다루던 대여점이 인터넷의 발전과 다양한 컨텐츠의 개발로 인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것. 이에 따라 비디오 대여점을 기반으로 하던 서비스들도 모두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택배에 밀린 ‘철도소화물사업’
지난 2006년 5월 1일자로 폐지된 철도소화물은 철도공사가 1973년부터 대한통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택배의 등장과 높은 성장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1972년 약 800만개였던 2004년 490만개로 급감하고 수송비중도 택배시장의 2.2%에 머무르면서 적자규모도 계속 늘어나 2004년에만 464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때문에 철도 소화물은 국회와 국정감사의 단골 지적사항이 됐으며 2004년 12월 노사정위원회로부터 합리적인 처리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를 받았다.

그 후 철도공사는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대한통운과 공동으로 연구용역을 실시했으나 활성화가 불가해 사업주체의 경영측면에서 빠른 시일 내에 완전폐기가 바람직하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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